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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76] 한지붕

김홍성
  • 입력 2020.09.04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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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 집을 빌렸다. 부탄과 한국 두 나라 사람들이 한 지붕 밑에 사는 식구가 되었다. 거실을 가운데 두고 부탄 여성들은 왼쪽 방, 한국 여성들은 오른쪽 방, 몽사와 나는 거실을 쓰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우리 넷은 욕숨 터미널에 나가 갱톡에서 오는 버스를 탔다. 많은 사람들이 내렸기 때문에 자리가 넉넉할 줄 알았는데 사진을 찍느라고 맨 나중에 올라온 몽사가 앉을 자리는 운전석의 엔진 덮개 위 밖에 없었다.

그는 거기 앉아서도 카메라를 꺼내들고 사진을 찍었다. 그의 카메라는 창밖 풍경을 찍는가 하면 승객들도 찍었다. 그는 우리를 찍는 척하면서 우리 앞좌석에 앉아 있는 특이한 패션의 세 여성도 찍었는데 그녀들은 우리가 조레탕 온천 마을의 정류장에서 내릴 때 같이 내렸다. 내리면서 보니 그녀들도 압력솥이며 석유 버너를 꾸려 들고 있었다. 그녀들도 우리처럼 온천에 가는 것이었다.

 

버스 정류장 앞 가게 주인은 매부리코에 눈알이 노란 말라깽이 영감이었다. 가게에는 소금, 설탕, 감자, 양파, 마늘, 싸구려 담배, 성냥, 양초, 석유, 시킴 위스키 등이 구비되어 있었다. 우리는 필요한 물품을 사서 배낭에 나누어 넣고 숙소를 안내하겠다는 영감을 따라 계곡으로 내려갔다. 세 여성도 우리와 같이 내려갔다. 출렁다리가 나왔다. 출렁다리 밑에는 세찬 급류가 흘렀다.

 

출렁다리를 건넌 후 두 나라 사람들은 인사를 나누었다. 세 여성의 국적은 부탄이었다. 30 세 전후의 그 젊은 여성들은 우리가 한국인이며 그들처럼 온천욕을 하러 온 것을 신기하게 여기며 은근히 기뻐했다.

 

세 여성 중 삭발한 여성은 승려라고 했다. 이름은 체링. 아담한 몸매지만 강인해 보였다. 절에서 태어나고 자랐다고 했다. 씨감자처럼 작고 동그란 얼굴에 밤톨 같은 코, 그리고 깨끗한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체링의 올케인 세따는 다른 여자들과 달리 부탄 전통 의상을 입고 있어서 친정에 가는 새댁처럼 보였다. 셋 중 나이가 가장 어렸다. 그녀가 입은 바쿠는 색상이 화려한 비단이었고 양어깨에 금빛 장식이 달려 있었다. 날씬한 몸매의 상당한 미인이지만 웃는 모습은 거의 백치에 가까웠다. 세따의 남편은 부탄 어느 절의 승려라고 했다.

다른 한 여성의 이름은 아네이. 작은 키에 똥똥하게 살이 올랐으며 음성이 고왔다. 아네이 역시 천진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안쓰러운 구석이 있었다. 체링이나 세따와는 달리 그녀는 영어가 어느 정도 가능했다. 최소한 나만큼은 했다. 나는 그녀들과 일행이 된 것이 즐거웠다. 무상 스님과 취생, 그리고 몽사도 이 만남이 싫지 않은 듯 했다.

 

영감은 개울을 따라 내려갔다. 희미한 운무 속에서 노란 달맞이꽃들이 반겼다. 산스크리스트 문자로 옴마니밧메훔이라는 여섯 글자를 음각한 큰 바위들이 나왔다. 글자마다 빨간색, 초록색, 노란색, 파란색, 흰색, 주황색 페인트를 칠해 놓았다.

 

온천은 그 큰 바위들 밑에서 솟았다. 바위와 바위 사이에는 계곡의 물이 침범하여 온천물에 섞이는 걸 방지하기 위해 모래주머니로 둑을 쌓아 탕을 만들어 놓았는데 한 귀퉁이가 허물어져 있었다. 수면에서 더운 김이 모락모락 일어나고 유황 냄새가 강하게 풍겼다. 바위 아래로 내려가 온천탕 속에 손을 넣어 바닥 흙을 한줌 움켜 보았다. 감촉이 좋은 새카만 모래였다. 당장 들어가 몸을 담그고 싶은 걸 꾹 참았다.

 

탕에서 멀지 않은 모래 언덕 위에는 서너 채의 엉성한 움막들이 있었다. 영감은 그 너절한 움막 하나 빌리는데 하루에 10루피 씩 내라고 했다. 지저분한 건 둘째 치고 사방 벽이 다 터져 있어서 벌써 앵앵거리기 시작하는 모기며 파리를 막을 방도가 없었다.

 

영감에게 좀 더 나은 숙소는 없냐고 하니 집이 하나 비어 있는데 하루 100 루피 이하로는 절대 안 된다고 미리 쐐기를 박았다. 영감을 따라 움막 사이로 난 질척한 길을 조금 걸어가 보니, 언덕 위에 번듯한 양옥집이 한 채 있었다. 짓다가 만 듯 마무리를 하지 않아 볼썽사나운 집이었다. 살림이라고는 전혀 없는 부엌과 거실 그리고 방이 두 개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각 방에는 엉성한 그물 침대가 두어 개씩 있었다. 염소 우리로도 썼는지 여기저기 염소 똥이 굴러다니긴 하지만 현관문이며 창문이 모두 제대로 붙어 있는 집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 식수로 쓰는 작은 우물도 있었다. 그러나 변소가 없었다. 변소를 묻는 나에게 영감은 정색을 하고 멀리 나가서 해결하면 된다고 했다.

 

우리는 그 집을 빌렸다. 부탄과 한국 두 나라 사람들이 한 지붕 밑에 사는 식구가 되었다. 거실을 가운데 두고 부탄 여성들은 왼쪽 방, 한국 여성들은 오른쪽 방, 몽사와 나는 거실을 쓰기로 했다. 우선 사흘 치 임대료 300 루피를 받아 쥔 영감은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갔고, 몽사는 카메라 가방을 들쳐 메고 영감을 따라 나갔다. 영감에게 동굴과 동굴 수행자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은 게 분명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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