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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기억 2-9 / 어린 놈이 술 취해서

김홍성
  • 입력 2021.01.01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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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동 할머니는 평생 쪽진 머리에 비녀를 꽂고 살았다. 아침 일찍 안방에 내려가 보면 할머니는 어느새 머리단장을 마치고 햇살이 들어와 환해진 경대 밑에서 머리칼 몇 올을 손바닥으로 쓸어 모으곤 했다.

 

할머니의 친정 올케이며 친구이기도 한 미아리 할머니가 다니러 와서 며칠 함께 기거하는 동안에는 다른 친구들도 불러서 저녁을 함께 하기도 했는데 함경도 할머니들이 열 명 가까이 모일 때도 있었다.

 

그 중에는 혼자가 된 할머니들도 더러 있었다. 오늘 어머니에게 물으니 할머니는 85세에 세상을 떠나셨으며(내가 네팔에 간 지 몇 년 지난 후였다) 어머니보다 14살 많은 1914년 생 범띠라고 했다. 할아버지가 납북된 1950년에 할머니는 36, 그리고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던 1965년 그 해에는 51세였다.

 

함경도 할머니들은 계동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살았던 서 선생을 초대하기도 했다. 그런 날은 저녁 자리가 길었다. 밥상에서 반주로 시작된 술이 모자라기 일쑤였다. 계동 골목 끝에 있는 언덕을 오르면 중앙고등학교가 나오는데, 그 학교 정문 근처의 왼쪽 골목 안에 소주를 내려서 파는 밀주집이 있었다. 나는 한 되 들이 주전자를 들고 그 집에 가서 고리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소주를 받아 오는 심부름을 하곤 했다. 예전에는 삼촌들이 했겠지만 내가 온 이후 그 심부름은 주로 내 담당이었다.

 

할머니들 사이에 청일점으로 앉아서 이런 저런 농담을 받아 주며 허허허 웃고 앉았던 서 선생은 할아버지의 친구였다. 서 선생에 대해서 내가 기억하는 것은 일제 때 경기상고를 나왔으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산다는 정도였다.

 

내가 받아온 주전자의 술은 일단 부엌으로 갔고 부엌에서 은주전자에 옮겨진 후 숙모에 의해 안방으로 들어갔으므로 문이 잠깐 열릴 때 말고는 안방 풍경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서 선생이 허허허 웃고 앉아있던 모습은 어렴풋이 기억난다.

 

나는 술 받아 오는 주전자 꼭지에 입을 대고 한 모금 씩 마셔 보기도 했다. 어느 날은 너무 많이 마셨다. 한 번, 두 번, 세 번 째 심부름을 다녀올 때의 주전자는 부엌의 수돗물로 양을 채워야 했다. 그러나 어른들은 수돗물 탄 사실을 몰랐다. 안 마시는 분들은 안 마셔서 몰랐고, 마신 분들은 취해서 모르지 않았나 싶다.

 

그 날이었을까? 어린 놈이 술에 취해서 이층의 베란다 난간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골목이 환했다. 가로등 불빛 때문에 환했는지, 달빛 때문에 환했는지는 확실치 않다하지만 한복 차림의 한 부인이 지나가다가 골목 저 끝에 이르러 잠시 걸음을 멈추고 보름달을 향해 합장하던 모습은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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