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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355] Critique: 박정은 작곡발표회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12.15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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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풍이 몰아치는 12월 14일 월요일 저녁, 일신홀에서 열린 박정은 작곡발표회의 첫 곡은 피아니스트 Jared Redmond의 위촉으로 작곡되어 올해 2월 미국에서 초연된 <Moto perpetumm – 태평무의 재해석 for Piano solo> (2020, 국내 초연)였다. 복잡한 장단을 가로지르는 기교적인 발짓에서 영감을 얻은 이 곡은 서양의 탭댄스와 같이 현란한다. 발걸음의 음형들은 빠르고 날카롭다. 그 파편들은 온 사방으로 흩뿌려지며 한 번만 찌르지 않고 페달을 통한 잔향과 울림으로 연속적으로 쑤셔진다. 

마지막 곡을 마치고 무대 위에서 인사하는 작곡가 박정은
마지막 곡을 마치고 무대 위에서 인사하는 작곡가 박정은

발표회의 유일한 초연곡이자 일상의 권태로운 관계성을 다룬 작품이라는 <there was(있었음) for flute, violin, cello and piano>은 지극히 비(非)인과적이자 개인적인 소리의 공간이다. 플루트에 전통적인 피아노3중주 편성의 어쩌면 오늘 발표된 작품들 중 가장 보편적이라 할 수 있는 악기 편성이지만 과거의 양식은 이미 소멸되고 필요 없다는 듯이 피아노의 내부는 두드려지고 현은 흩고 튕겨진다. 현악기들은 때리고 긋고 이고 비비고 썬다. 타자와의 관계성 회복이 아닌 고립을 가속화하며 그것들은 그저 있었다 사라진다. 공교롭게도 그다음 곡은 본질적인 고통을 만들어내는 타자의 부정이다. 개시와 함께 조율된 피아노의 저음이 나와 반가웠다. 앞의 <there was>에서는 음조를 인지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 반색하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피아노 연주자는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아코디어니스트였다. 피아노에서 아코디언으로 (뭐가 주고 부인지 구분이 안 가고 별로 중요치 않지만) 옮겨 글리산도를 방불케하는 스케일이 나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다들 입으로 '쓰'하는 소리를 내니 듣는 필자 역시 안 그래도 춥고 에너지가 많이 소비되는 마당에 으쓰스한 한기가 들 정도였다. 대금, 거문고와 피아노를 위한 <Liebe>(사랑)에서는 침 냄새가 진동했다. 환경보호와 일회용 줄이기로 인해 예전과 달리 부쩍 보기 힘들어진 검은색 비닐봉지로 거문고의 현들을 쓰다듬기까지 했다. 검은 봉지는 은닉의 도구다.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감출 수 있다.

박정은의 여섯 작품은 일종의 설치, 행위예술에 가까웠다. 작곡가의 의도를 알기 위한 그리고 청자만의 소화가 필요한 해석과 탐구가 요구된다. 예를 들어 항마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Liebe>의 영상이 끝나자 세 명의 연주자가 무대 앞으로 양동이를 들고 나와 소리를 내었다. 그들을 보며 청자 또는 시청자는 도대체 어떤 의도인지 자문하고 끊임없이 답을 찾는다. 양동이 뒤에는 끄지 않고 계속 미비하게 떨리는 마치 내 방의 전기면도기의 소리와 같은 거슬림이 이어진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는 소리의 집합체이다. 소리의 해방이니 소음이란 단어를 사용하면 틀리게 된다. 좋은 소리와 나쁜 소리라는 이분법적 구분이 허용되지 않으며 일상의 모든 소음을 포용하니 안 그래도 세상의 모든 타자가 만들어내는 소리를 질색해서 도망 다니는 필자는 이번 발표회에 와서도 막다른 길에 놓여버린다. <Liebe>가 끝나고 다음 곡을 세팅하기 위해 대기실 문을 열어논 상태에서 입술을 풀기 위해 클라리넷 주자가 우연치 않게 분 g-minor 스케일이 유일한 선율적 인지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차라리 그것마저 발표회의 일부로 포함하면 더 재미있을뻔했다.)

소란 for ensemble의 연주자들
소란 for ensemble의 연주자들

불과 하루 전날 밤, 아니 발표회 전의 점심때 유학까지 다녀온 많은 클래식 전공 음악인들과 코로나 여파, 타 매체와 장르의 홍수와 범람으로 인한 고립과 단절에 대해, 예술과 대중성의 조화에 관해 같이 고민하고 왔는데 같은 날에 너무나 극과 극의 체험을 하게 되었다. 점심때 만난 음악인이나 저녁때 일신홀의 연주자나 비슷한 루트의 연주자들이요 학교와 아카데미 말고는 갈 데가 없는 사람들이다. 박정은은 현대음악작곡가이자 설치악기 예술가요 행위자이고 물리학자이다. 아방가르드다. 경계 없는 실험적 태도와 탐구는 사회통념상의 성공보다는 현대음악 본연의 가치를 추구하는 연구로 이어질 테다. 급속도로 바뀌는 환경의 변화에도 끊임없는 실험과 낯선 소재의 연구로 상업적 논리와 세속적인 입신에서 벗어나 자생하는 작곡가로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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