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용원 음악통신 397] Critique: 제12회 ARKO 한국창작음악제 양악부분 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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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397] Critique: 제12회 ARKO 한국창작음악제 양악부분 연주회
  • 성용원 작곡가
    성용원 작곡가 klingsol@hanmail.net
  • 승인 2021.02.26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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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곡의 선정작과 한 곡의 위촉작으로 30대부터 50대까지의 한국 현존 작곡가들의 다섯 작품이 연주되었다. 오늘의 평은 의도적으로 손에 쥔 프로그램북의 곡 설명과 해설을 읽지 않고 백지상태에서 오직 귀로만 감상하고 적었다는 걸 미리 밝힌다. 작곡가들의 말과 글을 통해 먼저 접하고 기대했다가 말(文)과 소리(音)가 일치되지 않은 허무맹랑하고 황당한 경우를 너무나 많이 겪어 실망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섣불리 선입견에 빠지고 싶지도 않았고 제목에 속지 않고 갇히지도 않기 위해서다. 나이, 학력, 성별 등을 전혀 모른 상태에서 문자 그대로 블라인드 방식으로 작품에만 집중, 내 귀로 판단하고 마음으로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듣고 나서 프로그램북을 펼치고 서로 비교해 보았다.

최선을 다해 다섯 곡의 현대 창작곡을 연주한 지휘자 정치용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첫 곡인 조아라의 <숲속으로>는 오페라나 영화 또는 애니메이션의 장면 음악(Scene) 같은 묘사로 환상적이고 황홀했으며 섬세했다. 다만 오케스트라 전체를 하나의 전체가 아닌 부분들의 합으로 처리해 각 부분들에 집중한 경향이 짙었다.

이어서 연주된 김대성의 <대금과 가야금>은 두 협연자를 덜어내고 오케스트라만 듣는다면 김대성 음악 특유의 기저와 철학이 짙게 깔려있어 몇 마디만 듣고도 금방 '이건 김대성의 곡이야'하고 소리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외국에나 갔다 온 나부랭이의 외계어가 아닌 이 땅 토양에 기반을 둔 우리말이었다. 거기엔 민속과 무속에 강한 뿌리를 박고 투박하지만 질긴 생명력의 농부의 뼈마디 같은 굵은 생명력이 질기게 얽혀있다.여기서도 김대성은 죽은 원혼들을 음악을 통해 위로해야 한다는 사제의 역할을 자청한다. 그게 우리 전통에서는 무당이었을 터. 이 땅에 사는 사람들과 호흡하는 예를 들어 두 솔로 악기의 카덴차 이후 손에 잡히는 선율, 악절이 F라는 중심음과 단음계의 테두리 안에서 나와 음악적 동기로 작용하는데서 명확하다. 서양화성 체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민요다.

위촉작품 김대성의 '잃어버린 마을'

성세인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멘텀>은 어떻게 작곡가가 오케스트라를 다루어야 하는지 현장에서 익힌 노하우가 묻어나는 작품이다. 현대적 기법이 응축되어 배어있으면서도 겉돌지 않아 어색하지 않으며 관현악적 밀도조절이 돋보였으며 군데군데 유창했다. 말장난 같지만 '관현악곡' 같았다. 다만 뒤로 갈수록 처음의 동력이 빠지면서 공허하게 끝나는 듯한 전개는 의도적이지 않았나 싶다.

오늘 들은 네 곡(한 곡은 위촉이니 선정에 대한 부담과 압박감은 없었을거라 여기고 제외)을 듣고 종합적으로 현대 한국 창작 관현악곡 작곡에 대한 금언 아닌 금언을 남기니 내년 13회 아창제나 다른데서 개최되는 관현악 작품 공모/ 콩쿠르 등에 입상 또는 선택이 되길 바라는 작곡가들은 명심해서 따를지어다.

① 타악기로 시작해서 타악기로 끝내라. 그리고 여섯 명의 타악기 주자를 모두 가용하라. 희귀한 타악기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타악기는 무조건 처음과 끝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

② 성부는 나눌 수 있을 만큼 나누어라. 잘게 쪼개고 쪼개라. 그리고 다들 바빠야 한다. 자신의 것에 집중하고 자신의 것을 열심히 수행해야 하니 정신없이 바빠야 한다. 그걸 현학적으로 악기 활용의 다양성이자 성부가 촘촘하다고 한다.

③ 잊을만하면 특수 주법이 불쑥 튀어나와야 한다. 그건 곡의 내용, 전개와 무관해도 상관없다. 느닷없을수록, 예측불허여야지 더 먹힌다.

④ 동서양 악기를 혼합하라. 그러면 혼종이요 융합으로 인식된다. 관악 독주악기에 서양 오케스트라 협연이 대세다. 반대는 도리어 위험하다. 왜 국악기에 양악 오케스트라 조합인지 고민해 봐야 한다. 꼭 국악기를 써야 하는 합당한 타당성이 악기 상에 있을까 아님 사람에게 있을까? 듣지도 않고 동서의 악기 음향이 조화로울 것이며 전통악기와 서양 관현악의 결합이라는 문장만 보고도 미래지향적이다.

위와 같은 아포리즘은 대금 주자니 한복을 입어야 하고 플루트 주자는 드레스를 입어야 하는 것처럼 언제나 옳다.

올해로 12회를 맞은 아르코창작음악제

최선을 다해 연주해 준 지휘자 정치용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에도 박수를 보낸다. 물론 처음 들음에도 불구하고 티가 나는 잔실수들도 많았고 단원들 역시 생소하고 낯선 곡을 연주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데 이게 초연이다. 초연이 완벽했던 적은 동서고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이러면서 명작을 같이 만들어 나간다. 코심 단원들과 개인적 친분은 없어도 이젠 하도 자주 가서 인지 오케스트라 주자들의 얼굴을 익혔다. 건달프도 보였고 바로 전 주의 비창교향곡에서 시종일관 안정적인 기량을 보인 클라리넷도 그대로 였다. 다만 편성이 들쑥날쑥해서인지 유동성이 심하긴 했고 <비창>에서만큼의 몸에 익은 익숙함이 없었는데 서양음악의 본 고장인 빈, 베를린에서 베토벤을 연주하듯 그런 각오와 마음가짐으로 임하고 몸에 익어야 한다.

프로그램북을 듣고 나서 펼치니 첫 곡의 제목이 내가 받은 느낌과 일치해서 반가웠다. 어찌 보면 아카데미와 기법적인 건 다 차치하고 조아라의 <숲속에서>(영어로 Into the Forest)가 가장 솔직하고 내면적이었으며 곡 제목과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아직 용기가 없어서 그런지 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진실하게 들어내면 좋았을 텐데...... 이럴 때 공감이 생기고 친근하다. 다시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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