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舳艫千里, 隨流東下. 소정방은 바다를 건넜나? 강을 따라 왔나? 백제, 고구려와 나당연합군(신라 당나라 연합군) 전투는 한반도에서 있었나? 중국 대륙에서 있었나? (2)

이원환 전문 기자
  • 입력 2021.04.26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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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원문 (《삼국사기》5권 신라본기 제5 태종무열왕 7년) 을 보자.

3월에 당나라 고종이 소정방을 신구도행군대총관(神丘道行軍大摠管)으로 삼고 김인문을 부대총관(副大摠管)으로 삼아, 유백영(劉伯英) 등 수군과 육군 130,000명을 거느리고 백제를 치게 하였다.

칙명(勅命)으로 왕 (태종무열왕)을 우이도행군총관(嵎夷道行軍總管)으로 삼아서 장수와 군사를 거느리고 응원하게 하였다.

 

구당서에서는 소정방은 신구도 총관, 당나라 유백영이 우이도 (곤이도)총관이다.

두 기록을 합쳐서 해석하면 신구도 대총관은 소정방, 우이도 대총관은 유백영 둘다 당나라 사람이고, 우이도총관은 (대총관 밑이다) 김춘추 신라인이 된다.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치는데 두 갈래 길(루트)로 진격했다. 소정방의 신구도 루트, 김춘추 태종무열와 신라의 우이도 루트이다.

소정방의 신구도 루트가 물(바다인지, 강인지 분명하지 않음으로 물 이라 표현했다)을 따라 가는지는 차이나 역사책에는 없고 삼국사기에만 있다.

삼국사기 태종무열왕 5월조에서 “여름 5월 26일에 왕이 유신(庾信)•진주(眞珠)•천존(天存) 등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서울[京]을 출발하였다.”

 

삼국사기 태종무열왕 7년 6월조에서 “6월 18일 남천정에 머물렀다.  소정방은 내주에서 출발하였다. 그는 천리에 달하는 병선을 이끌고 수로를 따라 동쪽으로 내려왔다.” (六月十八日, 㳄南川停. 定方發自萊州, 舳艫千里, 隨流東下.)

隨流東下.!!! 흐름을 따라 동쪽 아래로 왔다

바다를 건넜다고 해석할 수 있나?

백제가 한반도 남서부에 있다는 선입견에 얽매이지 말고 바라보자.

황하(혹은 양자강 혹은 다른 강)을 따라 동쪽 아래로 왔다면 너무나 자연스런 해석이다. 당시 당나라 수도는 장안 (지금의 차이나 서안이다) 황하 “L” 자를 따라 산동지방으로 왔다면 자연스럽지 않은가?

舳艫千里. 배가 꼬리에 꼬리를 문 행렬이 천리다.

강(江) 위가 자연스러운가? 바다(海) 위가 자연스러운가?

강(황하)을 따라 동쪽 아래로 소정방이 왔다는 것이 자연스런 해석이다.

문제는 소정방의 출발지이다. 定方發自萊州 소정방은 래주에서 출발하여 물길을따라 동쪽 아래로 왔다.

래주를 지금의 산동성 항구도시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래도 동쪽 아래로 왔다는 표현을 두고 황해 바다를 건넜다고 해석하는 것은 정말 무리다.

가능성은 두 가지다.

1) 래주는 지금의 산동성 항구도시가 아니라 서안 부근 어디이다.

2) 래주라는 지명 자체를 고쳤다. 누가?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은 구당서든 신당서든 중국역사책이나 지금은 전해 지지 않는 한국 역사책을 보고 옮겼을 것이다. 현재 구당서, 신당서 어디에도 소정방이 어디서 출발했는지는 기록이 없다.

六月十八日, 㳄南川停. 定方發自萊州, 舳艫千里, 隨流東下.

㳄南川停 도 의문이 많은 대목이다. (계속)

한국사데이터베이스캡쳐 편집
한국사데이터베이스캡쳐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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