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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는 사슴이 아니다?

김정은 전문 기자
  • 입력 2021.01.04 16:56
  • 수정 2021.01.12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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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의 정체성

사슴(사진=두산백과 갈무리)
사슴(사진=두산백과 갈무리)

자율 주행 자동차가 나온 마당에도 여전히 산타의 썰매지기 루돌프는 정체성은 순록이나 사슴이기도 하다. 크리스마스 때만 되면 순록인데 발음이 노래로 어울리지 않아 사슴으로 부르는 거지 원래는 순록이다로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호랑이가 고양이과라고 해서 고양이로 불러도 되냐 하면서.

루돌프는 순록이지만 한국어에선 사슴으로 불러도 된다. 사슴이 종으로는 순록과 다르지만 국문법에서 사슴은 사슴과 동물을 총칭하는 단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종속과목강문계가 아니라 고라니, 순록, 사슴 류를 다 사슴으로 명명한다. 그러므로 루돌프가 한국에서 운행할 때는 사슴이다.

내게도 산타의 선물이 날아온 때가 있다. 베를린에서 목사님 소개로 노인 아파트를 싸게 임대했다. 한 달에 20만원이면 거저다. 2층에 전망도 좋았으며 조용하고 마당도 있었다. 밤이면 지나치게 높고 검은 나무가 바람에 울 때면 무서운 거 빼고는.

며칠을 지낸 후 어느 날 보니 문 앞에 큰 비닐이 놓여 있었다. 안에는 내의와 겉옷, 슬리퍼와 여러 물품들과 종이에 써달라고 쓰여 있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선물이길래 받았다. 큰 돈 쓴 거 같지 않아서 부담이 없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노인 분을 만나서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누가 가져다 놨는지 아냐고 했더니 자기라고 한다.

할머니는 날 초대했다. 앉아서 얘기하는데 젊은 시절 회사에서 비서로 일해 영어도 잘하게 됐다고 한다. 자식도 없고 가족도 없어 혼자 지낸다며 언제든지 찾아와도 좋다고 한다. 전날 만난 어르신은 놀러 오래 놓고 갔더니 문도 안 열어 줘서 서운했는데 좋으신 분이다. 케이크와 커피를 주면서 구두 소리가 너무 심하다고 자기가 준 실내화를 꼭 신어 달라 한다. 죄송했다. 짐 무게를 줄이려 실내에서도 딱딱한 신발을 신고 걸었다. 몇 번 더 찾아가서 말벗이 되어 주었다. 안 돼 보였다.

도시엔 셰퍼드가 많다. 골목 꺾어질 때마다 시커먼 개 두 마리씩 짝지어 다닌다. 입에 재갈이 물린 것도 있다. 한번 사람을 문 개는 재갈을 한단다. 독일에선 개에게 물리면 영주권인지 시민권이 나온다는 말도 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만큼 개에게 사람과도 같은 지위를 주기에 그런 말도 나왔을 거다. 개는 그들의 친구라는 의미로.

세계 대전 때 남편과 아들들이 참전해서 전사하고 남은 미망인들이 무섭고 외로워서 기르게 돼서 많아졌다 한다. 개에게 매달 7만 원 정도 사료비가 나와 노숙자들도 많이 기른다. 세 마리 쯤 기르면서 자기 음식도 사 먹고 개도 사주고.

젊었을 때 영리하고 용감하고 현명한 셰퍼드 같았을 할머니. 개도 없이 매일매일 소일거리 없이 지낸다. 몇 달에 한 번 씩 다른 도시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한다. 셰퍼드 같이 도시를 지키고 독일의 번영을 지킨 노후의 쓸쓸함이 애절하다.

산타가 순록을 타고 오든 사슴을 타고 오든 무슨 상관인가. 중요한 건 우리 모두가 산타의 마음이 돼서 겨울을 녹이는 거다. 주변을 잘 돌아보는 새로운 한 해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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