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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관 시인
  • 입력 2020.09.22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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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는 습관 중 하나가 제목을 나중에 붙이는 겁니다.

달은 제목부터 썼습니다. 어떻게 쓰여질 지 전혀 감이 안옵니다.

 

달을 몇 년 몇 달을 품고 다녀야만 했습니다. 왜냐고 물으시면 저도 몰라요. 품고 다닌 달에는 옛날 나를 사랑했던 여인의 얼굴이. 나를 버리고 떠났던 애인의 모습이. 춘정을 못 이겨 찾았던 매음굴의 정사가. 사랑이 사랑 아님을 알려준 여인이 담겼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한가위 달을 보았습니다. 이국의 바닷가에서 달을 머리에 언혀 놓고 사진도 박았습니다. 달만큼이나 둥글게 나온 배가 조화롭게 튀어나왔더군요.

 

이제 달 속으로 들어가려는데 달에게 밀려온 파도가 자꾸 나를 밀어냅니다. 끝내 뭍까지 도달하지 못한 바다의 심술이겠지요만 나는 머리로 걸어서 달 속으로 들어갑니다.

 

달 아래에서는 나와 관계된 수많은 여인의 향기뿐이었는데 그곳에는 주름진 어머니가 달보다 더 환하게 웃고 계십니다. 얼마 전에 네 생일은 챙겨 먹었냐고. 엄니 돌아가시곤 생일을 잊었습니다.

 

사는 것에 지친 이들을 깨우는 새벽이 오고 어머니는 조용히 제 등을 떠밀어 달 밖으로 내려보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한 달빛이 차갑습니다.

 

몇 년을 품었던 달이 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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