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카테고리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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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카테고리쿠스
  • 천원석 칼럼니스트
    천원석 칼럼니스트 wschun67@nate.com
  • 승인 2020.09.14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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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homo)는 사람을 가리키는 라틴어이다. 인공어인 에스페란토어도 homo는 사람을 의미한다. 또한 영어의 휴먼(homan), 프랑스어의 옴므(homme), 이탈리아어의 우오모(uomo), 스페인어의 옴브레(hombre)의 어원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이 가지는 어떤 특징을 이야기할 때 앞에 ‘Homo-’를 붙여서 명명하기도 하는데 대표적으로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 ‘호모 파베르’(도구를 사용하는 인간), ‘호모 아카데미쿠스’(공부하는 인간) 등이 있다. 또한 이는 책 제목으로도 많이 차용되었는데 여기에는 유발 하라리가 쓴 호모 사피엔스호모 데우스가 있고, 이문열도 처형하는 인간이라는 의미의 호모 엑세쿠탄스라는 책을 발표한 바 있다.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더.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책에서 김지혜는 모든 것을 구분하여 인지하는 경향을 가진 인간의 속성을 호모 카테고리쿠스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있다.

김지혜는 이를 인간의 마음은 범주의 도움을 받아야 사고할 수 있다.()그래야 질서 있는 생활이 가능하다.”는 고든 울포트의 말을 빌어 설명한다. 즉 인간은 사람이든 동물이든 사물이든 여하간 모든 것을 범주로 구분하려는 습관이 있는데, 같은 것과 다른 것을 분류하는 사고의 과정을 통해 범주를 만들고 그 범주를 바탕으로 세상을 이해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을 구분하는 범주는 매우 다양하겠지만 실제 우리가 사용하는 범주는 실상 그리 많지가 않다. 필자를 예로 들어 범주화해보면, ‘남자이며, 중년이고, 프리랜서이며, 개신교인이다. 또한 이성애자이며, 진보에 가까운 중도 성향이다. 그리고 본적은 경상도이다.’라고 할 수가 있다. 이는 필자를 성별, 나이, 직업, 종교, 성적지향, 정치성향, 출생지 순으로 범주화한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사람들은 어떤 개념이나 대상을 떠올릴 때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디폴트 값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인이라고 하면 보통 백인-남성-성인-개신교인라는 디폴트값을 떠올린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성별을 떠올려 봐도 일반적으로 남성-여성을 디폴트값으로 떠올리지, 여기에 트랜스젠더 남성혹은 트랜스젠더 여성까지 떠올리지는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전공의를 중심으로 한 의사들의 진료 거부가 한창이다. 이들의 표면적 진료 거부 명분은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신설등에 대한 반대이다. 정부의 안은 2022년부터 향후 10년간 의사 4,000명을 추가 양성하여, 이 중 3,000명은 지역의사 특별전형으로 선발해 10년간 의료 낙후 지역에서 의무 복무하도록 하고, 또한 의대가 없는 지역에 공공의대를 신설해 응급의료, 감염내과 등 소위 돈 안되는비인기 학과 의사들을 배출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의사들은 현재의 인구 감소율과 의사 증가율을 고려하면 의사 수는 충분하며, 공공의대 역시 시, 도지사가 추천한 사람을 의대에 들어가게 하기 위한 꼼수라며 그런 식의 불공정한 의사 배출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의 엄중함 속에 생명을 소위 판돈으로 놓고 하는 의사들의 진료 거부는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실제로 응급 환자가 전공의들의 파업으로 인해 13곳의 병원을 돌아 다니다가 끝내 사망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이와 함께 의사들의 커뮤니티 안에서 생성된 각종 가짜 뉴스가 언론에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더욱이 이들의 진료 거부가 의료 정책에 대한 반대를 넘어 현 정권의 타도가 목표라는 발언이 매스컴을 타면서 이들의 극우화된 정치 편향과 함께, 이들의 진료 거부의 진짜 목적이 늘어나는 의사들로 인해 줄어들지도 모를 자신들의 밥그릇 지키기라는 성토가 줄을 잇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에게 국민의 여론은 안중에도 없다. 이들은 정부를 상대로 대화와 타협이 아닌 굴복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국민들의 생명을 담보로 한 자신들의 힘이 얼마나 센지를 보여주려 하고 있을 뿐이다.

늘 일등만 하는 수재, 선생님이란 호칭이 당연한 존재, 정부도 굴복해야 하는 집단, 자신들의 밥그릇은 절대 건드리면 안되는 것, 국민의 여론을 눈 아래 두는 신성불가침의 존재.’ 혹시 이것이 의사들이 자신들을 범주화하면서 가지는 자신들에 대한 디폴트 값은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그들은 매일 환자를 다루면서 자신들도 그렇게 환자가 되어가는 중일 것이다. 그것도 치료약이 없는 만성 중증 환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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