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참나원!
헤어짐은 다시 만남의 기약이라 하셨나요?
만남은 헤어짐의 예약이라고도 말씀하셨고요.
만해의 시를 다시
읽었어요.
불가의 선문답에는 툭 던지는 물음표가 많지요.
용서가 뭐냐는 제자의 말에
용서할 수 없는 것조차 용서하라는 예수의 선문답이 나와요.
열두 사도는 죽음으로 스승의 말씀을 증명하며
용서의 참을 보여주지요.
가롯 유다는 빼고요.
저는 지금 큰 딜레마예요.
부처님도 알고 예수님도 알거든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의 도덕적 가치 갈등이 아니라구요.
예수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또 한 번 예수께 못박는 것은 아닐까요?
이천 년 전 가롯 유다가 아닐까요?
참 부처님, 참 예수님은 어디 계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