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민주주의와 통일 위해 삶 바친 백기완 선생 별세

권용
  • 입력 2021.02.15 17:38
  • 수정 2021.02.15 17:5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 원작자
1964년 한일협정 반대운동 참여, 1967년 백범사상연구소 설립
이라크 파병 반대 집회(2003년), 용산참사 투쟁(2009년), 세월호 진상규명 집회·국정원 댓글 사건 규탄 시국회의(2014년), 백남기 농민 사망 투쟁(2015년), 박근혜 탄핵 촛불 집회(2016∼2017년) 등 투쟁 앞장서

반독재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 노동운동 등에 힘쓴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5일 오전 별세했다.(사진=나무위키 갈무리)

반독재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 노동운동 등에 힘쓴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5일 오전 별세했다.

1933년 1월 24일 환해도 은률군 장련면 동부리에서 태어난 백 소장은 1945년 해방 후 아버지를 따라 황해도에서 서울로 내려왔다. 초등학교 이외 정규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독학으로 공부하며 통일문제에 관심을 갖는다. 1964년 한일협정 반대운동에 참여, 1967년 백범사상연구소를 설립하며 백범 사상 연구와 보급에 힘쓰며 1973년에는 유신헌법 개정 청원운동을 펼치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79년 'UMCA 위장결혼식 사건'과 1986년 '부천 권인숙 성고문 진상 폭로 대회'를 주도한 혐의으로 체포, 계엄법 위반을 이유로 구속되어 복역하였다. 1983년부터 1988년까지 민족통일민중운동연합 부의장을 지냈으며 1987년 '제헌의회파' 그룹의 추대로 독자 민중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다. 김영삼, 김대중 양김씨의 후보단일화를 호소하며 사퇴하였지만 협상 과정에서 이견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렬되며 노태우가 36%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1992년 다시 독자 민중후보로 12월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였지만 낙선 후 민중 운동에 매진했다.

소설과 여러권의 수필집, 시집 등을 낸 문인으로도 알려졌으며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 원작자이다. 또한 이라크 파병 반대 집회(2003년), 용산참사 투쟁(2009년), 세월호 진상규명 집회·국정원 댓글 사건 규탄 시국회의(2014년), 백남기 농민 사망 투쟁(2015년), 박근혜 탄핵 촛불 집회(2016∼2017년) 등 진보진영의 투쟁에 앞장서기도 했다.

백 소장은 지난해 1월부터 폐렴 증상으로 투병생활을 이어왔으며 최근 심장질환 등으로 수술과 병원 치료를 받았으나 15일 오전 4시께 영면에 들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정숙씨와 딸 백원담(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백미담·백현담, 아들 백일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19일 오전 7시, 장지는 모란공원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