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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프로야구 역대 챔피언, 요미우리 9연패의 비결은?

기영노 전문 기자
  • 입력 2020.11.09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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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해태), 삼성 4연패, 양키즈 5연패 요미우리 9연패

사진=요미우리 자이언츠 페이스북 갈무리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일본 프로야구 최고 명문 구단이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팀은 1934년 일본 프로야구 시작과 함께 팀이 창단 되었고, 이후 90년이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최고의 명문 구단으로 자리 잡으며 프로야구 뿐 만 아니라 전 스포츠를 통틀어 일본스포츠의 상징처럼 되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이같이 지존(至尊)의 위치를 확고히 한 것은 일본스포츠에서 전설처럼 회자(膾炙)되고 있는 'V 9' 때문이다.

일본 시리즈에서 전무후무한 9년 연속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일본 프로야구는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로 나누어진다. 각각 6개 팀 씩 리그를 벌여 우승팀을 가린 후, 각 리그 우승팀끼리 7전4선승제로 일본시리즈를 벌여 이기는 팀이 최종 챔피언이 된다. 따라서 9번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는 것은 자신의 팀이 속한 리그에서 9번 내리 우승을 차지했음은 물론, 상대리그 우승팀과의 챔피언결정전에서도 9번 연속 이겨야 달성 될 수 있는 아무리 강팀이라도 좀처럼 이루기 어려운 일이다.

센트럴리그의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9번 연속 일본 프로야구 챔피언이 된 것은 1965년부터 1973년까지다.

9연패를 하는 동안 퍼시픽리그는 한큐 브레이브스가 5번, 난카이 호크스가 3번 그리고 롯데 자이언츠가 1번 요미우리의 파트너가 되어 모두 패전을 기록했었다. 한큐 브레이브스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영원한 라이벌로 굳힌 계기가 되기도 했다.

요미우리는 1965년 일본시리즈에서는 난카이에게 4승1패, 66년 역시 난카이에 4승2패, 67년에는 한큐 브레이브스에 4승2패, 68년에도 한큐에 4승2패, 69년에도 역시 한큐에 4승2패로 이겼다. 70년에는 롯데에 4승1패, 71년에는 다시 한큐에 4승1패, 72년에 한큐에 4승1패 그리고 73년에는 난카이에 4승1패로 이겼다. 일본시리즈 전적에서 알 수 있듯이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한번도 막판에 몰리지 않았다. 4전 전승을 거둔 시리즈도 한차례 없었지만3승을 내줘 막판에 몰리지 않고, 단지 2패를 4차례, 1패를 5차례 기록했을 뿐이다.

일본 프로야구 전문가들은 당시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V 9'을 세울 수 있었던 이유로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명감독과 일본 프로야구 사상 최고의 선수들이 우연히 한 팀이 돼서 만든 신화(神話)라고 평한다.

당시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고 가와가미 데츠하루라는 당대 최고의 명감독이 팀을 맡고 있었다. 그리고 세계 프로야구 사상 가장 많은 868개의 홈런을 날렸던 왕정치가 3번, 미스터 자이언츠로 불리며 일본프로야구사상 가장 인기가 많은 나가시마 시게오가 4번을 쳤었다. 소위 말하는 ON(왕정치의 일본명 오 사다하루의 오에서 따온 O와 나가시마의 나에서 따온 N을 말함)포는 일본 프로야구 70여 년 사상 최고의 중심타선으로 불리고 있다.

왕정치는 1959년에 요미우리에 입단해서 1980년 은퇴할 때 까지 22년 동안 세계최다홈런 868개, 최우수선수 9회, 홈런왕 15회, 타점 왕 13회, 시즌최다 홈런 55개 등 갖가지 기록을 세웠었다. 왕정치의 등 번호 1번은 요미우리에서 영구결번 되었고, 1994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되었다.

왕정치가 장타자라면 나가시마는 타격, 수비, 주루 등 야구의 3박자를 고루 갖춘 야구 천재였다. 왕정치 보다 한 해 앞선 1958년에 요미우리에 입단해 1974년 은퇴 할 때까지 신인왕을 시작으로 해서 타격 왕 6회, 홈런왕 2회, 타점 왕 5회 등을 기록했다.

통산 8.094타수 2,471안타로 0.305의 타율을 남겼다. 나가시마의 등 번호 3번은 요미우리의 영구결번이고, 88년에 명예의 전당에 헌 액 되었다.

‘V 9’의 신화를 이룬 가와가미는 '타격의 신'으로 불릴 정도로 정확한 타격을 자랑했던 타자 출신이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18년 동안 7,500타수 2,347안타로 통산타율이 3할1푼3리였다. 그동안 181개의 홈런을 터트렸고, 타점도 1,319개나 올렸다. 가와가미는 원래 투수였다가 타자로 전향했는데,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왕정치와 함께 가와가미를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해서 성공한 모델로 꼽고 있다. 한국의 최고타자 이승엽도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 선수다.

가와가미의 현역시절 등번호 16번은 요미우리에서 영구결번이 되었고, 1965년에는 경기인 출신 '제4호'로 일본프로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되었다.

가와가미 감독은 선수시절이나 코치나 감독이 돼서도 별 다른 취미도 없이 오로지 야구에만 몰입했다. 그의 야구는 과거 재일 동포 출신의 국내 프로야구 감독들인 김성근, 김영덕 감독의 전매특허인 관리야구였다. 따라서 가와가미가 관리야구의 원조 쯤 된다고 볼 수 있다.

가와가미가 요미우리 팀 감독이 돼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선수들과 언론과의 접촉을 금한 것이었다. 그리고 선수들 사이에 마작을 금지하도록 엄명을 내렸다.

당시 일본 프로야구는 어느 팀 할 것 없이 원정경기의 숙소에서 선수끼리 마작 벌여 밤을 새거나 서로 싸우는 일도 비일비재했었다. 게다가 몇몇 선수는 빚까지 져서 팀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다. 당시 일본 프로야구에서 선수들에게 마작과 함께 '3 재 악(惡)'으로 꼽혔던 술과 여자도 일절 금지 시켰다. 아니 차라리 3악과의 전쟁을 선포한 후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외출외박도 금지시켰다.

가와가미는 1961년 미즈하라 감독의 후임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이 된 이후 1974년 물러날 때 까지 14년 동안 9연속 우승을 포함해서 11차례 일본시리즈에 진출해서 11번 모두 우승을 차지했다. 그야말로 백전백승을 거둔 것이다. 그동안 공식전에서 1,066승 739패 승률 0.591의 경이적인 성적을 남겼다.

가와가미 감독이 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에서 물러나자 각 팀에서 치열한 스카우트 제의를 벌였다. 그러나 가와가미 감독은 "나는 영원한 요미우리 맨"이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야인으로 있다가 2013년 사망했다.

 

 

사진=뉴욕 양키즈 페이스북 갈무리

<메이저리그는 5연승, 한국프로야구는 4연승이 최고기록>

한국프로야구는 1986년부터 1989년까지 4연속 우승을 차지했던 해태 타이거즈가 최다연승 기록을 갖고 있다.(2011~2014 삼상 라이온즈 타이기록)

당시 해태는 선동열이라는 괴물투수가 버티고 있었고, 조계현, 문희수 등이 뒤를 받치고 있었다. 포수는 재일동포 김무종과 장채근 그리고 타격에는 김성한, 한대화 등 당대 최고의 슬러거들이 버티고 있었다.

메이저리그에는 뉴욕 양키즈의 1949년부터 1953년까지 5연패가 최다 연승기록이다.

당시 양키즈 사령탑은 메이저리그 최다승인 7승 기록을 갖고 있는 명감독 케이시 스텡겔이 맡고 있었고, 투수력 보다는 타력이 강했다.

메이저리그 최고 강타자이며 스위치타자 가운데 한명인 미키 맨틀이 신인으로 활약을 하기 시작했고, 유격수 필 루주토, 2루수 빌리 마틴, 포수 요기베라 그리고 56게임연속 안타를 기록했던 조 디마지오도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었다. 투수는 좌완 에드 로펫과 큰 경기에 강한 와이티 포드가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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