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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야구선수 이호성, 그는 왜 자살을 선택했는가

기영노 전문 기자
  • 입력 2020.09.14 10:26
  • 수정 2020.09.14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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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거의 10년 주기로 괴물들이 나타난다.

60년대 도끼로 일가족 6명을 살해했던 고재봉, 70년대 시골 외딴 집을 돌아다니며 노인 어린이 할 것 없이 마구 죽였던 김대두 사건, 80년대 현역 경찰이 수류탄과 카빈소총으로 무고한 시민 56명을 죽이고 34명을 부상 시켰던 우순경 사건 그리고 90년대 김기환 등 7명의 지존파가 사람을 죽여 개인 화장터에서 화장시키고, 심지어 인육을 먹기까지 했던 지존파 사건, 그리고 2000년대 괴물로는 프로야구선수 4번 타자 출신 이호성 사건을 빼 놓을 수 없다.

이호성은 프로야구 선수 가운데서도 스펙이 가장 뛰어난 엘리트 출신이다.

호남지방 최고 명문인 광주일고를 나와 연세대학을 졸업하고 야구명문 해태 타이거즈(기아 타이거즈 전신) 4번 타자 출신이다.

이호성은 1990년 해태 타이거즈 팀에 입단, 첫해에 313타수 95안타(0.304)의 성적으로 가능성을 보였었고, 이듬해인 91년에는 21개의 홈런을 때리는 등 팀의 우승에 기여했고, 자신이 속해있는 동안 해태가 4번(91년, 93년, 96년, 97년)이나 정상에 올랐다.

이호성은 2001년, 해태 타이거즈가 기아 타이거즈로 바뀔 때 까지 12년 동안 0.272의 타율에 102홈런 526타점 167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호타준족을 자랑했다. 팀의 4번 타자로 활약하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골든글러브 수상을 하는 등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했다. 선수들 사이에서는 엄지손가락으로 못을 박는 괴력의 소유자로도 유명했다.

그러나 이호성은 2008년 3월10일 한강에서 의문의 자살을 하고 말았다.

이호성은 서울 마포 일가족 실종 용의자로 지명수배 되었다가, 공개수배 5시간 만인 3월10일 오후 3시경 한강변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사망 장소는 반포대교 북단이고, 사망 추정시간은 오전 9시~10시로 밝혀졌다.사체는 한남동 순천향병원으로 이송되어 지문감식 결과 이호성씨로 밝혀졌다.당시 이호성의 사체에서 발견된 유류품은 흰색마스크와 전화카드 한 장 뿐이었다. 면바지에 가벼운 캐주얼 복장차림이었고, 경찰은 하루 뒤인 3월11일 부검을 실시해 익사한 것으로 판명했다

그러면 이호성은 왜 자살을 한 것일까?서울 마포구 창전동 김연숙(당시 46ㆍ여)씨와 세 딸 실종 사건을 10여일 동안 수사를 해 오던 경찰은 3월10일 그 사건을 공개수사하기로 결정하고, 현상금 300만원을 내 걸고 유력한 용의자인 전 해태 타이거즈 소속 프로야구 선수 이호성씨(당시 41)를 공개 수배했다.경찰은 용의자를 조기에 검거하기 위해 이 씨의 사진과 인적사항이 담긴 수배 전단을 공개하고, 현상금 300만원을 내걸었다. 경찰에 따르면 실종자 김 씨는 이 씨와 교제하던 중 2월18일 0시10분께 은평구에 있는 자신이 경영하고 있던 모음식점에서 영업을 마치고 퇴근한 뒤 세 딸들과 함께 귀가하지 않은 채 실종됐다.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명문 광주일고와 연세 대를 거쳐 1990년 해태에 입단한 이 씨는 데뷔 첫 해부터 주전을 꿰차고 90년대 후반부터는 해태의 4번 타자를 맡는 등 중심타자로 활약했다. 그러나 은퇴 이후 예식장 업을 해서 재미를 봤었는데, 예식장 업을 하면서도 사업규모를 더 넓히려고 게임장 사업에 뛰어든 뒤 수십억 원 대의 손해를 봤고, 2005년에는 사기 혐의로 구속되기까지 하면서 쌓아놓은 명성과 부를 한꺼번에 잃었다.

또한 2004년에는 동업자의 실종 사건으로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지만 무혐의 처분됐고, 일가족 4모녀 살인혐의를 받아 경찰이 추적하던 당시에도 사기와 배임 등 7건의 혐의로 수배된 상태였다.

사건 개요를 살펴보면, 2008년 2월18일 김 씨와 김 씨의 세 딸이 한꺼번에 실종됐으며, 당일 김 씨의 아파트 폐쇄회로 TV화면에 한 남자가 대형 여행용 가방을 3차례 끌고 나가는 모습이 포착되었다.김 씨와 김 씨의 큰 딸(당시 20세)은 이 남자가 김 씨 아파트에서 대형 여행용 가방을 끌고 나간 뒤 통화한 사실이 확인됐고, 다음날 오전 5시40분께 전남 화순의 한 야산에서 큰 딸의 휴대전화 신호가 포착됐다.이후 전원이 꺼져 있던 큰 딸의 휴대전화는 같은 달 그러니까 2월20일 오전 10시44분께 충남 공주 시 정안 면에서 또 다시 신호가 포착됐다.또한 경찰은 실종 다음날인 2월19일 오후 2시50분 경, 김 씨 소유의 승용차가 호남고속도로 상행선에서 자동판독기에 검색된 점을 확인, 실종된 김 씨와 세 딸이 용의자 이 씨와 함께 있을 것으로 보고 이 씨의 행적을 추적 했었다.경찰은 김 씨 큰딸의 휴대전화 신호가 전남 화순, 충남 공주 등에서 포착된 점, 김 씨 소유의 차량이 호남선 상행선에서 검색된 점 등으로 미뤄 이호성씨가 김 씨의 큰 딸과 함께 자신의 선친 묘가 있는 화순에 있는 선산을 찾은 뒤 공주 등을 거쳐 서울로 상경한 것으로 추정했다.한편 경찰은 수사를 통해 김 씨가 실종되기 직전 1억7000여만 원이 든 은행계좌가 해지된 점에 주목, 계좌 압수수색을 벌여 돈의 흐름을 파악했다.

그렇다면 이호성은 왜 자살을 한 것일까?

이호성은 프로야구 선수로서 성공을 했었고, 프로야구 선수로서 얻은 명성을 이용, 예식장 업에도 크게 성공해서 프로야구인들 사이에서는 프로야구선수로서 가장 성공을 한 사업가로 알려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한 것이 잘못 이었다. 사업이 부도가 나서 수 십 억원 의 빚을 떠 안 았 지만 씀씀이는 그대로 헤펐다.

이호성은 유명야구인 출신, 건장한 체격, 화려한 화술로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을 활용, 주변에 많은 여자를 두고 있었다.

한강에서 자살하기 직전에도 일산에 있는 동거중인 여성과 통화를 한 것이 확인 되었다.

특히 재력이 있는 여성이 이호성의 타깃이었다.

남편과 이혼을 한 뒤 식당을 경영하며 세 자매를 키우고 있던 김연숙 씨도 그 가운데 한명이었다. 이호성은 김연숙 씨에게 1억7천만 원을 빌렸으나 값을 능력이 없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돈을 갚지 않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김연숙 씨와 이호성은 금전문제로 다퉜을 것이고, 그 와중에 김연숙 씨가 이호성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했고, 이에 격분 이호성이 김연숙 씨를 살해 한 후 발각이 될까 바 김연숙 씨의 세 자매를 차례로 살해 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호성 사건은 프로야구 뿐 만 아니라 한국 스포츠의 취약점이 축약된 사건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의 학원 스포츠는 ‘학생선수’가 아니라 ‘선수학생’ 즉 신분만 학생일 뿐 오로지 운동만을 하는 사실상 프로스포츠선수(운동기계)를 양산해 내는 풍토다,

각 종목 대부분, 처음에는 수만명이 함께 운동을 시작해서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쳐 프로 선수가 되기까지 수만명이 수천명이 되고 또한 수백명으로 줄어드는 과정에서 탈락되는 선수는 오갈 곳이 없게 된다.

이들 가운데 범죄의 유혹을 받는 일부가 끔찍한 범행을 저지를 개연성이 높은 것이다.

이호성도 그 가운데 한명이라고 할 수 있다.

호남 제일의 고동학교인 광주일고, 야구부가 있는 대학교 가운데 순수 아마추어인 서울 대를 빼고 가장 좋은 대학교인 연세 대 출신에, 프로야구에서 10번이나 우승을 차지한 최고 야구명문 팀 해태(기아) 타이거즈 4번 타자 출신이라는 프로야구에서 가장 좋은 스펙을 갖고 있는 선수가 방망이와 엄청난 괴력으로 아무 힘이 없는 부녀자 일가족 4명을 차례로 죽인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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