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오래된 기억 2-11 / 플라타너스 가로수길

김홍성
  • 입력 2021.01.04 07:48
  • 수정 2021.01.04 07:5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을 따라 걷던 생각이 난다. 학교에 오갈 때 버스나 합승을 타기도 했지만 걸어 다닌 날이 더 많았다. 집을 나서서 원서동 고개에 이르면 징 박은 구둣발 소리가 몰려왔다. 왜정 때 순사들처럼 금색 단추가 반짝이는 검정색 교복에 교모를 쓴 고등 학교 학생들이 무섭도록 빠른 걸음으로 고개를 넘어왔다. 잠시 주눅이 들었다. 돈화문 앞마당에 이르러 원남동 넘어가는 길에 서있는 플라타너스 나무를 보면 안심이 되곤 했다.

종묘로 넘어가는 육교 밑을 지나면 내리막길, 내리막길 끝에서 만나는 사거리에서 발길을 창경궁 쪽으로 돌려 홍화문 앞을 지나다가 가끔 길 건너편 서울대 병원 담 밑에 있는 공중변소에 들르기도 했다. 밤새 비가 쏟아지다 그친 가을 날 아침에는 혜화동 로터리에 이를 때까지 플라타너스 젖은 낙엽들이 발길에 채였다.

딱 그런 어느 날, 등교 중에 갑자기 날이 어두워지더니 세찬 소낙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홍화문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느라 지각을 했다. 기왕 늦었으므로 천천히 걸어서 로터리를 돌았는데 뭔지 모를 향수를 자극하는 냄새를 맡았다.

저만치 앞에서 빈 지게를 지고 걸어가는 아저씨가 피우는 담배 냄새였다. 그 구수한 냄새를 놓치지 않으려고 아저씨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교문 앞을 지나고 학교 담벼락 모퉁이를 돌아 골목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 골목 안 조그만 한옥에는 우리 학교로 갓 전학 온 형제가 살고 있었다. 내가 돌쟁이 때부터 2학년까지 8년을 살았던 동네의 이웃인 OO상회 애들이었다. 부모는 시골에서 장사를 하고, 조부모가 손자들을 데리고 서울로 나온 것이었다.

어느날 하교길에 그 형제들이 사는 집에 따라갔다가 밥상이 나오는 바람에 얼결에 밥도 같이 먹게 되었다. 밥을 엄청 빨리 먹는 내가 한 공기 더 달라고 한 게 문제였다. 걔네 할머니가 당황해 하면서 밥이 없다고 했던 것이다. 얼마나 무안했던지 더 이상은 못 찾아간 집이 그 집이었다.

그 집 대문이 저만치 보이는 데서 돌아섰다. 아직도 빗물이 질질 흐르는 길바닥이 왜 그리 슬프던지. 나는 교문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혜화동 로터리로 나와 성균관 대학교 어귀쯤에서 개피 담배 한 개와 성냥을 샀다. 터덜터덜 걸어서 창경궁 홍화문 건너편 공중변소로 갔다.

몇 모금 빨았는데 팽 돌았다. 담배를 똥통 속에 버렸다. 변소 밖에 플라타너스 낙엽들이 죽은 강아지들처럼 널부러져있었다. <계속>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