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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366] Critique: 클라라의 작은 피아노-그녀의 무게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12.30 09:32
  • 수정 2021.01.03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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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9일 화요일 오후 7시, 정동 세실극장

역시 답은 현장에 있었다. 뮤직 떼아뜨레라는 음악을 중심으로 극을 구성하지만 뮤지컬로 칭하기엔 좀 다른 새로운 장르의 예술 형태라고 해서 궁금했는데 일종의 오디오북이라고 하면 적격이다. 물론 배우들의 연기가 무대에서 펼쳐지지만 극보단 내레이터의 해설에 따른 노래 위주의 진행이다. 작곡가 김종균의 연극이 가미된 연가곡집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뮤직 떼아뜨레- 클라라의 작은 피아노 공연을 마치고 커튼콜

로베르트 슈만, 클라라 슈만, 요하네스 브람스 3인의 관계는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다 갖춘 한편의 잘 짜인 소설 같은 이야기다. 어린 나이부터 두각을 나타낸 천재 피아니스트와 무일푼 작곡가의 사랑, 결코 세속적이라고 폄하할 수 있는 이 세상의 평범하고 정상적인 아버지라면 당연히 두 사람의 교제에 쌍심지를 키고 반대를 했을 클라라의 아버지 비크, 송사까지 가는 우여곡절 끝에 맺은 결혼과 슈만의 정신병, 슈만 사후 미망인과 슈만이 자신의 후계자로까지 평가했던 독신자 브람스와의 미묘한 관계, 슈만과 브람스의 영원한 뮤즈이자 그들의 곡을 보급하는데 일조한 클라라의 역할.

좌로부터 내레이션 전지원, 비크 & 엄마 역의 김선용, 클라라 슈만 역의 홍지연, 로베르트 슈만 역의 이상민, 요하네스 브람스 역의 김정민

작곡가 김종균은 장단조 스케일 말고 교회선법을 차용, 반음 이끔음 대신 장2도의 이끔음을 즐겨 사용한다. 플렛 계열의 전조와 변화화음, 장2도 하향의 역시나 플랫 계통의 조로의 시퀀스도 자주 이용한다. 군데군데 찬트(Chant) 같고 오늘날의 CCM 같은 성부진행도 보인다. 다만 그런 플랫 계열로의 변화는 음정에서의 어려움을 성악가에게 배가시킨다. 이야기가 과거 작곡가들, 음악가들을 다룬다고 음악도 꼭 슈만과 브람스의 곡이 나오거나 그들 같을 필요는 없다. 음악가들의 이야기라고 그들에게 얽매일 필요는 없고 그들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하거나 그들의 악풍을 그대로 계승해서 유사 형태를 보일 필요도 없다. 김종균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음악을 직조한다. 초반 극의 진행을 위해 <시인의 사랑>에서 두 개의 노래를 그리고 브람스의 피아노 소나타 1번 앞부분을 삽입한 게 전부이다. 브람스가 슈만을 찾아오고 시연 후 브람스의 재능에 놀라 클라라를 불러 같이 브람스의 피아노 소나타를 다시 한번 연주하라는 대목과 나중에 백발이 된 클라라가 브람스를 위해 브람스의 op. 118 <피아노 조곡> 중 6번 eb-minor 인터르메쪼를 치는 대목에서 브람스가 들릴 줄 알았는데 김종균이 나와서 미소를 띠었다. 공교롭게도 역시나 플랫 계열인 Bb-Major의 노래였다.

클라라 역의 홍지연과 슈만 역의 바리톤 이상민, 브람스 역의 테너 김정민은 성악을 정통으로 배운 성악가다.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닌 뮤지컬/연기를 학습해 공연예술에 특화화된 가수들이다. 즉 노래와 연기가 둘 다 되는 멀티플레이어이자 기초와 기본이 튼튼한 가수란 뜻이다. 거기에 진짜 멀티 역으로 약방의 감초 같았던 배우 김선용과 나중에 프로필을 보고 역시라고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 성우인 내레이션의 전지원까지 5명의 무대 위의 출연자들은 상술한 오디오북으로서 최고의 기능이다. 무엇보다 피아노의 김성결이 처음부터 끝까지 극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우들의 음향과 사운드까지 맞춰주고 졸지에 어려운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 1번까지 실연해야 했다.

세실극장이 전문 클래식 홀이 아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굳이 그런 소극장에서 마이크를 사용해야 될 필요가 있었을까? 지난 주의 부평아트센터의 5명의 남성 보컬 앙상블의 공연에서도 푸치니의 <네쑨 도르마>를 부르는데 마이크를 써서 의아했었는데.... 성악뿐만 아니라 피아노, 무대 위의 첼로와 클라리넷도 음량을 증폭하려고 부착했을 거라 사료된다. 그러다 보니 어쿠스틱 악기들의 소리의 질이 깨지고 특히나 오늘 가장 큰 역할을 한 피아니스트가 마치 깨진 유리 위를 걷는 듯이 너무나 조마조마할 수밖에 없다. 상업극이나 소극장 뮤지컬, 연극 등에서 가장 큰 지분을 가지고 있는 기악팀, 연출가, 제작자, 작곡가의 커튼콜, 무대인사가 없는 게 고착된 관례 아닌 관례인데 왜 그래야 될까? 결국 작곡가, 연출가, 피아니스트, 첼리스트, 클라리넷 연주자의 얼굴도 못 보고 누군지도 모르지 않는가!

로베르트 슈만 역의 바리톤 이상민

개막전에 사회적 거리두기 관계로 공연 성사 여부가 불투명해 무관중 녹화공연을 염두에 두고 동선과 무대, 연출 등을 구성했는데 추운 날씨와 코로나 와중에도 귀한 발걸음을 해준 많은 관객들께 감사 인사를 올린 연출가 홍정민의 얼굴을 볼 수 있었던 게 그나마 다행이긴 했지만..... 공연 시작 10분 후쯤 극장 안 어디선가 통화 소리가 나서 깜짝 놀랐다. 공연이 개시되고 1시간이 지나서 어떤 분이 입장했다. 끝나고 나오니 그 두 분이 서로 지인인지 로비에 나란히 같이 계신 걸 보고 쓴웃음이 나왔다. 공연 내내 핸드폰은 묵음 또는 꺼주라는 간곡한 당부가 무색했다. 내가 도리어 대신 연출가에게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게 바로 예술가의 의무인데.... 코로나의 가운데서도 힘든 여건에서도 그리고 성숙되지 못한 관람 문화와 대중들의 외면과 냉대에도 예술가들은 무대에 살고 노래에 살고 예술에 살아야 하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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