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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

김홍관 시인
  • 입력 2021.04.26 15:23
  • 수정 2021.04.26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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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

 

그날 광장에 나는 없었다.

베트남이라 불리는 나라

중위도로 북위 13도쯤 되는 곳

꽝응아이라는 곳에 있었다.

 

그날의 함성은

인터넷이라는 기괴한 기계 덕에

시시각각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한 나라라는 거대한 조직을

강남 뒷골목 그래도 조금은 유명한

미장원 원장에게

껌 찍찍 씹으며 반말 짓거리 할 듯한

그년이, 그 드런 년이

그보다 조금 더 드러운 년을 개무시하며

무슨 짓을 벌였던가?

 

울화가 치밀고 속내가 뒤집어지고

혼잣 욕으로 씨부랄 좃도 해가며

쳐 오르는 감정이 북받쳐

맛대가리도 없는 그들의 독주를 많이도 들이켰다.

함께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그 분노를 간신히 억누른 시간이었다.

 

2016년 을미년

120년 전 1895년 을미년

어떤 평형이론이랄까?

광화문 광장에서 타오르는 촛불은

이 나라 땅을 밝히고도 남아

세계 역사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2019년의 가을은 조국 수호로 검찰개혁으로

서초동 대로에 수만, 수십만의 시민이 모였었다.

참회의 마음으로 나도 함께했고

목구멍의 울화를 촛불로 승화시키고 있었다.

 

어찌 된 일이런가?

그날의 역사는 색이 바랬는가?

이 나라의 정의는 사라지고

언론은 뭉개진 지 오래고

기자는 기레기로 검사는 개검으로 불리었다.

 

다시 촛불이 타올라야 한다.

120년 전의 암세포가 다시 자라나

명성황후의 가슴을 짓이기고

친일을 업으로 삼던 그 자손들이 득세하며

촛불이 밝힌 민주의 횃불을 꺼뜨리고 있다.

 

이 땅에 살아갈 아이들을 위해서

세세만년 이어갈 이 나라의 역사를 위해서

다시 타올라라 횃불이여!

다시 참회의 시를 쓰지 않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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