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코로나 이겨내기] 코로나 19 사태, 그리고 후브리스에 대하여

mediapiawrite
  • 입력 2020.12.11 11:08
  • 수정 2021.06.27 10:0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방현지 작가님의 작품, '코로나 19 사태, 그리고 후브리스에 대하여' 입니다.

2020 미디어피아 '코로나 이겨내기 에세이 공모전', 방현지 작가님의 작품 '코로나 19 사태, 그리고 후브리스에 대하여' 입니다.

 

새해 소망과 2020년

 2019년의 해가 저물고, 2020년의 해가 떠올랐다. 새해의 마지막과 시작은 늘 가족과 함께해야 한다는 엄마의 성화에 이기지 못하고 강릉에 갔다. 차를 타고 3시간을 내리 달려 도착한 강릉은 아름다운 바다가 있는 곳이었다. 방한용 귀마개를 두고 온 것이 후회될 정도로 매서운 바람이 부는 안목항을 거닐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2019년의 나는 참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20대가 되었고, 예술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에 들어가 나와 비슷한 전국의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으며, 대학과 가까운 곳에 거처를 얻게 되었다. 점점 변화하는 상황에서 내년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과연 내가 살아남기 어렵다는 그 예술계에서 일을 할 수 있을지, 내가 추구하는 예술의 방향은 무엇인지 고민을 이어나갔다. 2020년에는 더욱더 역동적이고 다양한 활동을 접해봐야겠다는 성대한 꿈을 꾸기도 했다. 하지만 그 꿈은 2주도 가지 못해 접어야만 했다. 우한에서 전염성 높은 폐렴이 유행하기 시작했다는 뉴스와 함께 내 삶은 폐쇄적으로 변해갔다.

 

코로나 블루

 처음에는 불안했다. 내 옆을 지나가는 누군가가 이미 걸렸다면 어떻게 하느냐는 마음에 집 안에서 가족과 함께 식사할 때를 제외하고는 방에서 나가지 않았다. 친구들과의 약속을 모두 취소했다. 하루에 다섯 번씩 울리는 재난 문자 소리에 익숙해졌고 날이 갈수록 모두가 원망스러웠다. 그 당시에는 너무 피폐해져서 사소한 것에 잘 울고 잘 싸웠다. 당시 만난 지 한 달도 안 된 남자친구와 랜선 연애를 하는 것도, 친구들의 불평을 들으며 약속을 깨는 것도, 출근한 가족들 사이에서 혼자 집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것도 싫었다. 그렇게 원망스러운 나날이 이어가면서 터진 것이 이태원 집단감염이었다. 클럽에 간 이들 사이에서 코로나가 다시 유행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면서 나는 격분했다. 조금만 더 기다리고 더 참았더라면 모두가 여유롭고 평화로운 일상을 다시 영위할 수 있었을 거라고. 경솔한 이들의 행동에 너무나도 화가 났다. 그렇게 분노를 참아내며 삭혀내고 나니 찾아온 것은 우울이었다. 부정적인 감정이 사회로 나가기 전 가장 중요한 시기에 놓쳐버린 기회들과 함께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대외활동도, 실습도, 해외연수의 기회도 코로나에게 모조리 빼앗겨버린 나에게 더 남은 사회적 가치는 없다고 생각했다. 4학년이 되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할 수는 있을지 우울한 고민이 이어졌다. 이런 내 생각이 이기적이고 어리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나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일들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점점 멀어져만 갔고 그와 동시에 내가 꿈꾸던 미래들도 멀어져갔다. 나 때문이 아니라 코로나라는 상황 때문에 빼앗긴 것임을 생각하면 억울하면서도 슬펐다. 사회에 나가면 나의 경험 부족을 코로나 때문이라 이해하고 공감해줄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면 더욱이 그랬다. 시간이 지나 이러한 감정에 대해서 ‘코로나 블루’라는 명칭이 붙으면서 나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음 정리

나는 내 코로나 블루 증상을 해결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잠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 노력했다. 코로나 유행 전까지 모았던 아르바이트 비용을 모아 아이패드와 애플펜슬을 샀다. 그림도 그리고 영상도 편하게 보고, 내 생각을 타자가 아닌 손글씨로 디지털화해서 정리하고 싶었다. 나에겐 너무 큰 지출을 하고 난 뒤, 예정되었던 이사를 하게 되고 쌓인 짐들을 버리고, 새로운 자리로 정리했다. 6월이 지나있었다. 마음을 정리하는 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 시간만큼 나는 성장했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나의 감정을 배제하고 타인을 바라보며 공감할 수 있는 시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후브리스, 저는 헤쳐나가고 싶습니다.

1학기 교양 수업에서 호모 엠파티쿠스, 즉 고통으로부터 삶의 자세를 깨우쳐가는 철학자들의 삶을 들을 수 있다. 시기가 잘 맞아 코로나와 함께 대입하면서 들을 수 있었는데, 나는 그 수십 시간의 수업들에서 ‘후브리스’를 기억에 새겨넣었다. 이길 수 없는 절대적 존재가 정해놓은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이겨내고자 하는 인간만의 자세, 본인의 삶을 직접 개척하겠다는 의지를 후브리스라고 한다. 나는 만약 이러한 전 세계의 공항이 신이 정해놓은 시나리오라고 한다고 하면, 결국 인간은 이에 순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코로나 19’라는 국제적 대공황은 온 세계가 겪는 문제가 되었다. 모두가 다른 견해를 밝히고 있으며 서로가 서로를 적대시하고 거리 두는 서운한 나날들이 지나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삶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코로나 최전방에서 싸우고 있는 의료진들, 마스크 착용, 손 소독, 집단생활 피하기 등의 노력을 하는 국민. 이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주체적으로 대재앙을 피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후브리스가 아니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이겨낼 것입니다.

우리는 결국, 이 재난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선포할 것이다. 이전에 공포에 휩싸이던 나날은 어디 가고 마스크 착용하고 가벼운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언제까지 전쟁이 지속될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는 계속 고민하고, 실천하고, 모두와 함께 손잡을 수 있는 날을 기다릴 것임이 분명하다. 우리는 이겨낼 것이다. 적어도 코로나에만큼은 말이다. 

 마스크를 벗고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 날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우리는 이겨낼 것이기에.

저작권자 © 미디어피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