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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놈 위에 더 높이 나는 놈? 인간 새, 우크라이나의 '세르게이 부브카'

기영노 전문 기자
  • 입력 2020.11.23 19:55
  • 수정 2021.06.24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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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17일까지 비록 장대에 의지했지만 가장 높이 난 사람은 세르게이 부브카 였다.

그러나 21살 스웨덴의 아르망 뒤플랑티스가 '인간새' 세르게이 부브카를 넘어섰다.

육상 계에서 깨지기 어려운 기록이라고 평가받던 남자 장대높이뛰기 실외 세계기록을 뒤플랑티스가 바꿔놓은 것이다.

뒤플랑티스는 9월18일 이탈리아 로마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세계육상연맹 다이아몬드리그 남자 장대높이뛰기 결선에서 6m15를 넘었다. 붑카가 1994년에 작성한 종전 기록 6m14를 1㎝ 뛰어넘은 세계 신기록이었다.

이제 아르망 뒤플랑티스 시대가 열렸지만 세르게이 부브카는 경기장 밖에서도 최고의 선수 였었다.

 

현역 시절 세르게이 부브카의 모습(사진=나무위키 갈무리)

1회 세계육상 선수권대회 최고스타

1983년 1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이후 이제까지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가장 화려한 성적을 올린 선수는 우크라이나의 남자장대 높이뛰기 선수 세르게이 부브카였다.

육상에서 35차례(실외 17회, 실내 18회) 세계신기록 경신, 세계선수권 6연패(83년 대회부터 97년 대회까지) 등 지난 20세기 세계육상 사를 바꿔 온 장대높이뛰기 1인자 우크라이나의 세르게이 부브카.

부브카는 90년대 이전에는 소련 국적으로.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는 독립국가연합의 일원으로 출전했는데 현재 그의 국적은 우크라이나다.

부브카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 장대높이뛰기 예선에서 무리하게 5m70에 도전했다가 3차례 모두 실패, 탈락의 멍에를 썼다. 나이 때문에 예고된 패배였지만 영웅을 떠나보내야 만 하는 팬들의 아쉬움은 더욱 컸다.

1994년7월 그가 세운 세계기록 6m14는 난공불락(難攻不落)의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부브카의 세계 신기록행진은 지난 84년 1월 실내육상대회에서 작성한 5m81cm에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5m81cm는 대단한 기록이었다.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 한국기록이 겨우 5m70cm대에 머물고 있는 것을 보면 그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부브카는 첫 국제대회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운 것이다.

부브카는 84년 이후 적어도 1년에 한번 이상 세계기록을 경신했고, 35차례 신기록 경신은 1920년대 세계의 육상중장거리 계를 석권하며 전설적인 선수로 남아있던 핀란드의 파보 누르미가 갖고 있던 '29회의 세계기록경신' 기록을 깨뜨리는 세계육상계의 대 역사였다. 부브카에게는 매 대회마다 상대 선수가 없었다. 부브카의 컨디션에 따라 우승선수가 가려졌다. 부브카가 정상적인 컨디션이면 다른 선수들은 2위, 3위 다툼을 해야 했다. 부브카가 부상을 당했거나 컨디션이 극도로 좋지 않을 때만 우승을 노렸다. 대 대회 부브카는 오로지 새로운 기록경신만이 관건이었다.

2001년 11월5일 부브카는 고향인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에서 개최된 자신의 이름을 딴 장대높이뛰기대회에서 은퇴식을 갖고 정들었던 필드를 영원히 떠났다. 당시 부브카는“선수로서 다시 장대를 잡지는 않겠지만 지도자로서 언제나 여러분 곁에 있을 것이다. 제2의 부브카가 나른 나라가 아닌 우리나라에서 나오길 바라고 또 노력을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부브카는 또한“이제는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운영위원으로서 국제 체육계에도 기여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부브카의 은퇴사가 끝나자 기립박수로‘육상영웅’을 떠나 보내는 아쉬움을 달랬고, 레오니드 쿠츠마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축사를 통해 “세계는 부브카를 통해 우크라이나를 알게 됐다. 이제는 우리가 부브카가 편안한 마음으로 후진을 양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며 경의를 표했다.

 

현재 IOC 위원으로 활약 중인 세르게이 부브카(사진=나무위키 갈무리)

현재 IOC 위원으로 활약 중

부브카는 1983년 제1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19세의 어린 나이로 5m70을 넘어 우승을 차지했다. 그 후 1997년 아테네세계육상선수권대회까지 세계 육상선수권대회 남자 장대높이뛰기에서 6연패를 달성했고, 장대높이뛰기 사상 처음으로 6m의 벽도 돌파했다.

부브카가 6m를 돌파 할 때 까지 세계의 스포츠과학자들은 장대높이뛰기에서의 6m벽 돌파를, 남자 육상 100m의 9초05, 남자 마라톤의 2시간05분(이 기록은 이미 깨졌다)와 함께 21세기 안에 깨트리기 어려운 기록이라고 평가 했었다.

부브카는 자타가 공인한 장대높이뛰기 1인자였지만 올림픽과는 다소 인연이 멀었다.

84년 LA 올림픽 때는 구소련의 대회 보이콧으로 출전 자체가 원천 봉쇄됐다. 부브카는 88서울 올림픽에서 유일하게 금메달을 획득했다. 88서울올림픽에서 부브카는 5m90cm의 올림픽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땄다. 그 전까지의 올림픽 기록 5m75cm를 무려 15cm나 경신한 것이다. 당시 은메달을 딴 리디온(5m85cm)과 동메달의 그레고리(5m80cm)도 모두 소련선수들이었다.

부브카의 올림픽 금메달은 88서울올림픽이 마지막이었다.

세계 최고기록 수립이 기대됐던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는 결선 진출기록인 5m75cm를 넘지 못해 예선에서 탈락했다.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오른발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해 출전 하지 못했다.

부브카는 은퇴무대로 생각하고 출전한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는 예선에서 무리하게 5m70cm에 바를 올려 도전했다가 3차례 모두 실패, 본선 진출도 못하고 좌절을 겪었다. 부브카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이 끝난 후 "올림픽은 나와는 인연이 없는 것 같다. 나는 이상하게 4년마다 시련을 맞이한다."고 털어놓기까지 했다. 아마 올림픽에 인연이 있었다면 최소한 금메달 3개, 많으면 4개까지도 가능했지만 1개에 그치고 만 것이다.

부브카는 실내육상 대회에서도 강세를 보였다. 91년 세계 실내육상대회에서 당시 마의 높이로 불리던 6m10cm을 뛰어넘어 `인간 새'란 별명 을 얻었던 부브카는 93년 우크라이나 도네츠크대회에서 6m15cm를 기록해 비공인 세계최고 기록을 작성, 인간의 한계를 시험했다. 이 기록은 비공인 이기는 하지만 실내, 외 대회 신기록으로 남아 있다.

현재 부브카는 IOC위원으로 활약하고 있고, “누구나 실패하기 마련이다, 나도 새 아닌 인간일 뿐이다”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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