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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민턴 김학균 선수, 중국의 미녀선수 '예 자오닝' 왜 결별했을까

기영노 전문 기자
  • 입력 2020.10.20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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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때 두 사람 간의 편지를 전해 주는 향단이 역할만 했어요”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여자 배드민턴 사상 최고의 단식선수 방수현이 한국의 배드민턴 선수 김학균과 중국의 예 자오닝 선수의 열애설에 대해 한 말이다.

배드민턴은 88서울 올림픽 때 올림픽 시범종목으로 채택이 된 후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정식종목이 되었다.

당시 남자는 인도네시아의 알란부디 쿠스마와 아디 비라난타, 덴마크의 라우드리센 여자는 인도네시아의 수지 수산티와 한국의 방수현 중국의 탕주홍과 황화, 예 자오닝 등이 세계정상을 다투고 있었다.

복식조는 한국의 박주봉 김문수 조, 인도네시아의 하로토너, 구나완 조, 말레이시아의 R시텍, J시텍 조, 여자는 한국의 황혜영 정소영 조, 길영아 심은정 조, 중국의 관웨이전, 농춘화 조 등이 세계 랭킹 톱시드를 다투고 있었다.

김학균은 코리아오픈에서 한국 선수로는 남자단식에서 처음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좋은 기량을 갖고 있었고, 중국의 예 자오닝 선수는 큰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스매싱과 세밀한 네트 플레이로 차세대 유망주 였다.

배드민턴 국가대표 코치인 김학균은 현역시절 실력도 뛰어났지만 얼굴도 잘생기고 성격도 좋아서 국제 대회에 나가면 중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외국 여자 선수들의 인기를 독차지 했다.

김학균은 이용대가 나오기 쩐 까지는 배드민턴 계의 최고 미남으로 불렸다.

예 자오닝은 미녀 선수가 많은 여자 배드민턴 계에서 아직도 ‘여자 배드민턴 사상 최고의 미녀선수’로 인정을 받고 있다. 1m80cm의 늘씬한 키에 우유색깔 흰 피부에 크고 검은 눈동자 등 홍콩 영화배우 왕조현을 능가하는 전형적인 한족출신의 중국미인 이었다.

김학균 예 자오닝은 두 나라의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하면서, 코리아 오픈, 말레이시아 오픈, 인도네시아 오픈, 덴마크 오픈, 영국 오픈 등 갖가지 대회에 출전해서 자연스럽게 만나면서 가까워 졌다.

두 사람은 처음에는 편지로 의사표시를 했다. 주로 예 자오닝이 중국어로 편지를 썼고, 김학균이 다른 사람에게 자문을 얻어서 중국어로 답장을 했는데, 이를 김학균과 함께 국가대표로 활약하던 방수현이 편지를 전해주며 가교역할을 했다.

김학균은 예 자오닝과의 의사소통이 잘 안되자 아예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예 자오닝도 한국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국제대회 때마다 몰래 숙소를 빠져 나와 이국땅의 낮선 거리를 함께 거닐며 데이트를 즐기곤 했다.

불과 한 두 시간의 짧은 데이트 시간동안 고작 손목을 잡고 있다가 헤어지곤 했지만, 손짓 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했고, 어느 새 눈빛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가 있게 되었다. 두 사람 모두 ‘염불 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있다’는 말처럼 국제대회 참가 보다 서로 만날 수 있다는 게 더 큰 목적이었다.

두 사람이 사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처음에는 방수현 뿐 이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한국과 중국 두 나라 선수들 간의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

드디어 김학균과 예 자오닝의 집에서는 두 사람의 결혼 예기까지 오가기에 이르렀다.

이를 눈치 챈 필자가 김학균의 집을 급습했었다.

“김 선수 알고 왔으니까 다 얘기해 줘요”

“아니 뭘 말에요?”

김학균은 처음에는 (예 자오닝과의 교제를)인정하지 않았다.

“정말 말 안 해 줄래요?”

“글쎄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 내~ 원 참, 다 알고 왔다는 데두......방수현에게 들어서”

김학균은 방수현 얘기가 나오자 비로소 실토를 하기 시작했다.

그 때 필자와 김학균 두 사람의 얘기를 듣고 있던 사이에 (김학균)의 어머니가 끼어들었다.

저기 중국 애가 보낸 편지가 한 보따리나 있어요.

그제 서야 김학균은 예 자오닝과 주고받았던 서로간의 애닮은 사연이 담겨있는 편지를 보여 주었다.

편지는 중국어로 되어 있어 뜻은 잘 모르겠지만, 어떤 편지는 하트 표시가 여러 개 있는 것으로 봐서 두 사람간의 깊은 애정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어머니 중국 며느리 어떠세요?”

필자가 슬쩍 떠 봤다.

“나야 두 사람만 좋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지”

“그러면 예 자오닝 선수 보셨어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거 봤지, 예쁘 더구만”

사실 김학균 예 자오닝 선수의 결합은 충분히 가능한 얘기였다.

탁구의 안재형 자오즈민이 먼저 길을 터놨기 때문이다.

안재형 자오즈민은 1984년 10월 파키스탄에서 벌어진 제7회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처음 만났다.

그 당시 한국 남자대표팀은 북한에 패해 침울한 분위기에 싸여 귀국날짜 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안재형 보다 2살 많은 자오즈민이 마치 친 누나 같이 위로를 해줬다. 안재형은 처음에는 공산권 여자선수가 접근을 해 와서 조금은 불안했지만 그녀의 진실을 알아내고는 데이트를 즐기기 시작, 5년간 한국과 중국을 떠들썩거리며 열애를 하다가 1989년 12월 결혼했다. 당시 한국과 중국은 국교를 맺기 전이었는데도 두 사람의 국경을 넘은 사랑은 결실을 맺었다.

김학균과 예 자오닝 선수가 사귈 때는 한국과 중국이 국교를 맺은 뒤 였기 때문에 두 사람이 결혼을 하려고 마음만 먹는 다면 충분히 가능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김학균과 예 자오닝 커플은 결실을 맺지 못했다.

중국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두 사람간의 결혼을 방해했기 때문이었다.

중국은 자오즈민이 안재형과 결혼을 함으로서 중국이 손해를 봤다고 생각했다.

자오즈민이 중국 국가대표 탁구선수로 몇 년 더 활약을 할 수 있었는데, 안재형과 결혼을 함으로서 일찍 은퇴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오즈민이 탁구 지도자로서도 충분이 가능성이 있는 선수라고 봤다. 그런데 한국이 안재형과 결혼을 함으로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예 자오닝은 자오즈민의 경우와 또 달랐다.

자오즈민이 안재형과 결혼을 할 때는 막 전성기를 지나 내리막길에 접어든 선수였다면, 예 자오닝은 중국 배드민턴이 당시 세계정상권에 올라 있는 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덴마크 배드민턴을 따라잡기 위해서 의욕을 갖고 오래 전부터 키우고 있던 여자단식 전문 선수였었다.

만약 김학균과 예 자오닝이 결혼을 하면, 야심을 갖고 키웠던 작품(예 자오닝)이 오히려 한국 대표선수로 출전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중국 배드민턴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중국이 ‘배드민턴 경기력’ 때문에 두 사람의 결합을 방해 했다는 간접적인 증거는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다가 조기 은퇴한 탁구의 덩야핑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중국은 덩야핑이 한국의 간판스타 현정화에게 한번도 패하지 않고 전승을 올리는 등 탁구 실력은 역대 최강이지만, 단지 ‘키가 작다(1m49cm)’는 이유로 국가대표에서 조기 은퇴시킨 의혹을 받고 있다.

중국의 탁구 실력이 막강하고 선수층이 두텁기 때문에 세계랭킹 1위 덩야핑에 이은 2인자들이 나서도 세계정상을 유지하는 데는 지장을 받지 않기 때문에 국가적인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은퇴 시켰다는 것이다.

그만큼 중국은 국가를 위해 개인을 희생 시키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풍토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김학균과 예 자오닝 두 사람은 한국과 중국 또는 국제 배드민턴 계에서 두 사람이 사귄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 된 이후 국제대회에서 만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중국 당국이 예 자오닝의 국제대회 출전을 정략적으로 막았기 때문이었다. 설사 국제대회에 함께 출전을 한다고 해도 만날 수가 없었다.

중국에서 항상 감시원을 붙여놔서 김학균이 예 자오닝 선수에게 접근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편지로 애타는 사랑을 표현했지만, 역시 한계가 있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 진다’는 말이 있듯, 세월이 흘러 두 사람 사이의 편지도 자연스럽게 끊어지면서 안타깝게도 영원한 이별을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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