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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340] Critique: 불멸의 베토벤 '합창교향곡', 함신익과 심포니 송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11.20 08:52
  • 수정 2020.11.20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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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연말에 들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유독 일본과 한국에서 연말에 자주 올리는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을 평년보다 조금은 이른 11월에 중순에 듣게 되었다. 하지만 올해만큼 전 인류적인 재앙에 직면해 모두 생사의 기로에 서서 고통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식량부족에, 천재지변에, 미움과 갈등, 증오와 혐오 범죄에, 전쟁에, 이상기후와 질병에 노출되어 생존을 위한 끊임없는 투쟁을 해온 인류지만 전 지구적인 팬데믹, 전염병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절멸의 위기에 처해있다. 그래서 더더욱 우리에겐 용기와 희망이 필요하고 그걸 채워줘야 하는 영적인 식량이 절실하다. 황폐한 환난의 시기에 큰 위로가 필요하다.

베토벤의 위대한 유산, 교향곡 9번 '합창'
베토벤의 위대한 유산, 교향곡 9번 '합창'

영국 태생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겸 작가인 스티븐 허브(1961~)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바스크 풍의 환상곡>은 아시아 초연이자 세계에서 두 번째로 연주된다고 한다. 창작곡이자 초연곡이다 보니 연주 전에 지휘자 함신익이 마이크를 들고 포디엄에 서서 곡에 대한 간단한 렉처를 진행했다. 이 곡에 대한 이해를 위해선 바스크 지방의 지정학적 특성과 거기서 기인한 민족성의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바스크 지방의 민요 '성녀 아가타'와 그녀의 시칠리아식 이름 AGATA를 계이름으로 음차화한 '라솔라시라' 동기를 조합한 형태의 선율과 바스크의 전통악기인 Txistu를 통한 민요 동기가 큰 골격이다. 비올라에 의해 제시되는 아가타의 동기가 다른 악기로 넘어가지 않고 비올라 파트 내에서 3중 푸가로 나누어지는 게 인상적이었다. 3도 위 도약으로 모방되어 바이올린이 받아 진행되다 후반기에 Txistu 대신 피콜로로 대체된 민요 선율이 섞여진다. 왠지 전체적인 악풍이 브루흐의 <콜 니드라이>나 쇼송의 <포엠> 같았다.

베토벤의 연주회용 아리아 '아! 못 믿을 사람이여'를 부른 소프라노 박하나

합창교향곡은 암보였다. 그만큼 함신익이나 악단이 보편성을 확보한 상태에서 생동하는 자연의 유기체를 구성했다. 장대한 에너지를 끌어모으다 폭발하는 빅뱅과 같은 1악장은 소나타 형식의 완결이요 천지창조다. 1악장 코다의 고집저음에서 비올라의 트레몰로가 너무 세서 유일하게 트레몰로를 하지 않는 콘트라베이스보다 우위에 서 버릴 정도였다. 2악장 몰토 비바체의 3/4박자 1마디를 차지해버리는 리듬은 순응하지 않은 치열한 저항의 몸부림 같다. 지구 위의 인간의 모습과 같다. 춤을 추며 탄생을 기뻐하지만 숱한 고난에 맞서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고 개척해 나간다. 트리오에서 목관악기들은 부드럽고 편안하게 진행하며 4악장의 복선을 연출해 나간다. 9번 교향곡의 2악장 스케르초는 수십 년의 세월을 거쳐 브루크너에 계승된다. 끈덕지면서 우직하고 진한 고래심줄처럼 질긴 인간의 생명력처럼. 3악장은 고상하다. 호른의 음색은 포근하다. 두 차례의 팡파르 뒤에 아직 모든 게 끝나지 않았다고 알리는 두 차례의 팡파르는 안도감을 선사했다.

함신익 말고 암보로 하는 사람들이 또 있었다. 4명의 솔리스트들과 국립합창단이다. 그만큼 악곡에 대한 숙련과 학습이 뒷받침되었다는 증거로 역시 무대에선 노래 부르는 사람은 보면대가 필요 없다. 보면대 보고 부르는 노래는 체화되지 않았다는 걸 의미할 뿐. 바리톤 김동섭이 일어나니 합창단도 서둘러 따라 일어났다. 긴 기다림 끝에 '이 노래가 아니다'라는 단호한 부정과 함께 환희의 송가가 울린다. 그리고 보니 스티브 허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비올라 주자의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앞에서부터 앉은 순이 아닌 두 번째 줄에서부터 시작해 3명이 주제를 이어받아 여기선 앞줄에 앉아 첼로와 콘트라베이스 더블링 주제를 이은 비올라의 가미에 앞장선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그리고 역시나 합창단 못지 않게 오래 기다리고 있었던 트라이앵글과 심벌즈의 타악까지 가미되어 사람의 입과 손, 인간의 행위로 울려지는 음성과 소리는 밀집,밀폐, 밀접을 금지하고 마스크 착용으로 얼굴을 가려야하는 이웃과의 접촉이 차단되고 최소화되어버린 현실에서 인간만큼 위대한 존재는 없다는 걸 다시 증명하고 확인시켜준다. 전염병을 이겨내는 최고의 방법은 긍정과 고요이며 은둔으로 생긴 우울은 오직 인간만이 해결해 준다는 걸 명확하게 다시 인식한 순간이었다.

함신익은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공간적 고저를 마치 하늘 끝에서 깊은 땅속까지 아우르듯이 최대한 활용하고 강조한다. 그의 비팅이 찌르면 음고는 올라가고 밑으로 어펏컷을 그리면 지축이 흔들린다. 그러면서 모든 근심 걱정 없는 인류의 사랑과 형제애만 넘치는 사랑의 주님에 도달하게 된다. 우리는 이 안에서 행복하고 편안을 느끼리. 그리고 용기와 희망을 얻어 새로운 발걸음으로 남는 2020년을 충실히 보내고 코로나를 물리치면서 인간의 위대함을 증명하고 보존하리.

함신익과 심포니 송 연주회에 가면 에너지가 넘친다. 부흥회 마냥 곡이 끝나면 열광적인 기립박수가 이어진다.

올해만큼은 11월에 들은 합창교향곡이 도리어 고맙다. 이제 줄을 이어서 베토벤이 남긴 '불멸의 유산'이 연주되겠지. 그러고 보니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다. 이와 같은 위대한 유산을 남겨준 베토벤이지만 연주회용 아리아 <아! 못 믿을 사람이여> 처럼 재미없고 생계를 위한 일을 해야만 했던 우리와 마찬가지로 하루하루를 근근히 버티던 일개 범부기도 했다. 그런 처절하고 외로운 절망의 시간을 이겨내면서까지 '더욱 즐겁고 기쁨에 가득찬 노래를 부르자'고 사랑이 듬뿍 담긴 메세지를 후세에 전했으니 오늘날의 우리도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꿋꿋이 오뚝이처럼 일어나게 만들어준다. 정작 베토벤 본인은 자신이 남긴 유산을 듣지도 못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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