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기억 2-17 / 하늘을 나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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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기억 2-17 / 하늘을 나는 꿈
  • 김홍성
    김홍성 ktmwind@naver.com
  • 승인 2021.01.11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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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없는 잠이 있을까. 다만 기억하지 못할 뿐이리라. 냄비의 물이 찌개를 끓이듯 잠은 꿈을 끓인다. 최근 며칠 동안 내 잠은 무슨 꿈을 끓였던 것일까?  온동네를 돌며 구걸해온 여러 가지 음식물들을 한꺼번에 쓸어 넣고 끓이는 다리 밑 걸인들의 죽처럼 빈곤하고 스산한 잡탕이 대부분이다.   

 

꼬리지느러미가 달린 고등어 뼈, 갈치 대가리, 양파 껍질, 파 뿌리……. 잡탕 속에는 이런 박테리아성 쓰레기에 불과한 것들도 함께 끓고 있었다. 그런 죽에서는 걸레나 행주 냄새가 날 뿐, 그것이 무슨 죽인지 분명치가 않다. 그러나 내 머리가 아직 번쩍번쩍 하는 새 냄비였을 때는내 잠이 아주 맑은 샘물 같았을 때는, 신선한 꿈을 자주 담아내곤 했으니, 그것은 하늘을 나는 꿈이었다.

 

맨 처음 날았던 곳은 서울 계동 골목이었다.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날마다 드나들던 그 비탈진 골목길이 활주로였다. 책가방 없이, 교복이나 교모도 없이, 헐렁한 자루 같은 옷을 입고 비탈을 달려 내려가다가 몸을 날린 순간 내 몸은 탄탄하고 부드러운 부력 위에 실려서 동네 골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검은 기와지붕들 사이에서 골목은 가르마 같았다. 장독대에서 장독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아주머니들은 파리처럼 조그맣게 보였다. 학교의 운동장과 국기게양대는 교과서 속 삽화 같았다. 그 때 내가 날아본 하늘은 주로 학교나 집, 또는 과외공부를 다니던 낙산 골목 언저리였다.

 

하늘을 나는 그 상쾌한 꿈의 끝은 결국 추락이라는 결말로 각본 지어져 있었다. 단 한 번도 멋지고 안전하게 착륙해본 적이 없다. 언제나 어이없거나 갑작스런 추락이었다. 공포에 질려 소리 지르고 발버둥 치다가 깨어나 보면 내 머리는 비좁은 방구석에 놓인 책상 밑에 구겨져 있곤 했다. 번쩍번쩍했던 꿈의 찌개 냄비는 그렇게 추락하면서 신선하고 상쾌한 꿈을 번번이 엎질러버렸다. 

 

사춘기 직전부터 나이 마흔이 될 때까지 잊을 만하면 다시 꾼 똑같은 장면의 꿈들도 있다. 가장 빈번하게 꾼 꿈에서는 대여섯 살 쯤 된 어린애가 보인다. 수레의 맨 꽁무니에 걸터앉아 있다. 강물위로 늘어뜨린 연약한 두 다리 밑으로 흐르는 강물이 아주 맑다. 그리 깊은 물이 아니어서 수레바퀴에 눌린 조약돌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수레에는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다. 식구들인 듯 대부분 친숙한 모습들이지만 딱 누구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다. 크고 작은 보퉁이들도 실려 있고, 수레를 끄는 커다란 소의 머리와 뿔도 보인다. 그런데 갑자기 수레가 기우뚱하면서 꿈에서 깬다. 강가에 늘어선 미루나무들도 기우뚱한다. 

 

물고기들을 응시하는 꿈도 자주 꿨다. 아니 물고기들이 나를 응시하는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물고기들은 몸통에 비해 눈이 크다. 그 눈은 빛을 머금고 있고, 눈썹 같은 아가미는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그 물고기가 있는 곳은 바위굴 속 샘물 같은 곳이다. 그리 깊지도 않고 넓지도 않지만 맑은 물이다.

 

이런 꿈들이 내가 살아내면서 생긴 상처나 기억들과 함께 내 안으로 들어가는 징검다리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충분하지 않다. 어떤 징검돌은 물속에 잠겨 버렸고, 어떤 것은 위태롭게 기울어져 있다. 먼 데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

 

네팔에서 버스를 타고 히말라야를 넘어 찾아간 티베트의 수도 라싸 근교의 강변 풍경은 내 어린 시절 꿈에 본 강변 풍경과 흡사했다. 누구 말 처럼 그 꿈이 내 전생 기억의 편린이라면 왜 하필 그 강을 건너는 장면만 반복해서 꿈꾸었는지가 궁금하다. 수레에 같이 탄 사람들은 집안 식구들이었을까. 우리는 왜 그 강을 건너야 했을까. 그 강을 건너 어디로 가려던 것일까.

 

어둑한 동굴 속에 술 항아리 같은 연못이 있고, 연못의 맑은 물속에 물고기가 몇 마리 있어 동그란 눈을 뜨고 고요한 숨을 쉬고 있는 꿈도 전생 기억의 편린이라면 나는 전생의 한 때에 물고기로 살았다고 해도 되는가?

 

고단한 여정이라서 노독이 쌓인 탓이겠지만, 산소가 희박한 고산지대를 달리는 버스라서 더욱 그렇겠지만, 차창 밖 풍경은 실재하는 것이 아닌듯한 느낌이 들었다. 차에 치어 여러 날 혼수상태에 있다가 깨어났던 다섯 살 때 일도 불현듯 떠올랐다. 벼락을 맞고 폭우 속에 실신해 있다가 깨어난 군대 시절도 생각났다.

 

다섯 살 때 혹은 군에 있을 때 혹은 오랜 옛날의 라싸 근교 강가에서 나는 이미 죽었는지도 모른다. 죽었는데 죽은 줄도 모르고 희로애락 속에서 부유하는 귀신이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그 때 처음으로 스쳤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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