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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387] 이 한 권의 책: BTS 예술혁명, 방탄소년단과 들뢰즈가 만나다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1.02.08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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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은 단순히 대중가요를 넘어 K-Pop의 상징으로 사회 구조, 미디어, 예술형식 등 기존의 위계질서와 권력관계를 침식하며 사회 전체를 뒤바꾸는 혁명적 존재로까지 인식되고 있다. 90년대의 '서태지와 아이들'이 X-세대의 문화 대통령이었다면 지금의 방탄소년단은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적인 팬덤을 형성하면서 전 지구적인 규모의 포괄적이고 근원적인 변혁을 불러일으켰다. 아시아 뮤지션의 진입 장벽이 높기로 악명 높은 미국 시장에 진출하여 이룩한 경이로운 기록들과 방탄 멤버들의 한국어 이름을 연호하고 한국어 가사를 떼창으로 부르는 외국 팬들의 모습은 그전에 어떤 대한민국 예술인도 이루지 못한 성과였다. 방탄의 성공 요인을 분석한 기사는 이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며 논문이나 연구물도 쌔고 쌜 정도지만 영화 철학자이자 현직 대학교수가 방탄 현상을 들뢰즈를 빌려 더욱더 견고히 이론화, 체계화하면서 예술 생산 양식의 변화와 공유가치에 대해 연구하며 사회, 문화적으로 끼친 긍정적인 영향을 연구하였다니 호기심이 일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덥석 짚었다. 도서출판 파레시아에서 출간한 2018년 세종도서 교양부분 선정작인 <BTS예술혁명, 방탄소년단과 들뢰즈가 만나다>(이지영 저)의 한 장 한 장을 넘길수록 연구의 깊이가 놀라웠고 클래식/순수예술을 하는 필자의 지경도 그만큼 넓혀졌다.

2018 세종도서 교양부분 선정작, 파레시아에서 출판한 이지영 저의 'BTS예술혁명, 방탄소년단과 들뢰즈가 만나다'
2018 세종도서 교양부분 선정작, 파레시아에서 출판한 이지영 저의 'BTS예술혁명, 방탄소년단과 들뢰즈가 만나다'

책을 구입한 일차적인 목적은 벤치마킹이다. 클래식 음악도 타 장르의 성공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접목하고 수용하여 침체를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전략적인 접근이었다. 방탄의 성공 요인이라고 일컫는 아래의 몇 가지 사항들을 클래식 음악과 결부시켜 비교해 보자.

① 좋은 음악: 클래식 음악의 예술성과 위대성은 이미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질적 비교는 무의미하며 조성진, 선우예권, 손열음 등 음악적 탁월함을 갖춘 월드 클래스 영 아티스트들도 많다.

② 파워풀한 칼군무: 혼신의 힘을 다해 음악에 취한 연주자의 행복하고 열정적인 연주 모습, 옆의 멤버와 함께 눈으로 입으로 몸으로 호흡을 맞추며 오랜 기간 숙성되고 체화된 혼연일체 앙상블, 수십, 수백 명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지휘자에 맞춘 일사불란하면서도 절도 있는 연주 모습과 제의적인 광경은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시각적인 퍼포먼스 효과는 장르와 방식만 다를 뿐 대동소이하다.

③ 트렌디한 패션 감각과 외모: 결국엔 외형적인 어필, 잘생기고 아름답고 패셔너블한 클래식 음악가들은 같은 연주라고 해도 일반 대중들에게 더욱더 사랑받는다.

④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담아 젊은 층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가사: 이게 가장 취약점이다. 우리 언어로 되어 있지 않은 유럽 음악이다 보니 알아듣지도 못한다. 아무리 좋은 가곡이나 오페라 아리아도 언어를 알아야지 공감을 하든 말든가 할 거고 우리 언어로 되어 있는 가곡들은 가사가 아니라 시로 되어있다.

⑤ SNS를 통한 활발한 커뮤니케이션: 장르 불문 그거 안 하는 뮤지션은 드물다. 신비주의를 고수하는 몇몇을 빼고 팬들과의 활발한 소통은 누구나 원한다.

결국 음악은 부차적인 거고 가사에서 오는 이해와 공감 그리고 멋지고 화려한 퍼포먼스를 통한 이미지를 전 세계적으로 퍼져있는 충성스러운 방탄의 팬클럽인 ARMY와의 수평적인 연대와 협력한 게 기존의 수목적 위계 구조를 탈피한 변방의 중소 기획사 출신 방탄소년단의 성공 요인으로 귀결된다. 클래식 음악은 결정적으로 과거의 음악을 악보에 써진 대로 재현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결정적인 한계가 있다. 원작을 훼손할 순 없는 노릇이고 클래식에서의 뮤직비디오라고 해봤자 연주 행위 영상이며 작품의 시대적, 사회적 배경이 없는 곡이란 애초에 없겠지만 기악 음악의 한계상 공부를 해야 하고 추상적이다. 음악 감상 말곤 2차, 3차 스핀 오프나 연계된 파생물을 제작하는 데 한계가 있다.

필자의 책장에 꽂혀 있는 영화철학자 이지영이 저술한 'BTS예술혁명, 방탄소년단과 들뢰즈가 만나다'
필자의 책장에 꽂혀 있는 영화철학자 이지영이 저술한 'BTS예술혁명, 방탄소년단과 들뢰즈가 만나다'

방탄의 특징인 아름다운 연대로 우리의 삶과 행복을 위해 끝까지 싸워나가자는 제안과 가슴 떨리는 혁명의 노랫말이 심장을 두드리는 비트와 눈을 의심하게 하는 압도적인 퍼포먼스와 더불어 펼쳐지는 건 바그너가 그랬고 리스트가 그랬고 푸치니가 그랬다. 책에서 언급한 발터 벤야민의 지적대로 예술형식이 자신에게 적절하지 않은 요구에 부응하려는 현상 그 자체가 그 예술형식의 위기다. 그래서 수용자의 비평적 태도와 감상적 태도는 점점 더 분리되고 회화나 클래식 음악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현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음악을 전달하는 주된 매체는 뮤직비디오가 되었으며 음악만을 감상하는 청중(Audience)은 축음기 발명 전까지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그전까지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자신이 직접 연주하거나 아님 누가 하는 걸 보아야 했다!) 관객(Spectator)으로 지칭하는 게 현재의 매체적 상황을 반영한다 하겠다.

방탄의 진가를 알아보고 헌신적인 사랑과 지지를 보내는 팬들과의 연대와 협동으로 지금의 방탄이 있는 거고 브랜드 파워다. 예를 들어 3포 세대의 좌절과 희망을 주제로 한 피아니스트 장윤진의 뮤직비디오 <Cheer up, Jiny>는 여러 유사한 점이 발견됨에도 불구하고 외면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뮤지션의 지명도 차이? 홍보와 마케팅의 차이? 영화와 대중 미디어의 파급력? 비슷한 작품성과 예술성이라면 만약 Cheer Up을 방탄소년단 멤버 중의 한 명이 연주했다면 지금보다는 더한 유명세를 치르고 알려졌을 거란 반증? 악보를 무료로 배포해서 블로그에도 올려놨는데도 아무도 관심이 없다.

개인적인 관심사는 이만 거두절미하고 이지영의 <BTS예술혁명, 방탄소년단과 들뢰즈가 만나다>는 분명히 시대의 생산양식이 변하고 그에 따른 예술의 새로운 역할과 형식이 요구되는 걸 막연하게 느끼지만 그에 걸맞은 사례를 제시하지 못해 이론적 가설만 제시한 상태에서 더 이상 진전시키지 못한 학자가 적합한 연구 대상을 만나 방탄현상이 단순한 개인의 취향이나 해석이 아닌 세상의 근본적인 구조의 변화와 맞물려 있음을 알게 해주는 수작이다. 1부와 2부가 방탄을 분석한다면 부록(3장이라고 차라리 칭하는 게 더 타당할)에서는 발터 벤야민의 예술 변화에 대한 역사적 인식을 바탕으로 질 들뢰즈의 영화철학의 시대적 한계를 넘어보려는 매체 철학적인 논의인데 그 한 꼭지만으로도 아주 유익하다.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방탄소년단을 통한 사회변혁 분석과 함께 모바일 네트워크 시대의 온라인, 비디오, 푸티지 영상에서 실험적 다큐멘터리 등 영화화 인접 영상 예술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예술의 변모까지 알 수 있으니 단돈 13,000원이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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