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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78 ] 바바

김홍성
  • 입력 2020.09.06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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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운무를 쓸어낸 하늘에는 별들이 많았다. 별들은 눈을 감아도 보였다. 눈을 감아도 보이는 별은 망막에 남은 별들의 잔상이었다. 잔상이 사라져서 다시 눈을 떴을 때는 공제선이 달라져 있었다. 누군가가 별들을 등에 업고 우뚝 서 있었다.

ⓒ김홍성

 

밥상을 대충 치운 후에 체링과 세따가 제일 먼저 온천욕을 하러 나갔다. 몽사와 나도 잠시 후 뒤따라갔다. 우리가 큰 바위 위에 겉옷을 벗어 두고 온천탕으로 내려갔을 때 체링과 세따의 코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손바느질로 만든 면 소재의 펑퍼짐한 속바지와 꽉 끼는 속적삼 차림의 두 여성은 우리가 들어가 앉을 자리를 만들어 주느라고 몸을 움직였다. 우리는 그녀들의 맞은편에 들어앉았다.

 

몽사는 기분 좋은 신음 소리를 냈지만 나는 무연한 척하고 오래 버티기가 뭣했다.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겠고, 발을 쭉 펼 수도 없었다. 가슴이 울렁거리고, 숨쉬기가 거북했다. 몽사는 황홀하다고 했지만 나는 남녀가 함께 거기에 들어앉아 있는 것이 불편하고 파렴치 한 짓처럼 여겨졌다.

 

그는 내가 불편해 한다는 것을 알고서 말했다. 인도나 네팔에서는 완전한 나체가 아니라면 남녀노소가 함께 목욕하는 게 자연스럽고 전혀 문제가 안 된다고. 이것도 일종의 문화이니 적응하라고.

 

그 말에 수긍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의 나라에서 자란 인간들 아닌가? 동방예의지국의 사내라서 고리타분한 생각을 그치지 못하고 있을 때 바위 뒤에서 아네이가 나타났다. 이어서 취생과 스님도 바위 위에 나타나는 바람에 나는 더 이상 물속에 앉아서 버틸 수가 없었다. 겉옷을 벗어 둔 바위 위로 올라가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닦으면서 차라리 한밤중이나 새벽에 오겠다고 마음먹었다.

 

일찌감치 잠자리에 누웠다가 눈을 뜬 시각은 새벽 3시였다. 조심조심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계곡의 물소리가 크게 들렸다. 별빛이 쌓이는 큰 바위 위에서 겉옷을 벗었다. 옷을 벗으니 한기가 느껴졌다. 바람이 불고 있었다. 돌멩이로 옷을 눌러 놓고 온천탕으로 내려갔다. 물속에 몸을 담갔다.

 

황홀하리만큼 매끄럽고 따끈한 물이었다. 유황 냄새도 향기롭게 느껴졌다. 탕 아래 쪽 둑을 조금 터서 물을 내보내며 뜨거운 물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더듬어 보았다. 뜨거운 물은 자로 포개져 있는 두 개의 큰 바위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온천탕 속에 누워 바위가 만든 공제선 위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운무를 쓸어낸 하늘에는 별들이 많았다. 별들은 눈을 감아도 보였다. 눈을 감아도 보이는 별은 망막에 남은 별들의 잔상이었다. 잔상이 사라져서 다시 눈을 떴을 때는 공제선이 달라져 있었다. 누군가가 별들을 등에 업고 우뚝 서 있었다.

 

내가 내 눈을 의심하고 있을 때 그가 움직였다. 그는 바위에서 내려와 온천탕으로 들어왔다. 깡마른 사람이 머리 타래를 말아서 소똥처럼 얹고 있으니 힌두 수행자가 분명했다. 낮에 몽사가 찾아갔던 굴에서 사는 사두바바가 바로 그일지도 몰랐다. ‘

 

나마스떼하고 힌두 인사를 해보았다. 그는 얼굴을 들어 씽긋 웃으며 나마스떼라고 답했다. 잘 생긴 얼굴이었다. 이마나 콧날의 선이 살아있었다. 뭐라고 말을 붙여 보고 싶었지만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멋있는 말을 생각해 보았으나 시시한 말만 떠올랐다. 결국 통성명을 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한국인 여행자 김이다.”

“......”

그는 내 얼굴을 흘낏 바라보았을 뿐 대답이 없었다. 인도 사람이 간단한 영어를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다시 물었다.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사두 바바. 이곳 사람들은 그렇게 부른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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