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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347] Critique: 아힘 프라이어 연출의 바그너 라인의 황금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12.02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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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아힘 프라이어의 연출로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된 바그너 <니벨룽엔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중 첫 번째인 <라인의 황금>(Das Rheingold) 공연비평은 시기적으로는 늦은 감이 있지만 공연비평의 활성화와 공론화란 의미에서 몇 자 적는다.

2018년11월에 열린 바그너 오페라 '니벨룽엔의 반지'중 1부 라인의 황금 공식 포스터
2018년11월에 열린 바그너 오페라 '니벨룽엔의 반지'중 1부 라인의 황금 공식 포스터

바그너의 음악극 니벨룽엔의 반지는 게르만의 기사도 문학인 니벨룽엔의 노래를 토대로 하여 바그너 자신이 직접 모든 각본을 쓰고 작곡한 작품이다. 바그너 필생의 역작으로 무려 28년에 걸쳐 작곡되었으며, "라인의 황금", "발퀴레", "지그프리드", "신들의 황혼"의 모두 총 4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야제 성격인 라인의 황금(2시간30분)을 제외하면 각 부마다 상연 시간이 무려 4시간 걸리는 탓에, 전편을 다 관람하거나 전곡을 다 들으려면 무려 16시간이나 걸리며 오늘날에도 4일간에 걸쳐서 매일 밤마다 한 부씩 공연하는 대서사시이다. 그 중 라인의 황금은 니벨룽엔의 반지 전 편의 서두에 해당되는 부분이며 전 편의 흐름과 배경을 제시하고 있는 프리퀄(Prequel)에 해당한다.

종래의 오페라가 극적표현이 주를 이룬 성악중심이었다면 바그너는 “오페라 장르에서 나타나는 오류는 표현의 도구를 목적으로 만들고 표현의 목적을 도구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극과 음악의 일치를 꾀하는 새로운 형태를 시도하게 된다. 노래가 지배적이고 대본은 음악을 위해 존재하는 이전의 오페라와는 다른 ​“시, 무대장치, 연출, 연기, 음악”은 총체적인 것이라 여기고 통합하여 <악극>(Musikdrama)이라는 새로운 형태를 창출하였다. 바그너의 작품은 바그너가 직접 대본을 쓰고 곡을 붙였기 때문에 제대로 공연하자면 독일어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번역하는 순간 음악과 언어의 절대적인 조화가 깨지기 때문에 이태리 오페라에 비해 접근하기가 쉽지 않으며 작품의 소재도 게르만 신화와 중세 문학 작품이기 때문에 그것들에 대한 이해가 바그너 감상의 전제조건이 된다. 즉 비 독일어권에서의 바그너 감상은 방언과 언어유희, 해학과 풍자가 유교, 도교 등의 사상과 혼합된 우리의 춘향가, 심청전 같은 판소리를 외국 사람이 8시간(춘향가 완창 기준)에 걸쳐 감상하고 있는 처지와 같다.

한국에서의 바그너 라인의 황금 공연 사진, 위에 있는 인문들이 신들이고 밑에 3명의 여자들의 라인강에 있는 라인의 처녀들이다.
한국에서의 바그너 라인의 황금 공연 사진, 위에 있는 인문들이 신들이고 밑에 3명의 여자들의 라인강에 있는 라인의 처녀들이다.

바그너는 예술이 종교와 같은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기를 원했다. 오직 예술을 경험할 때만이 고통으로 가득 찬 의지의 세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쇼펜하우어의 예술관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예술은 의지의 세계, 즉 속세로부터 우리를 구원시켜 준다. 바그너는 예술이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관객을 내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종교적 힘을 획득해야 한다고 여겼다. 예술이 그런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화려한 무대와 의상이 필요했다. 바그너는 극적 장치들은 도입했고 거기서 나타난 효과는 관객에게 신비롭고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함으로써 관객을 현혹했다. 민족주의적 감흥에 도취된 바그너 당시의 젊은이들은 바그너의 작품에서 보았던 그 고귀한 게르만 전통의 몸짓을 흉내 내고 모방하였다. 제의적인 몸짓은 우리 몸속 깊숙이 숨겨진 원시의 피를 끓어오르게 하여 집단적으로 도취시키며 이성이나 말로는 억제할 수 없는 열망을 피어오르게 한다. 제의를 통해 부추겨져서 감정이 격앙된 사람들에게 일정한 방향성이나 행동 지침이 주어진다면 그게 바로 종교이며 맹목적인 추종이나 집합된 힘의 전체주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폐해를 몸서리 칠만큼 경험한 독일/유럽에서는 바그너 연출에서 의도적으로 제의적인 것을 빼고 기존의 관습과 형태를 비틀려고 한다. 다시 우리의 오페라 판소리로 비교하자면 너무나 흔하고 흔한 갓 쓰고 전포 입고 노래 부르는 적벽가, 흥보가가 한국 사람들에겐 참신하지 못한 것처럼 전통적인 방식의 연출을 선호하지 않는다.

라인의 황금 한국 공연 커튼콜, 사진만 봐서는 괴악한 의상과 분장으로 인해 신과 요정, 거인으로 분장한 모습이라고 상상하기 힘들고  무슨 학예회 같다.
라인의 황금 한국 공연 커튼콜, 사진만 봐서는 괴악한 의상과 분장으로 인해 신과 요정, 거인으로 분장한 모습이라고 상상하기 힘들고 무슨 학예회 같다.

우리 음악에 대해 적극적으로 학습하여 1막에 수제천과 2막에 전폐희문이라는 우리의 대표적 궁중음악을 채택한 판소리 오페라 <수궁가>를 2011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 개막작으로 무대에 올렸던 아힘 프라이어의 이번 한국에서의 라인의황금은 도대체 누굴 위한 어떤 목적의 공연이었는지 묻고 싶다. ​바그너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도, 할 줄 아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극소수인 불모지에서 바그너 악극을 소개하는 차원도 아닌 유럽 현지에서처럼의 연출은 전혀 한국 사정과 맞지도 않은 난해함, 괴리와 이질감의 극치였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 언론에서는 음악과 연주에 대한 분석은 찾기 힘들고 오직 연출과 공연성사 자체에 집중해서 호평 일색이다. 그런 평과 기사를 읽을 때마다 도대체 저 사람들은 정말 즐겼을까? 알고 듣고 본거 맞나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바그너의 작품세계를 조망하는 공연이 되길 바랐으나 키치하고 실험적인 아힘 프라이어의 작품세계만 잔뜩 감상한 격이다. 작품을 재해석한 실험적이고 추상적인 공연은 그만큼 우리나라에 니벨룽엔의 반지 정통 오페라 연출이 몇 번 올라온 이후에나 시도됐어야 했다.

한편의 공연을 올리기 위해서도 수개월의 합숙과 오랜 시간동안의 공부가 필수일진데 바그너라는 작곡가의 작품을 평상시에 해보지도 않았고 알지도 못하는 마당에 급하게 조달한 준비도 되지 않은 성악가들을 기용, 성량도 딸리고 캐릭터에 맞지도 않는 창법과 발음, 발성으로 무대에 올리고 아힘 프라이어라는 세계적인 연출가가 연출한 이런 대작 오페라를 했다라고 자평하고 뿌듯해한다면 그들만의 리그 중에서도 슈퍼 프리미어 리그다.

왼쪽 위의 세계초연은 무슨 의미일까? 세계 초연은 이미 한거 아닌가????
왼쪽 위의 세계초연은 무슨 의미일까? 세계 초연은 이미 한거 아닌가????

대한민국 오페라 70년사 최초제작 공연인 바그너오페라 니벨룽엔의 반지 4부작을 주최하고 제작하는 (사)월드아트오페라단은 러시아 오페라단 내한공연 이후 10여년 만에 국내제작 초연이라는 타이틀로 30억이 들어가는 대작이라고 홍보하면서 40만원에 육박하는 티켓을 책정했다. 너무 고가다. 하긴 지금까지 이런 류의 세계적인, 야외무대, 대형오페라 등으로 포장한 음악인들이 만든 단체에서 기획한 오페라 공연과 홍보, 제작이 한두 개였는가? 그것들이 궁극적으로 어떤 취지로 계획되었으며 우리 음악계에 어떤 파장과 해악을 끼쳤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예정되었던 니벨룽엔의 반지 2부 <발퀴레>부터 취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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