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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뎐, 윤석열뎐

천원석 칼럼니스트
  • 입력 2020.12.07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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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관공서나 은행은 서류 작성자들을 위해 서류 견본을 제시해 놓는다. 그런데 그 견본에서 사용되는 이름의 대개가 홍길동이다. 또한 일상에서도 우리는 어떤 이름을 예를 들어 설명하고자 할 때 역시 주로 홍길동의 이름을 들어 설명하곤 한다. 이처럼 홍길동이 만인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언급되는 이유는 무엇보다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알면서도 후손 등이 항의할 가능성이 없는 고전소설 속 긍정적 이미지를 지닌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홍길동에 대해 이처럼 긍정적 인식을 가지게 된 데에는 대개 어려서 접한 만화나 동화책과 함께 다양하게 변주되어 상영된 영화와 드라마의 영향일 것이다. 이들 텍스트에서 그리고 있는 홍길동의 모습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전기적(傳奇的)인 요소에 약자에 대한 의협심 및 출신 성분으로 인한 역경 극복의 교훈까지 탑재했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우리나라 부모들의 아이들 교육용으로 입맛에 꼭 맞는 이야기거리인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홍길동의 이미지가 실상 교묘한 서사적 기만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출처 : 구글
출처 : 구글

완판본 등의 <홍길동전>에서 보여주는 길동의 모습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런 모습이 아니다. 길동은 우선 그의 아버지에 의해 호부호형을 허락받음으로 천한 신분으로 인한 설움을 풀게 된다. 하지만 이는 오직 집안에서만 인정될 뿐 담장 바깥 너머에서는 그대로 유지된다. 이에 집을 나온 길동은 도둑들을 수하로 삼아 활빈당을 조직한 후 합천 해인사를 시작으로 관청의 곳간을 터는 등의 국가를 들썩이는 소동을 일으켜 온 나라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리고는 자신을 병조판서로 제수할 것을 요구한다. 결국 나라에서는 어쩔 수 없이 길동의 요구를 받아들여 병조판서에 제수하게 되자, 길동은 임금께 감읍하며 바로 그 활동을 중단해 버리고 만다. 이는 길동이 일으킨 소동이 비록 외양은 ‘의적’의 모습을 띠고 있을지라도 실은 길동 자신의 인정욕구를 채우기 위한 사사로운 한풀이였다고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홍길동전>은 이야기 내내 공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야기되는 끊임없는 소동들을 서술하고 있는데, 독자는 이런 소란이 길동의 활동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결과였는지, 아니면 소란을 목적으로한 자의적 행동이었는지 헷갈리고 만다.

더욱이 길동이 조선을 떠난 이후의 모습은 더욱 수상하기 그지없다. 길동은 자신의 수하들을 이끌고 텍스트에서조차 오랜 세월 동안 별 탈 없이 평화를 구가하던 나라라고 소개하는 율도국을 어떠한 대의명분도 밝히지 않고 침략한다. 그리고는 그 나라의 왕과 왕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후 왕위에 오른다. 이후 길동은 자신의 맏형을 속여 아버지의 시신을 섬으로 모시고 와 장사지낸다. 아버지의 제사를 모시는 것은 장남에게 우선적으로 부여된 권리이자 의무이다. 따라서 길동의 행위는 자신이 장남의 의무를 수행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이는 홍길동이 아직도 서자로서의 자신의 출신에 대한 한에서 풀려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는 율도국을 침략하기 전 괴물에 사로잡힌 여인 셋을 구출하고 나서 이들을 나란히 부인으로 삼고 자식을 두게 된다. 그런데 이는 자연스레 본처와 소실의 관계를 생성하게 되며, 길동 자신의 평생 굴레였던 구조적 악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길동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는 셈이다. 따라서 <홍길동전>은 표면적으로는 당시 신분제에 대한 비판과 탐관오리의 학정에 대한 응징, 그리고 약자에 대한 의협심과 역경 극복이라는 환타지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반면에 길동의 모든 행위는 일관되게 오직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은 극도의 이기적 모습의 서사적 기만을 내포하는 텍스트라는 해석도 가능한 것이다.

온 나라가 윤석열 총장이 일으킨 (혹은 추미애 장관이) 소란으로 혼란스럽다. 이제 이러한 추장관과 윤총장의 충돌은 말 그대로 ‘데스매치’가 되어버렸고 어느 한쪽이 죽어야만 끝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후세는 작금의 이 소란의 중심에 서있는 윤총장을 어떤 서사를 지닌 인물로 기억하게 될까? 검찰에 길들여진 일부 검찰 출입 기자들이 자행하는 기만의 서사, 즉 불의한 권력에 의해 핍박받지만 마지막 순간 역경을 극복하고 최종 승리를 움켜지는 영웅의 모습으로 기억될 것인가? 아니면 의적으로 각색된 홍길동처럼, 피해자 코스프레 속에 법과 원칙에 의해 검찰직을 수행한다고 하면서 정작 선택적 수사와 기소를 통해 대통령의 인사권에 개입하고, 반면 자신의 처와 장모 및 수하 직원들 관련 수사는 방해하였던 허위적 인물로 기억될 것인가? 그리고 지금, 당신은 두 개의 서사 중 어떤 것에 마음이 끌리고 있으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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