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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기억 5-3 / 풀밭

김홍성
  • 입력 2021.01.20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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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신문의 공모전에 K 형의 소설이 당선된 해는 언제였을까? 내가 군에 입대하기 전이었을까, 아니면 복학해서였을까? 기억이 확실치 않다. 일단 1976년이라고 해 두자. 70학번(69학번이라는 설도 있었다) 복학생이었던 K 형은 특별한 군대 생활을 했다. 카투사로 미2시단 제주도 휴양소에서 근무하다가 미군들의 흑백 갈등에 휘말려 병장 때 국군에 편입되었다.

 

K 형은 전방 부대 소총 소대에 재배치되었는데 병장 대우를 못 받았다. 카투사에서, 그것도 제주도 휴양소에서 근무한 죄로 소대 내무반 최하위 졸병들과 동급으로 취급되며 지난한 말년을 때웠다. K 형의 소설은 제주도 미군 휴양소의 흑백 간 인종 차별이 소재였다. 내 기억에 그 소설은 일간지 신춘문예에 냈어도 당선 되고 남을 훌륭한 작품이었다.

 

당선작 시상식이 있었던 날, 우리는 학교 근처의 주점 개미집에서 축하연을 열었다. 그 때 거기 있었던 사람들의 면면을 여기에 일일이 소개할 필요는 없겠다. 중요한 것은 K 형이 술에 취해서 북악 스카이웨이를 한 바퀴 도는 드라이브를 하겠다고 일어섰다는 점이다. 앞장 선 K 형의 가슴에는 새신랑처럼 꽃 리본이 달려 있었고 그를 따르는 나머지 세 사람들은 새신랑 들러리 같았는데 그 중 한 명이 적음 형이었다.

 

그들은 택시를 잡아타고 북악 스카이웨이를 돌다가 소변이 마려워 산중턱 어느 구간에서 택시를 세우고 내렸다. 소변만 보고 다시 택시에 올랐으면 별 문제가 없었을 텐데 전망을 구경하느라고 머무적거리다가 풀밭에 누웠던 모양이다.

 

수도경비사령부 소속 북악산 경비병들이 나타나서 민간인이 내릴 수 없는 구역임을 알리고 빨리 가라고 하는데 안 가고 시비를 벌였음이 틀림없다. 우리 술 취한 학생 예술가들은 잘 훈련된 경비병들에게 무자비하게 얻어맞고 코피까지 터진 후에야 택시를 타고 다시 흑석동으로 돌아왔다.

 

주눅도 들고 화도 난 괴상한 표정으로 개미집 문을 열고 들어선 네 사나이들 중 맞은 표가 심하게 나는 사람은 적음 형이었다. 적음 형은 코피를 막느라고 콧구멍에 끼운 휴지를 아직 빼지 않은 상태였는데 K 형이 가슴에 달았던 꽃 리본은 어느새 적음 형의 가슴으로 옮겨져 있었다. 그 꽃 리본에는 덜 굳은 코피 몇 점이 시든 꽃잎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돌아온 선배들과 남아 있던 후배들은 다시 뭉쳐서 탁주를 마셨다. 탁주잔에 침을 뱉어서 마시는 자도 있었고, 급기야 좆을 꺼내서 탁주잔을 휘저어 마시는 자도 생겼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통행금지가 임박하도록 그렇게 미친 짓을 하면서 마셨지 싶다.

 

다들 그 날 어디서 잤을까? 이튿날 새벽에 나는 내 몸이 어디론가 실려 가는 느낌이 들어서 잠을 깼다. 깨고 보니 내가 있는 곳은 구청에서 운용하는 쓰레기 수집 구루마였다. 어쩌면 적음 형도 다른 지역의 쓰레기 수집 구루마에 들어가 잤을 지도 모른다.

 

늦은 가을의 풀잎들, 늦은 가을의 아이들

무거운 함성을 지르며

아이들이 간다 그리고

풀 위에 눕는다

 

하나 둘 돌을 던진다

허공을 가르며 돌은

풀밭 저 끄트머리

어느 변경에 떨어진다

 

갈색 마른 향기를 풍기며

풀이 죽어간다

아이들은 놀라 아득히

그들이 집을 향해 달아난다

 

늦은 가을의 풀잎들

늦은 가을의 아이들

 

- 풀밭 全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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