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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몽키 키우기] 이튿날

안소랑 전문 기자
  • 입력 2020.10.14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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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몽키에게 일주일에 한 번 식사를 주어야 합니다.
내면에 자라는 씨몽키가 거대한 물고기가 되어 바다로 향할 수 있도록.

 

 

 

 

가로수가 익는다

그림자처럼 몰려오는 이튿날의 새벽

터미널에는 여섯 사람의 뒤축에 달라붙은 노랑들이

어수선한 대화들을 새기고 있다

 

먹빛 미신을 뒤집어쓴 까마귀들이

속이 텅 빈 은행잎들을 열어보인다

반으로 접힌 포춘쿠키를 쪼개며

잘 익은 운세를 확인하던 아버지

 

<축축하고 어두운 땅바닥을 조심하세요>

 

나는 전광판 속에서 한 뼘씩 다가오는 미래를 확인하며

불길한 새들의 울음을 뒤축으로 짓이긴다

 

겨우내 먹을 열매를 숨겨두고 잊어버리는 산짐승들의 습성처럼

가을의 마지막 은행잎을 반으로 쪼개놓고는

자기가 누구인지 잊어버리곤 하던 아버지

이튿날의 무릎에 달라붙은 노랑들은

열 두 개의 꽃길 앞에 고개 숙이는 바닥의 자세를 기억하고 있다

 

당신이 하얗게 건너간 만발한 언덕처럼 점점이

떨어져나간 노랑들이 번져 있는 가로수

코 끝에 묻어나는 구린내에서도 발견하고 싶은 점괘가 있고

부서진 쿠키 속에는

이제는 사라진 아버지의 오늘이 잔뜩 매달려 있다

매년 찾아오는 이튿날,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다 보면

주인을 찾지 못한 운세들은 내 뒤꿈치에 묻어

발자국마다 흘려 쓴 문장이 되고도 지워지지 않았다

 

짙어진 점괘처럼 온몸에 스며든 기름 냄새 풍기며 버스에 오른다

창가를 고집하는 건 이내가 엉킨 새벽의 하늘가

뭉글게 떠다니는 구름조각을 떠올리기 때문일까

 

부서지는 순간에만 발견되는 오늘처럼

기억나지 않는 이름들은 잘 말아서 저곳에 밀어넣던 당신

 

그가 꿈꾸던 오늘과 내일이

열 두 개의 발바닥에 묻어 바닥에 그려진다

나는 부서진 쿠키 조각들을 쓸어모아

창밖으로 두 손을 내민다

 

울고 있는 그림자들을 물고 날아오르는 까마귀들

핏기 저문 구름 속에 넣어두었던 두 손에서

희미하게 안개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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