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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328] 이 시대의 소리꾼 '이날치 밴드'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10.27 09:36
  • 수정 2020.10.27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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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 장림 깊은 골로 / 대한 짐승이 내려온다."

요즘 핫한 판소리 밴드 '이날치'가 부른 <범 내려온다>의 노랫말이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연주한 케이팝 아이돌 가수 레드벨벳의 컬래버레이션을 소개하니 학생 중 한 명이 이날치 밴드가 연상된다고 소개했다. 범상치 않은 복장으로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동서양의 조화이자 이상적인 컬래버레이션의 전형을 보는 거 같아 눈이 번쩍 뜨였다.

조선힙스터 밴드 '이날치 밴드'
조선힙스터 밴드 '이날치 밴드'

'조선 힙스터' 밴드라고 불리는 이날치 밴드는 전통적인 국악 판소리와 현대적인 음악 스타일의 퓨전을 시도하며 2019년 결성되었다. 밴드 이름인 이날치는 1820년 전남 담양에서 조선 후기 8대 판소리 명창 중의 한 명으로 줄도 날쌔게 잘 탄다고 하여 날치란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이날치 밴드의 멤버들은 '일상에서 언제 어디서나 재미있게 음악으로 즐길 수 있는 21세기 판소리를 해보자'라는 뜻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한국관광공사와 협업으로 제작한 홍보영상 세 편은 공개 2개월 만에 유튜브, 페이스북, 틱톡 등에서 조회 수 2억 뷰를 넘었다. 많은 누리꾼들이 '1일 1범' 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관광공사의 광고라고 하면 보통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물놀이패, 한강의 야경, 부채춤, 광장시장의 음식들과 셀카, 경복궁 등으로 대표되는 한류 스터와 웰컴 투 코리아로 끝나는 전형적인 시나리오가 떠오르지만 현대적인 리듬에 옛 가락이 흐르고 거기에 맞춰 희한한 사람들이 춤을 춘다. 어떤 설명도 없이 노래에 맞춰 춤추며 서울 이곳저곳을 유랑하고 마지막에 'Imagine your Korea"라는 카피 한 줄이 나오면서 코로나 끝나면 꼭 한국에 가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흥과 다이내믹,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한국에 당장 달려가서 같이 한국의 리듬을 타고 느끼고 싶게 만든다. 보수적인 공무원집단에서 이런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진행한 한국관광공사 담당자는 훈장을 내려줘도 부족할 애국자이자 프런티어다.

 이날치 밴드의 특징은 중독성 있는 가사와 리듬이다. 한참이 지나도 4분의 4박자 베이스 리듬과 '범 내려온다'라는 가사가 귓가를 계속 맴돌게 한다. 판소리라는 자체가 화성음악이 아닌 장구 하나를 가지고 다양한 리듬과 박자로 1인 다역을 소화해 내면서 풀어가는 노래다. 리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서양음악이 도리어 박자의 틀에 얽매인 정형으로 구속적인 면이 강한데 랩의 선조격인 우리 판소리가 반복되는 베이스 리듬에 따라 자유롭게 풀어헤쳐진다. 시대가 바뀌면 문화도 바뀔수 밖에 없다. 대원군이 듣던 판소리에 지금 20~30대들의 귀가 호응할 리가 없다. 하지만 전통문화의 정수를 시대에 맞게 재해석할 수 있다면 과거와 현재의 공존은 가능해진다. 그 시대의 유행하고 수용되었던 산물들이 시대가 지나면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잡는다. 흥선대원군 앞에서 불렀던 판소리가 100년 전인 정조 시대의 판소리와는 같지 않았고 흥선대원군 시절엔 정조시대의 판소리가 과거의 유물이자 전통이었을고 명창 이날치의 노래가 지금의 이날치 밴드처럼 파격이었을 것이다. 갓 쓰고 도포 입고하는 것만 판소리가 아니고 지금 사람들이 즐기고 받아들일 수 있는 복색과 노래로 변환되어야 한다.흔히 판소리라고 하면 전통 복장의 소리꾼이 부채를 든 채 고수의 장단에 맞춰 춘향가를 뽑는 장면을 떠오른다. 선입견이자 확증편향이다.

이 시대의 소리꾼 이날치 밴드
이 시대의 소리꾼 이날치 밴드

 클래식 음악은 유럽의 음악이요 이탈리아 오페라는 현지인에게는 대중들과 같이 호흡하고 즐겨 부르고 듣는 노래지만, 문화적 배경과 생활풍토, 환경, 여건, 정서가 전혀 다른 우리나라에서는 이탈리아 오페라를 비롯한 외국 오페라를 얼마나 더 잘 부르느냐를 성악 실력의 평가 기준 및 척도로 삼고 여기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현실이라 할 수 있다. 이날치 밴드는 전통문화의 창조적 계승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모범 사례라 할 수 있다. 자신이 처한 시대와 사회, 환경, 국민과 같이 동행해야한다. 그게 바로 현 시대가 요구하는 음악이요 우리 대한민국의 클래식음악이든 국악이든 될 것이다. 국악? 용어부터 틀렸다. 클래식? 판소리? 트로트? 장르의 구분? 무의미하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에서 살아 있는 객체들이 듣고 즐기고 향유하는 음악 전체가 국악이요 이 시대의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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