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윤한로 시] 촛불 5

윤한로 시인
  • 입력 2021.02.11 10:10
  • 수정 2021.02.11 18:5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촛불 5

밥 먹다 말고
저개눔새끼또나왔네
라 하시두마
밥숟가락까지 내동댕이 치시두마

그렇게도 선량한 형님이
그렇게도 너그럽고 정직하신 형님이
크게 배운 것도 없어
가진 것도 없어
떵떵거리면서 사는 것도 아닌 형님이
배에 기름기 낀 것도 아닌 형님이
집도 절도 없는 분이
평생을 땀 뻘뻘 흘리며
뺑이치며 살아온 분이, 고생 고생
개떡 먹고 꿀꿀이죽 먹고 자란 분이
질통도 잘 지던 분이
염생이도 잘 먹이던 분이
보일러도 잘 고치던 분이
이제 귀도 안 좋고 눈도 안 좋고
이빨도 가신 분인데
무릎도 가신 분인데
거기에다 유난히 오줌발도 짜른 분이신데
재미라곤 하나 없는 아주 심심한 사람이신데
남한테 싫은 소리 한마디도 못하는 사람이신데
제 잘난 척하는 마음 따위
털끝만치도 안 가진 사람이신데
남에 웬만한 허물 따윈 이타저타 말없어
그저 허허, 웃고 마는 위인이신데
가을 햇빛 쏟아지자
닌장맞을, 서검도에나 들어갔음
그 좋은 햇빛에 망둥이서껀 말리고 살았음
원없겠다는 양반이신데

왜 밥 먹다 말곤, 어디 뭘 잘못 주워들으시곤
무지막지 쌍욕을 내뱉는 도막에야
저눔새끼는때려죽여야한다고!
아아, 그니가 대체 뭘 잘못했길래
(혹시 그 잘나 빠진 누이 매형들한테 들었습니까요)

 

 


시작 메모
 가끔 형님과 바둑을 둔다. 형님은 십 년 전이나, 이십 년 전이나, 삼십 년 사십 년 오십 년 더 나아가 육십 년 전이나 그대로 10급이다. 나한테 9점을 잽힌다. 둬도 둬도 하나도 늘지 않는 형님 바둑. 얼마나 순수한가.
 형님은 서른 살 남짓, 나는 스무 살 남짓, 벌써 그 옛날이구나. 봉천동 산동네서 연탄 배달을 하던 형님이 다 때려 치고 다시 연천 집으로 되돌아올 때다. 형님과 이불 보따리를 걸머메고 버스를 탔는데 한 시간도 안 돼 미아리 고개에서 내리자고 한다. 오줌이 마려워서다. 우리는 그렇게 의정부에서 내리고 또 동두천에서 내리고, 몇 번이나 이불 보따리를 짊어지고 내려야 했다. 오줌발이 유난히 짜른 형님이 쪽팔렸다. 아름다웠다.
 닌장맞을, 그런 분이 글쎄. 그러구러 서로 안 본 지 꽤 오라다.
 (그 잘나 빠진 매형들하고도 끊어졌음은 물론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