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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권의 책: 윤한로의 두 번째 시집 '그대 나에게 가고, 나 그대에게 오고'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1.05.10 09:43
  • 수정 2021.05.10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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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추라기 사랑 노래>에 이은 윤한로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그대 나에게 가고 나 그대에게 오고>(다시문학)의 전체적인 어조는 투박하다. 시집이가기보다 격정의 토로요 길들이지 않은 야생의 거친 파이터 기질이 뚜렷하다. 우아하고 세련됨을 추구하는 클래식 작곡가인 내 눈과 귀에는 간혹 눈살을 찌푸리고 가슴을 돌주먹으로 세게 맞은 듯 헉하고 심호흡이 내뱉어진다. 하지만 세상을 겪다 보니 이런 사람일수록 겉과는 다르게 소심하고 낯가리면서 여리더라. 쓰는 글과 일상에서의 인물이 매칭이 안되는 경우가 많더이다.

다시문학에서 출간한 시인 윤한로의 두 번째 시집 '그대 나에게 가고, 나 그대에게 오고'

102쪽의 <개미집>은 윤한로가 나온 흑석동 중앙대학교 앞에 위치한 술집이다. 77학번으로 중대 문창과에 입학했다가 졸업하지 못하고 다시 입학시험을 치러 83학번으로 동대학의 같은 과에 재입학했으니 지금 기준으로 보면 기가 찰 노릇이다. 그때의 사회 분위기, 술 먹고 데모했던 이유를 차치하고 지독히도 말 안 듣는 학생이다. 주야장천 주점에 모여 낮이고 밤이고 막걸리 마시고 개똥철학을 입에 침을 튀기며 떠들고 치고받고 하며 청춘의 특권이네, 대학생활의 낭만이네, 고뇌하는 지성인이네, 사회에 저항하는 투쟁이네 하면서 보냈을 것이다. 그러고도 졸업해서 고등학교 선생으로, 신문사 기자로 취업만 잘 하였으니 스펙이네, 외국어네, 인턴이네, 알바네 고군분투하는 지금의 이십대들과는 세대 차이가 안 날 수가 없다.

필자의 서재에 꽂혀있는 윤한로의 시집

가톨릭에 귀의하더니 실신한 신자가 되었다. 추모미사, 미카엘라, 라파엘라,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의 마지막 지점인 콤포스텔라, 벨라뎃다...시집의 또 다른 근간을 이루는 골자로 작용한다. <돈부>라는 제목의 3부? 도대체 같은 하늘 아래 사는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필자와 삶의 방식과 관심사가 다른 거 같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돈부는 나오지도 않고 동부라는 콩이 나온다. 한해살이 작물인 콩이다. 82쪽의 <돔부 할미>를 읽어보면 좀 감이 잡힌다. 나무와 풀과 별과 싱싱함으로 가득 찬 시골, 그것도 시인의 고향인 충북의 영동, 보은 등지의 전원 풍경이다. 아스팔트로 둘러싸인 서울 중심부에 살면서 단 한 번도 쪼그려 앉아 호미로 땅에서 뭔가 캐고 채집을 해 본 적이 없는 필자와 또다시 대척점이 생긴다. 난 먹기만 잘한다.

4부의 <퉤퉤>는 아웃사이더 시인의 호탕한 외침이다. 귀 옆에서 악을 쓰듯 생생히 들어본 적도 없는 윤한로의 "내가 돈 없고 빽 없지 실력이 없고 기개가 없느냐! 가소로운 놈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음성이 귓가에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개미집에 모여 스스로를 비하하고 자조하고 소위 일컫는 먹물 먹은 자들을 깔아뭉개고 백안시한다. 그러고보니 윤한로은 중국 진나라 시대의 죽림칠현 같다. 공명(功名)이나 이록(利祿)을 중시하지 않고 시골에 은거하면서 술을 마시고 시를 읊었던 현사(賢士)로서 은자(隱者)의 삶을 추구한 그 죽림칠현 말이다. 마지막으로 윤한로의 시에 어울리는 독일 가곡이 있다. 윤한로 같은 시어로 된 한국 가곡 찾기가 힘들더라. 노동요나 민중가요라면 모를까... 그런데 독일엔 이런 리얼리티 가곡 많다. 현대 독일 현대음악 작곡가 볼프강 림의 작품이다. 스위스 시인 아돌프 뵐플리(Adolf Woelfli 1864-1930)의 뵐플리 가곡집 1번 <나는 너를 사랑했네>다. 굳이 번역하자면 "난 너를 사랑했네, 이제는 더 이상 사랑하지 않네. 너의 눈에 똥 한 바가지를 싸네. 이제는 더 이상 나도 너를 볼 수 없네> 윤한로의 시집과 괴를 같이 한다. 그런데 윤한로에게도 엄연히 서정시가 있다. 14쪽의 <물푸레>는 담백하고 온화하며 예쁘다. 나무가 우리에게 건네는 말 한 자락.... 시집의 제목으로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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