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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원 음악통신 305] 랑랑의 신보: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성용원 작곡가
  • 입력 2020.09.15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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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계 에베레스트' 평가 받는 곡..앨범 발매
바흐가 잠들어 있는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에서 녹음

피아니스트 랑랑이 새 앨범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이번 달 4일 발매하고 같은 날 11시에 음반출시 기념 쇼케이스 영상을 랑랑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했다. 아리아와 서른 개의 변주곡으로 이루어진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음악적 에베레스트'라는 별칭 답게 장대하고 심오한 클래식 건반음악의 집약체인 대곡이다.

랑랑의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 커버
랑랑의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 커버

1742년에 출판된 ≪클라비어 연습곡집≫ 4부에 수록된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원제는 "2단의 손건반을 가진 쳄발로를 위한 아리아와 여러 종류의 변주곡(Clavier Uebung bestehend in einer verschiedenen Veraenderungen vors Clavicibal mit 2 Manunalen)"으로 악보 상에도 '건반 연습을 위한 음악'(Clavier Uebung)이라고 분명히 작곡 목적을 밝힌 작품이다. 심한 불면증 환자였던 러시아 대사 카이저링크 백작이 긴긴 밤에 감상할 만한 음악을 요청해 변주곡 형식으로 장장 1시간이 넘는 곡을 썼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일관성 있게 곡을 전개해 나가기에는 적합한 변주곡 양식을 택한게 작곡 사유로 알려졌다. 그러니 당신이 이 곡을 듣고 잠에 빠지다면 절대 그건 당신의 탓이 아니라는 거다. 원래부터 수면제 대용으로 작곡된 곡이 카이저링크도 아닌 골드베르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연유는 무엇일까? 백작의 집에서 상주하면서 마치 밤마다 살기 위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야 했던 세혜라자데와는 반대로 백작을 재우기 위해 연주해야만 했던 고용인 쳄발로(피아노의 전신) 주자 요한 고트리브 테오필루스 골드베르크의 이름에서 유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작곡 배경의 진의를 떠나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아리아 주제에 이어 30개의 장대한 변주로 이어진 작품으로 바흐의 <푸가의 기법>, <음악의 헌정>과 더불어 바흐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인류사 최고의 걸작인데 이 위대한 작품에 38살의 랑랑이 도전하였다.

피아니스트 랑랑, 사진 제공: 유니버설뮤직
피아니스트 랑랑, 사진 제공: 유니버설뮤직

'청중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현란한 기교', '악마적인 힘과 광란의 질주', '스타의 창공으로 쏘아 올려진 아시아의 피아니스트', 랑랑에 대한 고착화된 이미지는 클래식 음악 전문가와 애호가들 사이에 호불호가 나뉜다. 그건 꼭 랑랑뿐만이 아니라 유자 왕이나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 또는 올해 3월 코로나19 여파에도 불구하고 내한공연을 펼친 발렌티나 리시차 같은 3-40대 젊은 피아니스트들에게 자주 보이는 현상이자 세상의 평가다. 그들은 선배 연주자들과는 다르게 인터넷, 유튜브 같은 미디어와 결합하며 미디어의 파급효과에 대해 미리 내다보고 파악하고 접근하면서 자신만의 브랜드와 캐릭터를 구축하면서 조성진, 손열음 같은 그들보다 더 젊은 세대와의 가교 같다. 그래서 왠지 진중하고 깊이 있는 탐구, 인내, 구도자의 길과는 거리가 멀 거 같은 선입견의 랑랑이지만 그가 이번 음반과 현재 맞고 있는 코로나 사태에 대해 남긴 소회를 소개한다.

올해는 내게도 특별하기 때문에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말하라며 '무대에서 연주할 때' 나는 가장 행복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로 국내외 70개의 공연이 모두 미뤄졌는데 어느 음악가에게든 이건 악몽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내면적으로 강해져야 하고 계속해서 연습해야 한다. 새로운 곡을 익히고 작품을 배워야 한다. 동시에 예술가로서 사람들 마음에 위로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클래식은 꽤나 감성적인 틀의 예술이라 사람들 마음과 영혼에 더 와닿으니까...

대중들의 갈채만 추구하면서 쇼적인 면모에 치중, 오버하는 엔터테이너라는 편견을 대번에 불식시키는 내면의 성찰이 우러난 문장으로서 원래부터 랑랑이 그런 사람이었는지 아님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해 진지하게 성숙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기존의 이미지를 타파하고 새로운 곡을 익히고 공부하면서 클래식 음악의 존재에 대한 이유를 상기시키는 랑랑의 자세이자 철학이 와닿는다.

중국 피아니스트 랑랑, 사진제공: 유니버설뮤직
중국 피아니스트 랑랑, 사진제공: 유니버설뮤직

바흐가 봉직했고 바흐의 유골이 묻힌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에서 실행된 이번 녹음을 위해 열일곱 살 때 크리스토프 에셴바흐 앞에서 처음 연주한 랑랑은 장장 20년의 세월을 걸어왔다. 90분에 육박하는 다른 연주자들에게 비해서도 많은 시간이 소요된 러닝타임은 속주가 특기인 랑랑에게는 힘겨웠을 테다. 3년 전 독일의 하프시코드 연주자인 안드레아스 슈타이어와의 만남을 통해 바로크 스타일을 터득하고 필연적으로 많이 쓰인 반복을 지키기 위해 느린 부분을 더 느리게 연주하고 일반적으로 반복하지 않은 마지막 아리아까지 되풀이하면서 각 변주의 성격을 부여하기 위해 다양한 표현을 동원한 이번 음반. 슈타이어와의 연마 기간은 손목 부상으로 고통받은 랑랑의 삶 속에서의 시간 척도와 그대로 일치하면서 이 곡을 충분히 터득하는데 20년의 인내를 요구했다. 랑랑의 고백대로 잘했지만 아직 갈 길이 먼지, 아니면 기나긴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걸어 대가의 반열에 들어섰는지는 주문한 음반이 도착하는 대로 자세히 들어보고 판단해야겠지만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녹음이 하나 더 늘었다는 그 자체가 인류사의 경사인 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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