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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402] 이 한 권의 책: 음악과 음악가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1.03.07 09:45
  • 수정 2021.03.07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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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하고 글 쓰고 비평하고 가르치고 피아노 연주하고.. 1인 몇역이 아니라 음악가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작업들이다. 필자와 똑같은 활동을 한 음악가는 이미 수 세기 전부터 셀 수 없이 많았지만 그중 대표적인 한 명을 꼽으라면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이다. 중세의 음악가들이야 교회의 고용인이요 기능 음악인으로 매주 찬양곡을 쓰고 오르간을 연주했던 한 고을의 음악담당자(Stadtpfeifer)였다. 합창단을 지휘하면서 예배를 준비하는 게 본분이었으며 고전파음악가들도 별반 다르지 않게 피아노 치고 지휘하면서 악단의 예술감독이 주 직장이자 수입원이었다. 집필하지 않았다는 점만이 슈만 전의 음악인들이 슈만과 다른 단 하나의 차이점이다. 그건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은 매체의 결핍이자 시대의 한계였기 때문인데 대신 그들은 자신들의 의견과 주장, 토로와 개탄을 편지로 남겨 우리는 지금 그걸 읽고 위대한 음악인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을 간접적으로나마 유추해 볼 수 있다. 슈만 이후, 바그너는 말할 것도 없이 작곡가들은 음표만 적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음악을 소개하고 알리며 더 나은 음악 환경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글로서 자신을 속내를 가감 없이 밝혔다.

로베르트 슈만 지음, 이기숙 옮김, '음악과 음악가' 도서출판 포노(PHONO) 발행

포노(Phono)에서 발간한 <음악과 음악가들>(로베르트 슈만 지음, 이기숙 옮김)는 슈만 생존 시 음악계의 여러 사태를 개선하고 예술의 서정이 다시 영광을 되찾을 수 있게 <음악신보>(Neue Zeitschrift fuer Musik)을 창간, 1844년부터 10년간 편집장으로 재직하면서 잡지에 실었던 평론들을 발췌해서 모은 책이다. 그가 표명한 견해들은 200년이라는 세월과 공간을 뛰어넘어 지금 한국의 현실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동시대 동료들에 대한 예찬, 연대와 협력을 강조하면서 결성한 <다비드동맹>, 쇼팽을 소개하고 브람스를 알린 모자를 벗으세요와 새로운 길(Neue Bahn)이라는 유명한 문구, 낭만파 음악의 위대한 거장인 슈베르트에 대한 절절한 사모와 그의 미발표 작품을 발굴했을 때의 희열과 아무 수고와 보상도 없이 작품 연주를 위해 발 벗고 나선 사명, 그리고 그 뜻에 동참한 멘델스존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슈베르트의 교향곡 9번이라는 불세출의 작품을 알지도 못했을 것인 실천.

도서출판 포노(PHONO)에서 출판한 책들이 뺵빽히 꽂혀 있는 필자의 책장
도서출판 포노(PHONO)에서 출간한 책들이 빽빽히 꽂혀 있는 필자의 책장

무엇보다도 슈만의 음악관을 알 수 있는 짧은 경구, 좌우명, 금언과 단상, 아포리즘은 현시대 그대로 적용이 되는 너무나 지금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환경과 그걸 개선하기 위한 슈만의 피를 쏟는듯한 사자후라 내가 지금 이역만리 대한민국의 음악계에 대해 외치는 고함과 대동소이해서 놀라게 한다. 그리고 나만 그러지 않았고 슈만 같은 존경해 마지않을 위인도 나와 같은 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했고 그 이후에도 해오고 있다는 것에 위안과 용기를 얻는다. 그중 몇 가지만 소개하며 내 주석을 같이 단다.

① 누가 처음 보는 곡을 연주하라고 할 때는 우선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흝어보아라 - 초견을 잘하는 비법이다.

② 성인이 되거든 유행가 따위는 치지 마라, 시간은 귀중한 것이다. 지금 있는 좋은 곡들만 배우는 데도 백 사람의 수명만큼 살아야 한다. - 커버 같은 거 올리면서 지명도 올릴 생각 말고 고금의 명곡들이나 연습해라.

③ 훌륭한 작곡가의 작품에서 무언가를 고치고 빼고 심지어는 새로 유행하는 장식을 덧붙이는 것은 비열한 짓이다. 이런 행동은 예술에 가하는 최대의 모욕이다 - 들었는가! 보았는가! 읽었는가! 찔리지 않는가! 자신의 한줌도 안되는 권력 유지와 고관대작들과의 친교를 위해 음악을 이용하는 어떤 자여! 그렇게 살지 마라. 항상 강조하는 거지만 그자보다 겉모습에 현혹되어 그런 사기꾼들을 숭상하는 우매한 민초들이 더 문제다.

④ 모든 유행은 다시 시들게 마련이다. 나이가 들어서까지 유행을 좇는 사람은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멍청이가 되어버린다 - 기성 음악인이라면 심지가 굳게 자신이 평생을 바쳐 해온 음악에 더욱 집중해서 그 가치를 알리고 보존하는데 더욱 힘써야지 허깨비 같은 유행과 인기에 연연하지 말라.

⑤ 다른 사람과 함께 이중주, 삼중주 등을 연주할 수 있는 기회는 놓치지 마라. 그런 것들은 너의 연주를 유려하고 활기차게 만들어 준다. 노래하는 사람의 반주도 자주 하도록 하라 - 돈타령 그만하고 무대가 있으면 무조건 연주하란 뜻이다. 연주의 기쁨을 누리고 연주 행위 자체가 살아있는 실존이다.

⑥ 음악 애호가들은 흔히 '선율'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물론 선율이 없는 음악은 음악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선율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라. 그들은 알기 쉽고 경쾌한 것들만 선율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종류의 선율도 있다. 바흐와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곡을 들춰보면 수천 가지 다른 방식의 선율이 보인다. 빈약한 한 가지 종류의 선율, 특히 최근 이탈리아 오페라에 들어간 선율을 들으면 아마 금방 질려버릴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여전히 익숙한, 쉬운, 한 번만 듣고도 파악하고 따라 부를 수 있는 선율 타령이나 하고 있으며 좁디좁은 지식과 범주 내에 갇혀 그것만 추구한다. 어렵다는 말은 더 이상 듣기 싫고 지겹다. 자신들의 낮은 수준을 탓해야 하지만 그들과 함께 기생해야 하는 한국의 작곡가들과 음악인들도 참으로 불쌍하다. 그럴 바엔 평생 '오 솔레미오'나 부르고 들어라.

⑦ 어느 시대든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은밀히 동맹을 맺는 법이다. 예술의 진리가 점점 밝게 빛나고 기쁨과 축복이 사방에 퍼질 수 있도록 동맹원들은 더 굳건히 뭉쳐야 한다. - 자신 곡만, 자신의 연주만 중요하고 들어주길 원하고 남의 곡은 듣지도 않고 관심도 없고 현안에 대한 참여도 없으면서 더 나은 음악생태계를 바라는 당신이여! 그걸 바로 거지근성이요 노예라고 칭한다.

미세먼지 없는 날, 북악산 서울 성곽길에 올라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하는 독서는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파란만장한 시대를 비춰주는 이 평론집이 이 현대의 조류에 묻혀버린 예술 현상에 눈길을 돌린다면 목적은 달성하였다고 소회를 밝히는 19세기의 슈만, 그리고 거기에 백퍼 동감하고 동참하며 그와 똑같은 길을 걸어가는 21세기 한국(한국이라는 나라, 서양음악의 본고장인 유럽이 아니라 한국에서라는 점을 강하게 강조하고 싶다)에서의 성용원. 
나도 지금까지 쓴 약 450여 편의 칼럼들을 한데 묶어 책으로 발간하고 싶다. 기왕이면 포노(PHONO)에서 출판된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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