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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기억 2-16 / 못된 놈

김홍성
  • 입력 2021.01.08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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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유로 불려 나갔는지는 이제 희미하다. 그 때 생긴 이마 위의 흉터도 잘 봐야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희미해졌다. 그러나 그 선생의 성난 괴물 같은 모습은 아직도 눈에 어른거린다. 그는 겨우 열두 살 먹은 6학년 어린이의 머리통을 수박 들 듯 두 손으로 움켜쥐고 들어서 칠판에다가 두두두두 소리가 나게 연속으로 쳐 박았다. 그가 동작을 멈추고 내 머리를 붙들었던 두 손을 뗐을 때 나는 어지러워서 그대로 주저앉을 뻔 했다.

한 반에 백 명이 넘는 아이들을 통제하며 수업을 진행해야 되는 교사의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아무리 말썽꾸러기라도 해도 그렇지 애 머리를 칠판에다가 두두두두 처박았다는 것은 그가 제정신이 아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만일 요즘 선생이 그랬다가는 애 부모가 가만 안 놔뒀을 것이다.

50 년이 지났지만 그 선생의 턱은 확실히 기억난다. 영화 스팔타카스의 주연을 맡았던 배우 카크 다그라스처럼 턱 가운데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깊은 주름이 패여 있어서 별명이 보지턱이었다. 선생은 자신에게 그런 야비하고 저속한 별명을 붙인 놈이 바로 나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상처난 이마에 생긴 피딱지를 손톱으로 긁어서 떼어냈다. 너무 세게 뜯어서 피가 주르륵 흐르기도 했다. 내 공책의 수많은 페이지는 북 뜯어져서 그 피를 닦는 휴지로 쓰이기도 했다. 하지만 선생들은 물론 아이들도 내 상처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럴수록 나는 내 상처에 골몰하여 상처를 더 크게 만들었다.

선생도 못 됐지만 학생도 여간 못된 놈이 아니었다. 이 놈은 집에 가서 책을 읽다가도 헌데 딱지를 긁어서 떼곤 했다. 상처가 번지면서 헌데 딱지는 점점 커졌다. 나중에는 머리카락들과 함께 뜯겨져 나왔다. 훗날 상처가 완전히 아물었을 때는 그 부분의 머리털이 쥐가 뜯어 먹은 것처럼 숭숭 빠져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두부 백선의 일종인 기계총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못된 놈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또 다른 증거들이 있다. 내 연필은 다른 애들과 달리 잘 부러졌다. 금방 깎았는데 부러지고 또 부러졌다. 연필 잡는 손에 너무 힘을 주고 너무 꾹꾹 눌러서 쓰기 때문이었다는 걸 알았을 때는 너무 늦었다. 가운데 손가락에 이미 보기 흉한 굳은살이 혹처럼 자라난 후였다.

공책의 페이지를 뜯어내는 버릇도 있었다. 한 페이지 거의 다 쓰고도 글씨가 마음에 안 들면 그 페이지 전체를 찢어내고 처음부터 다시 썼다. 다시 쓴 것도 마음에 안 들면 또 찢었다. 그러다 보면 새 공책이 얇아졌다.

훗날 잡지사 기자가 되어 원고를 쓸 때도 그 버릇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파지를 수없이 냈다. 취재한 내용을 기승전결 원칙에 따라 끝까지 쓰고 나서 고쳐야 될 부분은 찍 긋고 수정하면 되는데 나는 그게 안 되었다. 진행 중에 잘못 쓴 것이 나오면 그 장을 다시 깨끗하게 써야만 직성이 풀리고 계속 써 나갈 수 있었다.

너무 눌러 써서 모나미 볼펜의 볼이 닳아 볼펜 똥이 지저분하게 흘러나오다가 볼이 빠져버리는 일도 잦았다. 그러면 새 볼펜을 써야 하는데, 새 볼펜은 뻑뻑해서 글씨가 흐리게 나오므로 마분지에 문질러서 필기가 매끄러워지게 한 후에야 쓰기 시작했다.

수 십 년 전 잡동사니가 들어 있는 종이 상자 속에서 발견한 내 원고 묶음을 들추면서 긴 한숨을 쉰 일이 있는데, 휴가철의 별책 부록으로 전국의 해수욕장을 소개하는 수 백 장의 원고(그러나 얼마나 시시한 원고인가!)도 그런 식으로 작성했음이 새삼스러웠던 것이다.

이미 소설가였던 그 시절의 한 친구는 출근하는 좌석 버스에 앉아서 가방을 받쳐 놓고 원고지 15장짜리 콩트 원고를 완성했다. 어느 사보로부터 청탁을 받았는데 마침 그 날이 마감이어서 담당자가 회사 앞 다방에서 기다린다고 했던 것 같다. 전 날 술 취해서 그 친구 집에서 자고 같이 출근하는 길이었기에 옆에 앉아 직접 보면서 그가 얼마나 부럽고 또한 존경스러웠는지 모른다.

타자기를 쓰면서도 계속 파지를 냈다. 그렇게 무의미한 파지를 내면서 긴 시간을 허비하다 보면 울분이 쌓여 마침내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쾅쾅 고막에 울렸다. 칠판에 머리를 두두두두 처박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럴 때는 처방이 필요했다. 내가 나에게 준 처방은 치사량에 가까운 술이었다. 거의 죽었다가 살아난 자의 겸허한 마음으로 다시 살금살금 타자를 두드리다보면 일이 이루어지곤 했다. 정신과 의사가 진단하고 처방을 해 줬다고 해도 내 처방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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