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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364] 2020년 클래식 음악계 동향 ② 좋았던 공연, 나빴던 공연, 이상했던 공연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12.28 10:07
  • 수정 2020.12.28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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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연주회는 주최자의 갑작스러운 지병, 불의의 사고, 컨디션 난조 등의 개인사가 아니면 정해진 날짜에 무조건 하는 게 원칙이었다. 그게 바로 연주자 스스로의 각오와 마음가짐이요 자신의 음악회에 귀한 발걸음을 해준 청중에 대한 예의였다. 코로나는 그런 거 다 무시하고 번져나갔다. 정부에서의 내리는 국민행동지침과 공연장 폐쇄, 집합 금지 등의 조처로 자의가 아닌 타의로 음악회가 순연되고 취소되었다. 상반기에는 음악회 자체만 가도 감염이 되는지 알고 모두들 전전긍긍했고 자발적으로 두문불출했다. 오랜 세월 동안 전념해서 준비해온 오페라와 콘서트가 불과 하루 앞두고 갑작스런 홀 휴관 조치와 휴점으로 절망과 허무에 눈물을 흘려야 했다. 언제 또 어떤 조치가 떨어질지 몰라 눈뜨면 확진자 숫자부터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고 잦은 연기와 취소, 환불, 전화상담과 예약 등으로 기획사와 관객들은 피로감만 쌓여갔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건 생계가 막막해진 음악인들인데 이런 와중에 성사된 음악회들 중에서 필자가 다녀온 것을 종류별로 골라 소개해본다.

코로나 와중에도 음악회는 계속 되었다. 어떤 단 하나의 음악회도 우여곡절이 없었던 게 없을 정도이긴 했지만....

① 이상했던 공연: 서울시립교향악단 티에리 피셔의 하이든 교향곡 8번과 드보르작 슬라브무곡의 섞어찌게

하이든의 교향곡 8번과 16개의 드보르작 슬라부무곡 중 지휘자 티에리 피셔가 고른 몇 개를 교차해서 퐁당퐁당 연주했다. 즉 초기 하이든 교향곡 1악장 했다가 드보르작 슬라브무곡 중 하나 했다가 이런 방식을 취한 것이다. 선곡의 타당성과 시대적 배경, 악풍의 유사성 또는 대조, 편성의 차이 등 모든 거 하나 설득되지 않은 하이든도 드보르작도 제대로 접할 수 없었던 요상한 나열이었다.

② 불쾌했던 공연: 카네기 LEE 재단 창립기념 소프라노 신영옥 데뷔 30주년 기념 음악회

왜 일반인들이 클래식 음악회라고 하면 부자들의 돈잔치이자 허영과시라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지 알 수 있었던 스노비즘의 극치이자 속물들이 다수 모였던 자리였다. 그저 유명한 음악인을 앞세운 네이밍 콘서트, 자선음악회, 후원의 밤이었다. 음악 자체보단 음악회를 이용한 사교의 장으로 음악이 정치, 자본권력의 하위 수단으로 이용되는 전형적인 작태였다.

소프라노 신영옥 독창회의 모습

③ 가장 큰 이슈를 불러왔던 음악회: 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 독주회 <격정과 환희>

발렌티나 리시차와 기획사 OPUS는 이슈 파이팅에 최고의 감각을 가졌다. 어떻게 하면 이목이 집중되고 화제가 되어 인구에 회자되는지 노이증 마케팅의 효과도 아는 스타플레이어이자 엔터테인먼트다. 코로나 1차 유행시기였던 3월은 전염병에 대해 정확한 정보도 없어 더욱더 불안하고 공포가 팽배했다. 제정신이냐는 소리를 들으면서 강행한 발렌티나 리시차의 연주회는 갖은 비난을 받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강제적인 폐쇄 조치는 없었기 때문에 음악회 개최 유무와 입국에 대한 결정은 전적으로 개인의 몫이었다. 그럼에도 3-4월의 모든 음악회는 앞다투어 취소되고 계획된 공연까지 줄초상이었다. 기삿거리에 굶주렸던 언론과 공포에 직눌려 뭔가 해방구를 찾고 싶었던 음악팬들의 틈새를 공략, 2주간 자가격리도 불사하고 다른 콘서트를 취소하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한국행은 꼭 강행해 팬들을 만나겠다는 소위 '국뽕'을 자극하는 언론 플레이로 귀국 전부터 한국 팬들에게 환호를 받은 발렌티나 리시차. 치기 어려운 <함머클라비어> 소나타를 들으러 갔더니 2악장만 마치고 울면서 들어가 버린 리시차. 다시 추스르고 나와 3,4악장 대신 자신의 단골만 풀고 들어가 버려 "뭐지????"라고 벙뜨게 했던 무대, 나중에 키예프에 있는 어머니가 생각나서 도저히 더 연주할 수 없어 울고 들어갔다는 해명과 함께 모 유튜버의 도촬로 인한 SNS에서의 키배까지 3월 한 달은 발렌티나 리시차 덕에 먹고 살 수 있었다고 할 만큼 한 개인이 일으킨 최고의 관심몰이였다. 마스크 쓰고 등장한 음악가를 처음 본 게 리시차였다. 사람들은 환호와 함께 경의의 박수를 보냈다.

④ 찜찜했던 연주회: 12월 14일 박정은 작곡발표회

작곡가라기보단 행위예술가, 영상, 사운드, 설치, 퍼포먼스 등 매체예술가라고 하는 게 적절하겠다. 음악과 발표회, 전시에 대한 전통적 개념에서 벗어나는 작업을 하는 일련의 퍼포머티브한 작업군에 속한다 하겠다. 이런 유의 발표회에 가면 시종일관 편안하지 못하고 불편하다. 입장 전의 로비부터 보고 듣는 홀 안에서의 시간 내내 숨이 막히고 답답하다. 끝나고 나오면 찜찜하다. 이런 걸 의도한 지극히 현대적인 예술을 추구한다고 하면 할 말이 없다. 안 가면 되는 걸 굳이 추운 날씨에 방문하고 기분 나쁘다고 툴툴대면 자업자득이요 누워서 침 뱉기 밖에 안된다.

⑤ 나빴던 연주회

어느 하나를 지칭하면 당장 항의가 들어올 테니 직접적인 언급은 삼가겠다. 8월의 모 실내악 콘서트는 올해 필자가 방문한 콘서트 중 가장 객석 점유율이 높았던 연주회였다. 다만 손님수와 연주력과는 하등 연관이 없다는 걸 증명한 시간이기도 했다. 올 초 어느 독창회는 전형적인 성악 연주회의 백화점식 프로그램 나열과 불친절하고 지극히 관객 친화적이지 않은 프로그램 북의 편집, 읽을 수도 없는 러시아 키릴문자의 남용에 음정도 제대로 맞지 않는 앙상블 편성까지 독창회에서 지양해야 될 걸 종합적으로 보여준 가이드북이었다. 그러면서도 그 독창회 개최자는 '대중과의 소통'을 꿈꾼다고 하니 앞뒤가 안 맞아도 이렇게 안 맞을 수가 없다.

9월 초, 2차 펜데믹의 여파에도 성사되어 진한 감동을 안겨줬던 바리톤 김대수 독창회 

⑥ 좋았던 연주회

코로나 와중에도 성심성의를 다해 큰 감동을 안겨준 연주회들을 일일이 거론하진 않겠다. 그건 당연한 거다. 그러지 않은 연주회가 문제가 있는 거니. 음악 본연에 집중한, 음악 외적인 스캔들이나 이슈를 거부하며 진지하게 자신만의 길을 걷는 음악인들을 존경하고 부도옹 같은 음악인들의 자세가 감명 깊다. 2021년은 과연 어떤 음악회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확실한 건 어서 빨리 코로나가 종식되어 혼란과 어려움이 없어야 한다는 열망이다. 콘서트홀에서 들었던 연주가 이렇게 소중했을 줄이야. 가고 싶으면 가고 듣고 싶으면 언제나 들을 수 있었던 매일 같이 열리는 음악회의 소중함과 귀중함을 다시 뼈저리게 느끼는 계기요 새삼 누렸던 게 당연하지 않은 거였다는 걸 깨닫게 된다. 어서 빨리 이 모든 사태가 종식되어서 현장에서 뜨거운 울림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싶다. 연주의 현장성을 강조하며 실연이야말로 음악의 '실존'이자 연주자는 연주 행위를 통해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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