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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91 ] 냉정한 몽사

김홍성
  • 입력 2020.11.28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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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몽사에게 악수를 청했고 몽사는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몽사는 나와 악수를 나눈 손으로 슬프게 들썩이기 시작한 취생의 어깨를 감싸 안고서 버스에 올랐다. 그들이 좌석을 찾아가서 앉기도 전에 버스는 시커먼 매연을 뿜었다.

 

지프는 빈자리 하나를 채우지 않은 채 출발했다. 좌석을 채우려고 너무 오래 지체했다가는 우리 네 명을 포함한 이미 탔던 손님들까지 곧 출발할 다음 버스에게 빼앗길 것을 염려했으리라.

 

강물에 걸쳐진 큼직한 다리 이쪽에 체크 포스트가 있었다. 우리 네 명만 내려서 스탬프를 받았다. 지프는 다리를 건너 점점 운무가 자욱해지는 비탈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달리다 꺾고,  다시 달리다가 꺾으면서 계속 비탈길을 올랐다.

 

차창 밖은 온통 차밭이었다. 앞자리 승객 중 한 명이 차창을 열었을 때 내 눈은 차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운무를 보았고 내 코는 운무에 섞인 상쾌한 차향을 느꼈다. 차나무는 운무를 먹고 자라야 제 맛이 나고, 고산지대에서 운무를 먹고 자란 차나무일수록 차향이 짙다고 들었는데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지프는 차나무들이 하얀 꽃을 피운 차밭을 지나서 차 농원(Tea Garden) 간판을 단 목조 주택 앞에서 갑자기 멈췄다. 큼직한 마대 자루를 업은 청년이 지프에 올랐다. 운전수로서는 천만다행이었다. 근심으로 찌뿌등했던 그의 얼굴이 조금 펴졌다. 그는 친구로 보이는 옆 좌석의 승객에게 '좌석 하나라도 못 채우면 차주가 그만큼의 요금을 봉급에서 제한다'고 네팔 말로 투덜거렸다.

 

지프는 그를 태우고 나서도 한 시간 이상 달린 끝에 고개를 넘었다. 최소한 해발 2천 미터는 될 고개였다. 조레탕의 고도가 약 400 미터라고 치면 지프는 최소한 16백 미터의 고도를 지속적으로 올라챘다고 봐야 한다.

 

내리막에서 지프는 시동을 끈 채 기아를 중립에 놓고 갤갤갤갤 굴렀다. 비탈을 그렇게 굴러 내려서 운무에 잠긴 다르질링 시가지 맨 아래쪽의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기사는 왜 그런 운전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지프의 연료가 간당간당 했기 때문이었을까? 어쨌든 지프는 버스 터미널이 멀지 않은 합승 지프 정류장에 이르자 길가에 정차했다.

 

몽사가 제일 먼저 내렸다. 몽사는 내리자마자 배낭을 업고 버스터미널로 달렸다. 우리도 배낭을 업고 몽사의 뒤를 따라 허겁지겁 달렸다. 얼마나 냉정한 몽사인가? 따라 오겠으면 따라오고 말겠으면 말라는 태도 아닌가?

 

몽사는 복잡하게 주차한 버스들 사이를 요리조리 헤집고 다니다가 내가 지치기 시작했을 때 실리구리로 가는 버스를 찾아냈다. 시동을 걸어 놓은 마지막 버스였다. 몽사와 취생은 버스에 올라 맨 뒤의 빈자리에 두 개의 배낭을 놓고서 같이 내려왔다. 몽사가 말했다.

 

스님, 여기서 이렇게 헤어지는군요. 지금 이 버스로 실리구리로 내려가야 오늘 밤 버스로 네팔 국경을 넘을 수 있습니다. 낮에는 너무 뜨거워서 배낭 메고 돌아치기가 힘들거든요. 죄송합니다.”

 

취생도 스님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스님 ……. 이렇게 황망하게 헤어지는군요. 네팔에 가면 룸비니에 들를 겁니다. 룸비니에서는 한 열흘 쉬면서 백팔 배를 할 겁니다. 스님 생각 많이 날 거에요.”

 

스님도 한마디 했다.

내 도반이 아직 거기 있을라나 모르겠네요. 동안거를 한다고 했으니 초파일까지는 거기 있을 겁니다. 만나게 될 거예요. 법명이 이명입니다.”

이명? 이름을 떠났다는 뜻일까요?”

그렇게 기억하면 되겠군요. 하지만 다른 뜻일 겁니다.”

 

나는 몽사에게 악수를 청했고 몽사는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몽사는 나와 악수를 나눈 손으로 슬프게 들썩이기 시작한 취생의 어깨를 감싸 안고서 버스에 올랐다. 그들이 좌석을 찾아가서 앉기도 전에 버스는 시커먼 매연을 뿜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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