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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로 시] 수푸루지 호프

윤한로 시인
  • 입력 2020.11.22 07:21
  • 수정 2020.11.22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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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푸루지 호프
    
윤한로

미카엘라와 아들내미 우리 셋
저번에 식구들꺼정 술 마시니
미주알고주알 맛있다
트집 잡힐 일 없고
도망갈 사람 없고
누가 내든 술값 머리 안 쓰고
쟁그랑쟁그렁 좀 좋으냐
아들내미한테 들려주는 옛날 얘기
군대 얘기, 학교 때 얘기, 인생의 훈계
그 구라 어디가면 누가 들어주냐, 존경해 주냐
피식 피식, 곁에서 아낸 연방 콧방귀 뀌지만
, 것두 다 음악 소리 같잖냐
자식은 모자라서 대학도 떨어지고
우린 다니는 직장에, 살림에 갈수록 쪼들시고
그래 우리 셋, 호프가 떠나가라
코가 삐뚤어지도록
혀가 꼬부라지도록 마신 게다
그러구러 나도 모르게 뒤로 까지니
림 끊기니, 아아, 얀마 장하다
새끼 등에 업혀 오는 접때 밤은
얼마나 행복했던가
낡은 파카에 오리털 풀풀 날리는 추운 겨울

 

 


시작 메모
귀촌하기 전, 안양 살 때구나. 가만 생각하니 너무 좋았다. 차도 없고 내 집도 없고 핸드폰도 없고 오직 시 쓰는 것만이 힘이던 시절, 주구장창 걸어 다니던 것만이 힘이던 시절, 안양천 미라보 똥물 다리 건너, 역전 층계참 올라갔다 내려오면, 일번가 노숙자 벤치에 잠깐 앉아, 찌그러진 종이컵에 시 한 편 쓰고 싶던 시절, 거진 학교에 지각하던 시절, 그래, 허구한 날 그 작자 몇몇한테 쫑코나 먹고, 비싼 밥 먹고. 그때 누가 말했지. 그대 왜 핸드폰 안 갖냐구. 싫소. 절대 안 갖겠네. 억지로 사 준다면, 그날 바로 미라보 다리 똥물에다 확, 집어 쳐넣을 거라고. 늬들이나 몇 대씩 가져. 그런 것들 마치 저급한 시인들 신변잡기나 되는 냥 치를 떨었는데. 게다가 내 아들놈 사년제도 떨어지고 이년제도 떨어지고 다 떨어질 땐 아프면서도 슬프면서도 얼마나 기뻤던가. 인간 하나 탄생했다고. 핸드폰, , , 시보다 더 큰 힘, 더 큰 껀수 생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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