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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기억 2-12 / 어린이날 창경궁 미아

김홍성
  • 입력 2021.01.05 07:39
  • 수정 2021.01.05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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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55일이었다. 그 날은 창경궁을 비롯한 서울의 궁이 무료로 개방된 날이었다. 아직 전학 수속이 안 된 나는 계동에 있었고 6촌 형제가 놀러왔기에 그를 따라서 돈화문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의 목적지는 동물원이었다. 호랑이, 사자, 코끼리, 원숭이 같은 신기한 동물들을 구경하고 싶었다.

구경꾼들 속에서 6촌 형제를 놓친 곳은 원숭이 우리 앞이다. 아무리 둘러 봐도 그는 없었다. 거의 모든 인파가 동물원에 몰리고 있었기에 그 속에서 밀려다니면서 그를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는 혼자서 집을 찾기로 하고 돈화문을 찾았으나 내가 나온 문은 종묘의 문이었다. 나도 모르게 인파에 밀려 창경궁과 종묘 사이의 육교를 건넌 것이었다.

동서남북을 분간할 수 없는 종로 한 복판에서 내가 찾아간 곳은 종묘 옆 파출소였다. 순경은 나를 파출소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안에는 길 잃은 미아들이 혹은 앉아서 혹은 서서 울고 있었다.

나는 우는 아이들 속에 있는 게 싫었다. 파출소 밖으로 나가려고 했으나 순경들이 못 나가게 막았다. 순경에게 비원까지만 가면 집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해 보았지만 순경은 잠자코 앉아 있으라고 눈을 부라렸다. 나는 갇혔다는 느낌이 들었다. 견딜 수가 없었다.

슬그머니 탈출하여 무조건 걸었다. 어디를 어떻게 몇 시간이나 걸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멀리 돈화문이 보였다. 거의 다 왔다는 안도감이 들었지만 거기서부터도 한참 헤맨 끝에 원서동 고개를 넘어 계동 할머니 집을 찾았을 때는 울음이 나오려고 목이 메었다.

웬일인지 집안이 조용했다. 아래층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층으로 올라가서 큰방을 드려다 보니 삼촌들이 있었다. 그들을 보자마자 나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지만 삼촌들은 껄껄 웃었다.

어릴 때 사진 중에는 1960년에 창경궁 식물원 앞에서 찍은 사진이 있다. 아버지 어머니 고모 그리고 나와 내 동생이 서 있는 사진이다. 아버지는 넥타이까지 맨 양복 차림에 중절모를 쓰고 있고, 어머니는 양장이지만 고모는 한복을 차려 입었다. 시골에서 자라던 우리 형제가 처음으로 서울 구경을 나온 날의 사진일 것이다. 그러나 그날의 기억은 전혀 없고 196355일에 미아가 되어 헤맨 기억만 남았다.

아홉 살 때 서울에서 미아가 되어 헤맸던 일은 자라면서 끝없이 이어지던 악몽의 밑천이 되더니 환갑이 넘은 후에도 길을 잃고 사람을 놓치고 낯선 세상을 헤매는 꿈을 꾸게 한다. 그런 꿈에서 깨어나면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꿈에 대해서만 따로 모아 기록하게 되겠지만, 어떤 장소를 찾아 가는데 끝내 못 찾고 꿈에서 깨는 똑 같은 꿈을 몇 년에 한 번 씩 여러 차례에 걸쳐서 꾸기도 했다. 어떤 때는 꿈에서 깼다가 다시 잠든 후에 좀 전의 꿈을 처음부터 다시 꾸기도 했다. 이런 현상이 현저해졌던 것은 중학교 이후부터였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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