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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탐방기: 경인미술관 1관 제10회 한국펜화가협회전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1.04.30 08:31
  • 수정 2021.04.30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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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28일부터 5월4일 화요일까지 인사동 경인미술관 1관에서 제10회 한국펜화가협회전 열려

백남준이 피아노를 햄머로 때려 부수었을 때, 미술관 한편에 바나나 하나 걸어두었을 때, 오묘하고 현학적이고 범상치 않은 자기만의 세계를 표출하였을 때 경의와 함께 관객은 벌거벗은 임금님이 된다. 남들 다 좋다고 훌륭하다고 하는데 현대미술과 아트에 대해 나만 무식하고 조예가 없는 티를 굳이 낼 필요 없이 같이 맞장구치지만 왠지 헛헛하다. 그런데 펜으로 그린 그림은 요즘같이 기술이 발달해 컴퓨터 그래픽으로 할 수 있는 걸 인간이 의자에 앉아 일일이 펜으로 그리면서 그려낸 보는 이가 질릴 정도의 노동의 산고에 절로 감탄이 나오고 고개가 숙여진다. 누가 시켜서는 절대 못할 일이요 인고의 과정을 거친 작가들의 성취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또 다른 경지의 세상이다. 작가가 아니라 세상을 달관한 도사들이 따로 없다.

4월28일부터 5월4일까지 인사동 경인미술관 1관에서 개최되는 제10회 한국펜화가협회전

4월 28일부터 5월 4일까지 인사동 경인미술관 1관에서 개최되는 제10회 한국펜화가협회전은 총 23명의 작가가 각 2점씩 출품해서 1층과 2층에 1인당 각 1점씩 작품을 걸어 놓았다. 조금만 눈썰미가 있는 관객이라면 대번에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고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특색과 작법 그리고 대상물에 공통점이 있었다.

경인미술관 1관 입구

들어가자마자 첫눈에 잡힌 건 안충기의 <비행산수-광화문>이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광화문 광장, 서울 사대문 안을 말 그대로 비행산수, 하늘에서 날아다니면서 내려본다. 그런데 장엄하고 웅장하기보다는 왠지 친근하고 동네 마당 같다. 그림의 오른쪽 위에는 한국 만화 고유 프랜차이즈 뽀로로가 비행 안경을 끼고 경비행기에 탑승해서 뽀통령을 과시하며 왼쪽 아래에 뽀로로에 비해 요즘 유행하는 또 하나의 한국형 캐릭터인 펭수가 고개를 빠끔 내민다. 아낙네들과 아이들, 즉 사람은 외곽에서 내다보고 광장은 비었다. 그러다 보니 보고만 있어도 십 년 묵은 체증이 뻥 뚫릴 정도로 속이 시원한다. 일 년 365일, 인간 군상들로 가득 차서 북적거리고 아귀다툼하는 그곳에 군중 없이 광장만 남아 인간 무리들은 외각으로 다 몰아버렸다. 악다구니가 사라지고 데모꾼, 시끄러운 스피커 소리 없는 비우니 채우면 되는 무소유가 된다. 2층에 가면 그대로 비슷한 구도의 작품을 만난다. 이번엔 강남이다. 하지만 왼편 강북은 허허벌판에 남산타워만 솟아올라 강 건너 빼곡히 들어선 건물들과 대조를 이루면서 전혀 밀리지 않는다. 그 밑에 동부이촌동 신동아 아파트만 그려 넣었다. 작가가 거기에 사나????

안충기의 '비행산수-광화문 광장'

안충기에게서 사라진 군상들은 김현석의 <사람>에 대신 가득 차 있다. 일부러 분리해 놓은 거 같다. 태극 문양에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는데 우리네 현실과 같이 똑같은 사람 단 하나 없다. 각자 다른 몸짓 손짓을 하면서 자기 목소리를 낸다. 이 무리들이 안충기의 광장과 강남의 욕망을 채울 터... 김현석은 2층에 1층의 <사람>과는 전혀 다른 기린을 그려 놓고 <사랑>이라 제목을 붙였다. 비슷한 그림 찾기를 실패했다.

김현석의 '사람'
김현석의 '사람'

1층엔 안동의 <도산서원전경>을 2층엔 논산의 <파평윤씨종학당>을 출품한 필자가 방문한 시간에 갤러리에 상주해 있던 정상용 작가를 만나 직접 설명을 들을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고향이 안동도 아니요 퇴계 이황의 후손도 아니고 파평 윤씨도 아닌 작가에게 그린 연유에 대해 문의했는데 직접 주유천하를 하면서 선택하였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도산서원 우측의 울창한 고목이 선사하는 응달, 조선의 정신과 혼을 지켜온 백리향 같은 나무 밑에서 수백 년 조선 선비의 교육이 혼이 계승되어 두 명문 집안을 이루었을 터. 그러고 보니 탁 머리를 치면서 깨달아진다. 두 군데 모두 교육기관이구나... 정상용 작가의 다음 행선지는 대제학을 배출하고 예학의 기초를 세운 광산 김씨 사계 김장생을 기리는 논산 돈암서원이 되겠구나...

'파평윤씨고당'의 작가 정상용
'파평윤씨종학당'의 작가 정상용

가장 특별한 이력을 가진 작가가 있다. 공학박사이자 현직 건축과 교수다. 동시에 개인전을 14번이나 개최한 펜담채화가이자 성악을 대학원에서 전공한 음악인이기도 하다. 현대판 갈릴레오인가? 다른 작가들이 사실적인 묘사에 치중했다면 다재다능한 종합예술인 윤희철의 <길상사 풍경>은 색이 들어가 있고 주관적이다. 길상사라는 배경에 누군가에게 헌정하기 위한 작가의 마음과 정성이 배어 있는 윤희철만의 무릉도원이 만들어졌다. 성북동에서 파리로 워프한다. 역시 내가 봤던 그 파리의 알렉상드르3세다리와는 다른 느낌이다. 단색이 아니라 색의 조합은 그만큼 원래의 오브제에서 거리감이 생길 수밖에 없고 작가의 감성이 스며든다. 알렉상드르3세다리를 관람하고 있는 와중에 하필이면 프랑스 작곡가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중 '하바네라'가 스피커를 타고 나와 눈과 귀가 프랑스로 일치했다.

윤희철의 '알렉상드르3세다리'
윤희철의 '알렉상드르3세다리'

그 순간 혼자 피식 웃었다면 갤러리를 나오면서 다시 보았던 임동은의 <기억할 사람들>은 한국이라면 누구나 알고 꼭 기억해야 할 인물들이 보이면서 잠시 숙연하게 만든다. 이념과 사상을 뛰어넘어 한국 사람들이라면 남녀노소 불문 꼭 기억하고 고마워해야 할 분들이 새겨져있다. 전시회는 5월 4일 화요일까지다. 직접 가서 우리들의 이름 없는 영웅들을 만나고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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