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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92 ] 스님

김홍성
  • 입력 2020.11.30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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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의 울 것 같은 심정이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된 바에야 그 모든 것을 담담하게 받아 들여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없어도 담담하게 말하면 담담해질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버스 종점을 둘러싼 짙은 운무 속에서 확성기 소리가 들려왔다. 점점 가까이 들려오는 그 소리는 다음날부터 시작될 파업에 적극 동참하자는 선동이었다. 확성기 소리가 아주 가까워지자 운무 속에서 시위대가 나타났다. 피켓이나 플랜카드를 들고 나타난 시위대는 구호를 외치며 우리를 향해 육박해 오고 있었다. 무선 통신기를 든 경찰들이 맨 앞이었다. 경광등을 켠 경찰차들도 따랐다.

 

시위대의 거창한 행렬이 우리 앞을 지나서 시야에서 멀어지고 있을 때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취생과 몽사는 떠났지만 스님은 아직 내 옆에 서 있었다. 그리고 이제 스님과 나도 작별해야 할 시간이 멀지 않았음이 새삼스러웠다. 어딘가 들어가 잠시 앉아서 요기라도 하자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보다 먼저 나온 말이 피곤해 보이십니다. 스님.”이었다.

 

내 깐에는 좀 걱정되어서 튀어나온 빈말이었다. 사실 스님 표정은 피곤해 보인다기보다 평소 그대로 담담했다. 그러나 내 말을 듣고 내 눈을 보는 순간 스님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스님은 대답했다


"처사님도 피곤하세요? 그럴 때가 된 겁니다.”

 

스님은 내가 피곤하니까 스님 자신에게도 피곤해 보인다고 말한 거라고 생각했을까? 물론 조금 피곤하기는 했지만 스님과 그 자리에서 헤어지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그렇게 헤진다는 것이 무척 섭섭했다. 취생이 스님에게 자기 얘기를 하고 있는 여러 날 동안 나는 스님에게 하고 싶었던 얘기들을 일기장에 기록해 왔다. 이제 그 얘기들을 해야할 참인데 피곤하다는 말이 나오다니!

 

나는 방금 피곤이라는 단어를 뱉은 걸 후회했다. 그 말로 인해서 이 말이 돌아온 것 아닌가? 스님이 느낀 나의 피곤은 이젠 헤어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스님을 붙들고 내 이야기를 모조리 들려주고 싶은 욕구가 커졌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나는 거의 울 것 같은 심정이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된 바에야 그 모든 것을 담담하게 받아 들여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없어도 담담하게 말하면 담담해질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는 갈망을 가라앉히기 위해 일부러 담담하게 물었다.

 

스님은 이제 어디로 가십니까?”

스님은 대답을 준비하고 기다렸던 듯이 말했다.

저는 우선 티베탄 난민 센터에 가봐야 합니다. 거기서 볼 일을 마치면 캘커타로 가야겠죠. 귀국을 하든지, 비자 연장을 하든지 캘커타에서 할 일이니까요. 처사님은?”

저는 림빅에 갈 겁니다. 버스가 아직 있을 겁니다. 림빅에 대해서 말씀 드린 적이 있었나요?”

, 들었죠. 지명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골케이, 람만, 실리콜라, 림빅 ....... 저도 그 동네가 눈에 선합니다.”

? 스님도 그 동네를 아세요?”

처사님이 다르질링에 있을 때 저는 그 동네에 있었습니다. 가끔 난민센터에 볼일이 있어서 다르질링에 나오기도 했고요.”

 

나는 깜짝 놀랐다.

그런 말씀 하신 적이 전혀 없었잖아요?”

말할 기회가 없었던 거지요. 흐흐흐.”

늘 그랬듯 스님의 웃음은 하하하도 아니고 호호호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흐흐흐나 히히히도 아니었다. 그러나 듣기 싫은 웃음소리는 아니었다. 나름대로 스님다운 웃음소리였다. 스님은 그렇게 웃고 나서 내게 말했다.

이제 림빅 가는 버스를 찾아봅시다. 앞장서세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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