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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서정

김주선 수필가
  • 입력 2021.01.30 15:00
  • 수정 2023.09.15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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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에 제5호 동인지 [폴라리스를 찾아서]가 발행 예정입니다.
계절과 관련된 저의 작품 [겨울 서정]을 '미리보기' 올립니다.

약 기운으로 어질어질한 몸을 일으켜 유년의 길목을 나섰다가 길을 헤맨다. 눈길에 난 꿩 발자국을 따라간 아버지의 설피 자국이 내 마음에도 꾹꾹 자국을 남겼나 보다. 꿈길인지 눈길인지 발자국을 따라 걷다 보면 덤불 속에서 푸드덕거리는 까투리가 보였다.

겨울서정
겨울서정

 

겨울 서정

으슬으슬 몸살 기운이 돈다. 재채기가 나는 걸 보니 고뿔까지 들려나 보다. 때가 때인지라 서둘러 피로회복제 한 알과 쌍화탕을 데워 마셨다. 온몸에 약발이 도는지 낮부터 졸음이 쏟아진다.

이재무 시인은 십일월을 가리켜 의붓자식 같은 달이라 했던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허드레 행사나 치르게 되는 달이라고. 하지만 긴 겨울나기를 준비하느라 아버지는 가장 분주했다. 부엌을 고치고 굴뚝을 소제하고 측간을 비워야 했다. 모든 채비가 허드렛일이 아니었다.

상달은 일꾼의 새경을 치르고 도지를 정산하는 달이기도 했다. 농부의 빈손에 열매가 쥐어지는 달이므로 곳간이 채워질수록 집안에도 자잘한 행복이 차고 넘쳤다. 아무리 무딘 조선낫일지라도 추수가 끝나면 숫돌에 가는 일이 없었다. 고된 농사일로 자루가 부러진 연장조차 헛간 시렁에서 쉬게 하는 것이 농사꾼의 마음이었다.

소설이 지나면 김장을 했다. 시래기를 엮어 처마 밑에 매달고, 무말랭이나 호박을 썰어 말리기도 했다. 김장이 끝나야 한해 농사가 마무리되었으므로 시제를 올리고 떡을 돌렸다. 또한, 볏짚 써는 작두질이 가장 신명 나는 절기(節氣)이기도 했다. 작두를 밟는 사람이나 볏짚을 물리는 사람이나 신기하게 호흡이 척척 맞았다. 풍요가 가져온 신바람이었다.

외양간의 소들도 여물 익는 냄새를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볏짚 써는 소리만 들어도 허연 콧김이 서릿발처럼 서려 코뚜레를 벌름거릴 정도였다. 가축이 먹을 여물 간도 채우고 땔감 창고도 채우고 나면 삼거리 이발소로 내려갔다. 억새 같은 머리를 이발하고 턱밑까지 파랗게 면도를 한 아버지가 식구들 털신을 사 들고 오셨다. 하루하루 다르게 크는 아이의 신발 문수를 어떻게 아시는 건지 매일 밤 곯아떨어져도 눈대중은 정확했다.

상달이 낀 십일월과 십이월은 일 년 중 가장 행복한 달이었다. 지금처럼 삶은 돼지고기로 보쌈은 못 해 먹어도 꾸덕꾸덕 말린 시래기나 우거지로 장국을 끓여 밥 한술 뜨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어쩌다 선지 한 사발을 장국에 붓는 날에는 생일상보다 나았다. 그뿐인가, 생선이 귀한 산골에서 자반고등어를 먹을 수 있는 계절도 소설이 지난 후였다. 생선 장수가 소금에 절인 짠 고등어를 머리에 이고 팔러 다녔다.

장날이 아니고서야 외지 음식을 맛볼 수 없었으니 생선 장수가 다녀간 날 저녁 밥상은 집마다 똑같았다. 초저녁 군불을 땐 아궁이 앞에 숯불을 끌어내어 자반 한 손을 석쇠에 올렸다. 비리고 고린내가 나는 고등어가 지글지글 구워지면 온 동네 개들이 환장했다. 개밥그릇까지 갈 대가리조차 남지 않았다. 눈알도 파먹을 만큼 맛있는 생선이었으니까.

감나무가 있는 집 아이는 말린 곶감 빼먹는 재미로 겨울을 난다지만, 산간지방은 곶감이 귀했다. 헛간 양철 지붕 위에서 얼고 녹기를 반복한 고구마말랭이가 내 기억의 창고에 넣어둔 귀한 간식거리였다. 그 무렵, 뻥튀기 장수가 마을을 돌아다녔다. 펑펑 튀는 폭음과 함께 고소한 강냉이를 튀겨대면 온 동네가 들썩거렸다. 마법 가루인 사카린 한 숟가락을 더 넣어달라고 은밀히 귓속말을 넣는 아이도 있었다. 추울 땐 단맛이 당겼을 터다. 그것은 소한, 대한까지도 이어지는 겨울날의 서정이었다.

대설 무렵 메주를 쑤고 나면 긴 농한기에 접어든다. 아랫목에 발을 묻고 호롱불에 콧구멍이 까맣게 그을렸던 밤, 사랑방 일꾼이 새끼꼬는 틀을 돌리면 안채에서 밤참을 준비했다. 화롯가에 모여앉아 꽁꽁 언 수수부꾸미를 구워내거나 가래떡을 구워냈다. 조청 단지는 어느 집에나 있는 꿀단지였다. 한번 쌓인 눈은 이듬해 입춘까지 녹는 법이 없었다. 산짐승이 먹이를 찾아 농가로 내려왔다가 박제가 되는 일이 흔했다. 산 꿩은 육질이 질겨 다짐육을 만들어 만두 속을 채우고 국물맛을 냈다. 마누라 치마까지 벗겨간다는 투전으로 땅문서를 잡히는 일만 없다면 농사꾼의 농한기는 안분지족의 행복이었다.

어느 해인가. 개량종 볍씨가 토질과 맞아떨어져 곱절의 벼수확을 했다. 풍년이 들었으므로 잔치를 벌였다. 돼지를 잡는 날이기도 했다. 뜨끈한 피비린내와 개울가에서 내장을 씻는 역겨운 냄새에 비위가 상했던 나는 친구들과 공기놀이를 하느라 방에 있었다. 대형도마 위에 토막 난 고깃덩이만 보았을 뿐, 막상 해체과정은 어른들이 못 보게 하였다. 호기심 많은 사내 녀석들이 기웃거리면 도살꾼이 질긴 오줌보를 떼어 마당에 휙 던져 주었다. 빨대를 이용해 바람을 불어넣거나 물을 채워서 공놀이하느라 신발이 꼬질꼬질해졌다. 참 고약한 냄새가 나는 물건이었다.

이리저리 어린놈의 발길에 차이다 쇠죽솥 활활 타오르는 장작더미 속으로 사그라졌다. 유일하게 질겨서 먹지 않는 부위로 돼지 오줌보는 추억의 축구공으로 희생되었다. 매년 풍년이 든 것이 아니므로 오줌보를 찰 수 있었던 유년은 행운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비위가 상해도 비곗덩어리 하나에 행복했던 시절, 광에 걸린 돼지앞다리 하나로 겨울을 나면 이듬해 키가 한 뼘은 자란 듯 보였다. 볼살이 튼 아이나 노각 같은 노인의 등껍질에 번지르르 기름이 꼈던 그해 겨울나기는 마음까지 살찌운 농부의 노고였기에 가능했다.

추억은 이토록 힘이 세졌는데 나는 김치 한 통 담그고 몸져누웠으니 어쩌면 좋을까. 마트 앞 트럭에서 고랭지 배추를 팔길래 무심코 구경하다가 사고를 쳤다. 같은 영월사람이라고 배추 장수가 내 말투에 숨은 억양을 금방 알아채는 바람에 덜컥 일을 낸 것이다. 덤으로 얹어주는 인심에 혹했고, 장삿속이겠지만 고향 오빠 같은 정겨움에 지갑을 열었다. 늘 친정 언니한테 얻어먹던 김치를 내 손으로 담글 줄이야.

남편이 이마에 손을 얹어보고 이불을 끌어 덮어주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회색이 짙은 상달은 견디기 힘들었다. 게다가 우울증까지 도지면서 사는 게 귀찮아졌다. 마음의 병은 욕심이 채워지지 않을 때 오는 공허함이란 걸 안다. 나무도 단풍을 털어내고 긴 안식에 들었는데 뜻 모를 허전함을 채우려 김장을 했나 보다. 무청을 삶아 채반에 널고 배추 우거지를 꼭 짜서 냉동칸에 넣었다. 호박, , 가지를 썰어 식품 건조기에 돌렸다. 이래저래 어머니가 하던 겨울 채비 흉내는 내었건만, 온난화로 인해 도시의 대설은 산촌의 소설보다 순하고 녹록하다.

이맘때쯤이면 산간에는 눈꽃이 피고 개울가에 얼음꽃도 피어날 텐데, 첫눈은 언제 오려나. 산골의 풍경은 노인의 하루처럼 쓸쓸하고 고즈넉할 뿐, 마음 누일 곳 없이 황량하기만 하다. 마지막 남은 농부의 자손은 먼 산만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다.

약 기운으로 어질어질한 몸을 일으켜 유년의 길목을 나섰다가 길을 헤맨다. 눈길에 난 꿩 발자국을 따라간 아버지의 설피 자국이 내 마음에도 꾹꾹 자국을 남겼나 보다. 꿈길인지 눈길인지 발자국을 따라 걷다 보면 덤불 속에서 푸드덕거리는 까투리가 보였다.

김주선
jazzpiano63@hanmail.net
2020년 <한국산문>등단
한국산문작가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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