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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 볼수록 이상한 사마천 사기 조선열전! (7)

이원환 전문 기자
  • 입력 2021.01.05 15:56
  • 수정 2021.06.22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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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四郡 은 없다! 기원후 100년에 漢書를 편찬하면서 200년전인 기원전 100년에 편찬된 史記 조선열전에 ‘漢四郡”을 써 넣은 것이 아닐까?

기원전 100년에 사마천이 쓴 사기를 지금까지 어느 누군가는 한 번 이상은 고쳤을 것이다.

현재 존재하는 사마천 史記중에서 가장 오래된 판본은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에 쓰여진 것일까?

사기 조선열전이 변조된 시기는 아래 둘 중 하나이다.

첫째 기원후 100년 경 한서가 편찬될 즈음

둘째 기원후 285년 경 삼국지 위서 동이전이 편찬될 즈음

언제 어느 부분이 변조되었는 지를 밝히기는 매우 어렵다. 변조 가능성만 살펴보자.

 

한서가 편찬될 즈음 변조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기열전에서 4군을 설치하고 연이어 5제후국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전후문맥상 너무도 이상하다.

以故遂定朝鮮, 爲四郡. 封參爲淸侯, 陰爲荻苴侯, 爲平州侯, 長爲幾侯. 最以父死頗有功, 爲溫陽侯.  (다른 부분)左將軍徵至, 坐爭功相嫉, 乖計, 弃市.(이하 생략)

위 기사에서 以故遂定朝鮮, 爲四郡. 封參爲淸侯,

이 중 爲四郡.을 없애도 문맥은 전혀 이상이 없다. 도리어 훨씬 매끄럽다.

이에 마침내 조선을 평정하여 4개 군으로 했다. ‘참’을 홰청후에,...( 5개 제후를) 봉했다 “ 가

이에 마침내 조선을 평정하여 ‘참’을 홰청후에, ... (5개 제후를)  봉했다.”로 된다.

비교해 보시라. 어느게 매끄러운가?

 

사기열전에서 1) 4군설치 뒤에 나오는 제후국이 5개인 점, 2) ‘위4군’을 없애면 문장이 훨씬 매끄러운 점, 漢書 조선전 해당 기사에서 3) 4군의 이름이 처음 나온 점 4) 5개 제후국 관련 기록이 없어진 점 5) 한서가 사기보다 200년 후에 편찬된 점을 감안할 때

한서를 편찬하면서 사기열전에 ‘위4군 爲四郡”을 써 넣은 것으로 본다.

한서를 편찬하던 기원후 100년 이후에 전해지는 역사서에 (고)조선은 한 챕터로는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대신 고구려, 부여의 이름이 나온다.

부여, 고구려는 두 국가 공히 (고)조선의 제후국 내지 (고)조선에 완전히 종속되지 않은 연방제 국가 정도로 기원전 108년 이전부터 존속했던 것으로 본다.

이 부분은 나중에 다시 자세히 공부해 보자.

 

漢사군은 없었으며, 고조선이 없어진 자리에 5개 제후국이 들어섰다.

5개 제후국의 위치에 대해서는 연구가 매우 많이 필요하다.

아래 표는 역사서별 편찬시기등을 정리한 것이다.

 

저자

편찬

연대

한국

관련

주요내용

비고

사기

사마천

기원전 100년

조선열전

조선 평정후

5 제후국 건국.

漢四郡 이름 없음

1) 평주후 2)열(온)양후 3)기후 (國除) 4)적저후 (지금의 하북성 창주시) 5)홰청후 (지금의 산서성 진성시)

한서

반고

기원후 100년

조선전(서남이 양월 조선전)

낙랑, 진번, 임둔, 현도 한사군 이름 처음 등장

위 5개 제후 기록 없어짐.

후한서

범엽

(魏晋南北朝  남조

(南朝)

송宋))

440

동이열전

부여, 읍루, 고구려, 동옥저, 예, 韓, (왜가 동이로 분류.)

기원후 25년~220년 대상. 범엽이 남조 사람이고 편찬시기가 440년이라 동이 관련은 이전자료 종합한 것. *

삼국지

진수

(서진)

285

동이전(오환선비동이전)

부여, 고구려, 옥저, 읍루(揖婁), 예(濊), 한(韓), 왜인

위나라를 정통으로 봄.

부여관련 기사는 기사의 1/3 정도가 《위략(魏略)》기사와 관련된

* 譯註 中國 正史 外國傳 3 後漢書外國傳 譯註 해제. 동북아역사넷.

 

세세한 부분을 제외하고 사기 조선열전과 한서 조선전의 큰 차이는 다음 두 가지이다.

1) 한서 ‘서남이 양월 조선전’(줄여서 한서 조선전이라 한다.)에서 사마천의 사기에는 없던 낙랑, 진번, 임둔, 현도 4군을 삽입한 것을 잘 해석하여야 한다.

한서 조선전에서 4개 군의 지명이 처음으로 나왔고 후대의 역사서는 이를 기초로 만들어졌다.

2) 한서 조선전에는 사기 조선열전에 나오던 5 제후국에 관한 기록이 없다.

사기 조선열전에서는 1) 평주후 2)열(온)양후 3)기후는 나라가 없어졌다고 (國除) 기록했는데 4)적저후 (지금의 하북성 창주시) 5)홰청후 (지금의 산서성 진성시)는 나라가 없어졌다는 기록이 없다.

반고가 한서를 쓸 때에는 기원후 100년으로 적저후와 홰청후에 대해서 충분히 전승이 남아 있을 상황으로 본다.

적저후, 홰청후. 동이족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적(狄)과 이두식으로 읽어야 할 것 같은 홰 ( = 獲, 濩)를 보면 조선이 한나라에 의해 완전히 멸망한 것은 최소한기원전 108년은 아니다. 그 후로도 상당히 존속했을 것이며 이를 밝혀 내는 것이 중요하다.

 

기원후 285년 경 삼국지 위서 동이전이 편찬될 즈음 사기 조선열전이 변조되었을 것이라는 가정에 대해 살펴보자

한서 조선전 이후 중국 역사서에 ‘조선’만 따로 떼어 쓴 부분은 없다. 

사마천의 사기 조선열전의 편찬시기는 기원전 100년, 한서 조선전의 편찬시기는기원후 100년,

진수의 삼국지가 편찬될 무렵은 기원후 285년 경

사기 조선열전과 한서 조선전, 한서지리지 등에 漢사군을 삭제,가필하여 동이(한민족)의 강역을 크게 변조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조선전을 아예 없앰으로 한서가 사기를 변조했으면 한서의 기록을 그대로 인정하고 기원후 285년경 동북아역사에서 중국 특히 위나라 우선으로 역사를 썼으리라 본다.

크게 살펴볼 것은

1)삼국지위서동이전 韓조에 나오는 위략 인용기사로 기원전300년경 연나라 진개가 조선을 침공하여 200리를 뺏들었다는 기사와 한국의 일부 학자들이 한사군이 지금의 중국 요녕성 요하 하구지역으로 비정하는 연구결과

2) 위서 동이전의 무대가 한반도를 포함하는지에 대한 해석이다.

대학입시, 공무원 시험 국사에서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에 대한 문제,

영고’,’동맹’이 다음기록이 나오는 책은 어디인가? 등이 출제되기까지 했다.

이로서 시민들은 당연히 고구려, 부여의 강역이 한반도와 만주일대라는 고정관념이 생기게 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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