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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왜 한국시리즈 첫 우승 왜 20년이나 걸렸나

기영노 전문 기자
  • 입력 2020.10.23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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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로고(사진=삼성 라이온즈 페이스북 갈무리)
삼성 라이온즈 로고(사진=삼성 라이온즈 페이스북 갈무리)

삼성 라이온즈는 프로야구 10개 팀 가운데 가장 환경이 좋은 팀이다.

삼성 이라는 국내 최고의 재벌 그룹이 뒤에서 버티고 있고, 경상북도 내에 경북 고, 대구 상 원고, 대구고 등 야구 명문 팀들이 많다.

홈구장인 대구의 야구 열기도 부산, 인천에 버금갈 정도로 높다.

그러나 삼성 라이온즈는 1985년 전, 후기 통합 1위를 차지해 한국시리즈 없이 우승을 차지했을 뿐 한국시리즈를 통한 진정한 첫 우승을 한 것은 프로야구 출범이후 꼭 20년이 지난 2002년 이었다.

그 사이에 프로야구 원년부터 함께 출범한 두산(OB) 베어스는 프로야구 원년인 82년과 95년 그리고 2001년 까지 3차례 우승을 차지했었고, 해태 타이거즈 팀은 83년 첫 우승, 86년부터 89년까지 4연패, 91년 93년 그리고 96년, 97년까지 모두 8번이나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LG 트윈스가 90년과 94년 두 번, 태평양 돌핀스 팀을 인수한 현대 유니콘스가 98년 2000년, 한화 이글스가 99년에 우승을 차지했었다. 모두 5팀이 우승을 차지했었고, 해태 타이거즈는 무려 8번이나 우승을 차지하는 20년 동안(프로야구 원년부터 삼성 라이온즈 한국시리즈 첫 우승까지) 삼성 라이온즈 팀은 철저히 조연 역할을 했었다.

그러면 풍부한 자금, 훌륭한 선수, 좋은 감독, 열광적인 팬 등 우승을 하기위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도 우승까지 20년이나 걸린 이유는 뭘까?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너무나 전력이 막강했기 때문이다.

85년 삼성 라이온즈 팀은 통합(전, 후기) 우승을 차지했다.

전기리그는 55전40승1무14패 승률 0.741로 1위를 차지했는데, 프로야구에서 승률이 7할이 넘어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 그리고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좀처럼 보기 드믄 승률이다.

삼성 라이온즈는 후기리그에서도 55전37승18패 승률 0.673으로 1위를 차지해 전기리그 우승팀과 후기리그 우승팀이 갖는 한국시리즈를 없애 버렸다.

삼성 라이온즈는 전, 후기 통합 성적이 110전 77승1무32패 승률 0.706으로 7할 대가 넘었다. 프로야구 30년 가까이 되는 동안 1위 팀 승률이 7할이 넘어간 것은 프로야구 원년(OB 베어스, 7할) 이후 85년의 삼성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1985년의 삼성 라이온즈 팀 다음으로 승률이 높았던 해는 2003년의 현대 유니콘스 팀으로 133전 80승51패2무승부로 승률이 0.695에 이르렀다.

85년에 삼성 라이온즈 팀의 승률이 7할이 넘는 동안 통합 2위를 차지한 롯데 자이언츠 팀은 59승51패1무승부(승률 0.536)에 그쳤다. 1위 팀과 2위 팀의 승률이 무려 1할7푼이나 벌어진 것이다.

1985년 당시 삼성 라이온즈 팀 전력은 해태 타이거즈 팀에 선동열 투수가 입단 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 라이온즈 한 팀과 다른 5팀의 통합 팀이 맞붙어도 어디가 승리할 지 알 수 없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었다(당시 프로야구는 6팀으로 운영되었다)

우선 마운드에는 25승으로 최다승을 기록한 최다 승리투수 공동1위 (25승), 최다 탈삼진 1위 (126개), 승률 1위 (0.833) 그리고 투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 하면서 최고의 한해를 보낸 우완 에이스 김시진과 역시 김시진과 함께 공동 다승 왕(25승)을 차지했던 재일 동포 왼손 에이스 김일융, 한국 프로야구 사상 원투 펀치가 합해서 50승을 넘긴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한국 프로야구에서 김영덕 감독이 가장 먼저 마무리 개념을 도입해 권영호 선수가 전문 마무리를 전담하면서 28세이브 포인트(2구원승, 26세이브)를 기록했다.

클린업 트리오도 막강했다.

프로야구 사상 최고의 왼손 타자라는 장효조가 83년에 이어 두 번째 수위타자(0.373) 상을 받으며 출루율(0.467)상을 차지하면서 3번을 쳤고, 4번은 22개의 홈런으로 홈런 1위 87타점으로 역시 1위, 13개의 승리타점으로 1위를 차지하면서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상을 받은 이만수, 5번은 김성래(0.283, 13홈런) 그리고 6번에 지명타자 박승호(2할9푼) 그리고 하위타선에 이종두 김용국 등이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삼성 라이온즈는 너무 전력이 막강했던 것이 탈이었다.

1985년 삼성 라이온즈는 시즌 직후 대구상고(건국 대)를 나온 연고지 선수 이강돈을 1차 지명했다.

삼성 라이온즈는 이강돈에게 계약을 맺기 전에 자신이 스스로 군대문제를 해결하라는 조건을 달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선수의 군대문제는 가장 큰 고민거리 였다.

이강돈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해서 선수로 활약하면서 현역을 가든지, 방위로 빠지든 아님 면제를 받든 할 것 아닌가? 그런데 본인이 먼저 군대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은, 이강돈이 생각할 때 군대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였다. 그렇지 않으면 군 문제를 해결한(3년 후) 이후에 계약을 하자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삼성 라이온즈는 이강돈 선수가 건국대학교에서 중심타자로 활약하면서 수준급 선수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었지만, 마침 삼성 라이온즈 외야진에 장효조, 장태수, 이종두 그리고 지명타자로 활약을 하고 있는 박승호 등 좋은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당장 이강돈이 아쉽지가 않았던 것이 탈이었다.

이강돈이 삼성 라이온즈의 처사에 불만을 품고 있던 차에 86년부터 프로야구에 뛰어들 신생팀 빙그레 이글스가 이강돈에게 입단을 권유해 왔다. 물론 빙그레는 군대문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당시 빙그레 팀 에는 다른 6개 구단에서 보호선수 외에 선수들을 보내줬지만, 당장 쓸 만 한 선수가 별로 없었고, 그 해 대졸 신인들도 많이 받았지만, 프로리그에서 활약 할 선수가 눈에 띄지 않았다.

빙그레 이글스 팀 선수구성을 맞고 있던 노진호 단장이 이강돈이 아직 삼성 라이온즈와 계약을 하지 않았다는 정보를 듣고 접근해 온 것이다.

물론 삼성 라이온즈 팀은 발끈 했다.

아무리 신생팀이라지만 빙그레 이글스 팀이 프로야구 근간을 흔드는 일을 저지른데 대해 강하게 어필하고 나섰다.

그러나 빙그레 이글스팀 전력 보강에 총대를 메고 있는 노진호 단장이 불과 1년 전에 삼성 라이온즈 단장을 지냈었고, 프로야구 전체 분위기가 신생팀 빙그레 이글스를 살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당시 삼성 라이온즈 외야진이 막강했기 때문에 이강돈이 삼성에 입단 하더라도 최소한 1~2년은 2군에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이강돈이 빙그레 이글스팀에 입단하면 당장 빙그레 이글스 외야 진을 이끌 주전 멤버가 된다.

 

삼성 라이온즈는 결국 대승적인 차원에서 이강돈을 양보했다.

한국야구위원회 KBO도 전력 평준화 차원에서 이강돈이 빙그레 이글스로 가는 것을 눈감아 준 것도 크게 한 몫을 했다.

그러나 이강돈을 포기한 것은 삼성 라이온즈의 엄청난 실수였다. 이강돈은 빙그레 이글스에 입단 하자마자 347타수 103안타(0.297) 36타점 10홈런 11도루로 공격과 수비에서 발군의 활약을 했다.

이강돈은 1989년(137안타), 1990년(146안타) 2년 연속 최다안타 상을 받았고, 1990년 최다득점(81득점)을 기록하며 정확한 타격, 빠른 발과 뛰어난 야구센스로 정상급 외야수로 활약을 했다.

이강돈은 1987년 8월27일에는 사이클 히트도 기록했다.

이강돈은 빙그레 이글스, 94년 이후 한화 이글스 두 팀에서 86년부터 97년까지 12년 동안 0.284의 높은 타율에 87홈런, 556타점, 88도루의 알토란같은 활약을 했다. 이후 삼성 라이온즈가 배출한 어떤 외야수 못지않은 뛰어난 활약을 했다.

만약 삼성 라이온즈가 이강돈 선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면, 첫 우승이 더 빨랐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프로야구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삼성은 2000년 들어서, 2005년과 6년 2연패, 2011~4까지 4연패를 하는 등 통산 8번 우승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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