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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321] Critique: 이혜경 피아노 독주회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10.14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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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고의 길은 타고난 팔자, 기도하는 마음으로 같이 걷는 동행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로 이번 주 월요일 하향 조정되어 국공립 시설이 개장했다. 하루 차이로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이혜경 피아노 독주회가 성사되어 가슴을 쓸어내렸다. 안 그래도 코로나로 인해 3월에 예정되어 있던 연주회가 이번 10월로 미뤄진 것인데 또다시 연기와 취소, 무관중 온라인 공연 같은 대체물은 개최자나 관객이나 맥 빠진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아 후기 소나타 3곡에 op. 101 28번까지 추가된 4곡을 한 무대에서 듣는 연주회다. 말로만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라고 범람하는 베토벤팔이 마케팅의 홍수 속에 이거야말로 제대로 된 베토벤 연주회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 중앙대학교 기악과 교수로서의 직책을 수행하며 구색 맞추기가 아닌 제대로 된 탐구의 구도자의 길을 걷는 이혜경 같은 피아니스트나 도전하는 아무나 흉내 내지 못하고 범접하지 못하는 일이다. 천고의 길은 타고난 팔자다.

32번을 마치고 무대인사를 하는 피아니스트 이혜경, 오늘 건진 유일한 사진으로 음악회의 감흥을 전한다. 

마치 발에 돌을 줄로 매고 수영을 하듯 깊고 무겁기만 한 건반, 클래식 전용홀에서나 볼 수 있는 대형 크기의 슈타인웨이에서 울리는 베토벤은 자극적이고 말초적이지 않고 묵직하며 장중하게 가라앉는다. 베토벤에 어울리는 오래간만에 베토벤의 고장, 독일 현지의 오랜 수도원이나 장원에서나 들을 수 있는 소리이자 고전적이다. 세밀한 뉘앙스를 표현하고 순결과 서정, 베토벤 내면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전달하기엔 적합할지 모르는 심연의 소리였겠지만 활달하고 빠른 악장에는 그만큼 건반의 무게가 있었을 터. 28번의 2악장은 악마의 장난이다. 마치 30년 후의 슈만의 <환상곡> 2악장에서 그 악마의 미소가 재현되듯 내성의 구조와 리듬, 도약 등은 암기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에겐 곤욕이다. 28번을 마치고 대기실에 들어갔다 나온 이혜경이 피아노에 곧바로 앉지 않고 뭔가 말하려는 듯 관객에게 다가왔다. 의례적인 인사 후 너무 떨려 신경안정제를 복용했더니 도리어 근육의 마비가 왔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혜경 같은 대가에게도 오늘의 프로그램은 부담이다. 그녀의 말마따나 수십 년, 수백 번 무대에 섰지만 항상 새로운 상황에 봉착하고 배우고 익히고 알아간다고.... 그런 그녀를 혼자 내버려 둘 순 없다. 이제 관객도 일체가 되어 그녀와 함께 오늘 베토벤을 완주할 수 있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천고의 길을 같이 걷는다.

30번의 3악장 변주곡 주제는 들을수록 베토벤이 창작한 최상의 선율이다. 순결과 영롱함의 완결이며 소박함은 후세의 브람스와 그의 변주 기법을 예견케 한다. 주제와 제1,2변주까지의 천사의 노래 같은 숨결을 이혜경은 모노드라마같이 펼친다. 그건 31번 소나타의 3악장 아다지오의 처절한 비통의 아리오소와 일맥상통해서 마치 코로나 형국에 신음하는 전 인류를 위한 위로와 통곡이었다. 변주곡과 푸가의 조합은 기악 음악 형식의 최고봉이다. 엘레지는 마침내 푸가의 왼손 주제와 서서히 환희의 결정에 오르면서 비탄을 지워내고 승리와 기쁨의 송가를 울린다. 가장 긴장되고 장대한 그래서 마지막 남은 거대한 봉우리 같은 존재인 32번의 2악장 변주곡은 스태미나의 감소, 집중력의 저하, 그리고 길고 복잡한 길이 등의 여러 난제로 인한 우려가 기우였다는 걸 증명하듯 오늘의 4개 소나타 13개 악장 중 가장 뛰어난 연주력과 몰입력을 보여준 시간이었다. 결국 베토벤은 낭만주의의 길, 즉 새로운 시대를 연 게 아니고 베토벤 자신만의 음악, 속세를 초월한 경지에 도달한 것으로 거기엔 코로나도 없고 미움도 없고 갈등과 분쟁도 없는 천국이자 우주였다.

사진은 없다. 본 공연이 끝나고 앙코르 전에 한 장 찍으니 하우스어셔가 멀리 뒤에서부터 득달같이 달려와서 못 찍게 말렸다. 도대체 어떤 매뉴얼로 교육하는지 모르겠지만 왜 사진을 못 찍게 하는가! 그 규정을 왜 만들었는지 숙고를 하고 집행해야지 촬영으로 연주에 방해가 된 것도 아니요 저작권에 침해하고 초상권을 침범한 것도 아니요 무단 촬영과 도촬을 통한 상업적인 이익을 꾀하려는 것도 아닌 데다 정작 아티스트들은 사진도 찍히고 같이 찍고 자신의 연주회를 관객과 함께 즐기고 소통하며 기쁨과 수고를 나누고 싶은데 융통성이 없다. 하긴 음악회 홀 어디든지 갈 때마다 안내원들이 매번 바뀌고 이 정도의 제약이라도 없으면 클래식음악관람매너도 모르는 사람들로 인해 도떼기시장이 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 공연관람매너를 준수하는 건 당연하지만 필자 입장에선 약간 씁쓸하다. 음악 감상 방식과 양식의 변화에 따라 탄력 있게 관람 문화와 에티켓 규정도 바꿔야 하니 숙제가 하나 더 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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