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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이야기, 왜 브라이언 오셔 코치와 이별했을까

기영노 전문 기자
  • 입력 2020.09.04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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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와 브라이언 오셔 코치는 왜 석연찮은 이별을 했을까

브라이언 오셔 코치의 모습(사진=브라이언 오셔 코치 페이스북 갈무리)

 

갑신정변을 주도했었던 김옥균과 가까웠던 신기선이라는 양반이 서양인들이 테니스 하는 것을 보고“아니 아랫것들을 시키지 왜 직접 뛰어 다니시오?”라고 말한 것은 1890년대 초 였다.

1895년 체조가 학교교과 과목에 처음 포함된 이후 축구, 야구, 정구, 마라톤 등이 보급되기 시작하기 시작한 이후 100여년이 지났다.

그동안 한국 스포츠는 많은 국위선양을 많이 했다.

오죽하면 정치가 스포츠의 10분의 1만 해 줘도 벌서 선진국이 되었을 것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실제로 과거의 차범근에서부터 현재의 박지성, 박찬호, 추신수, 김연경, 손흥민, 류현진에 이르기까지 선수 한명이 국가를 위해 기여하는 게 대사 10명보다 낫다는 말도 있다.

그러면 우리나라에 스포츠가 도입된 이후 100여 년동안 가장 큰 업적을 올린 선수(팀)는 누구일까?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비록 일장기를 달았지만 마라톤 금메달을 딴 손기정과 그로부터 56년 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황영조와 애를렌타 올림픽 은메달, 보스턴 마라톤 우승, 아시안게임 마라톤 2연패를 한 이봉주, 1966년 사상 처음 프로복싱 챔피언에 오른 전 WBA 주니어 미들급 챔피언 고 김기수,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사상 처음 올림픽 금메달을 딴 레슬링의 양정모, 1980년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10년 가까이 활약하면서 308경기에 출전해서 98골을 터트리며 차 붐을 일으켰던 차범근,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기적의 4강을 달성한 거스 히딩크 감독의 축구대표 팀, 2007년 멜버른 세계수영선수권대회와 2008베이징 올림픽 남자 수영 자유형 400m 금메달리스트 박태환, 세계축구 최정상인 프리미어리그에서 5년 이상 활약하면서 한국 축구의 위상을 드높인 박지성, 메이저리그에서 아시아 선수 최다승을 달성한 박찬호 그리고 최근 여자배구 김연경, 프리미어리그 손흥민과 메이저리그 류현진......등등

그러나 냉정하게 평가하면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여자 피겨싱글에서 228.56점이라는 엄청난 점수로 금메달을 딴 김연아 선수가 그 어느 업적보다 나면 낫지 결코 뒤지지 않는다.

김연아가 세계정상에 오른 피겨스케이팅은 한국의 대표적인 취약종목이었다.

한국 피겨는 김연아 이전에는 올림픽에서 메달은 커녕 올림픽 출전 권 조차 제대로 따내지 못했었다.

그러나 김연아는 천부적인 자질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세계정상에 올랐다.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 때 아시아선수로 첫 금메달을 딴 일본의 아라카와 시즈카가 있지만 아라카와 시즈카는 그야말로 운이 좋아서 금메달을 딴 경우다. 마침 올림픽이 열릴 당시 아라카와 시즈카의 컨디션이 좋았고, 강력한 금메달 후보들이었었던 미국의 샤샤코헨, 러시아의 이리나 슬루츠카야 등 라이벌 선수들이 큰 실수를 해 줬다.

여자 피겨는 그밖에도 올림픽 초창기 올림픽 3연패를 이룬 노르웨이의 소냐 헤니(1928 생모리츠 동계올림픽, 1932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 1936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동계올림픽)와 역시 올림픽 2연패에 성공했던 미모와 실력을 겸비한 동독의 카타리나 비트(1984 사라예보 동계올림픽, 1988 캘거리동계올림픽)가 있었지만 세계 피겨 전문가들 가운데는 김연아가 역대 최고의 피겨 선수로 인정 하는 사람들이 많다.

김연아가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 획득한 쇼트프로그램 78.50과 프리스케이팅 150.06 합계 228.56은 당시로는 사실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엄청난 점수였다. 김연아는 은메달을 딴 라이벌 아사다 마오(일본. 205점.50점)를 무려 23.06점차로 제쳤다.한국피겨는 1968년 그르노블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에 이광영(남자)과 김혜경, 이현주(이상 여자)가 처음으로 출전한 지 42년 만에 꿈의 올림픽 금메달을 그것도 완벽한 연기로 따낸 것이다.

김연아 선수(사진=김연아 선수 페이스북 갈무리)

 

AP통신은 김연아의 금메달 연기를 "피겨스케이팅 역사에서 가장 위대연기 중 하나"라고 극찬했고, 스포츠 니폰 등 아사다 마오를 배출한 일본의 대부분의 언론도 "완벽하고 압도적인 연기였다"고 김연아의 승리를 100% 인정했다.

그 후 김연아는 미국과 세계주요 매스컴의 연말 10대 뉴스에 거의 빠짐없이 뽑혔다.

미국의 스포츠 전문 격주간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트 지는 2010년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 10걸, NBC 방송과 US 투데이선정 ‘올해의 여자선수’ 그리고 스포츠 아카데미도 올해 최고의 여자선수로 김연아를 선정했다.

김연아가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역사적인 성적인 올림픽 금메달을 딴 지 6개월 가량이 지난 2010년 8월말, 김연아가 4년 여 동안 자신을 지도했던 브라이언 오셔 코치와 결별 했다는 소식이 국내외 스포츠 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피겨스케이팅은 다른 종목과는 달리 선수가 감독을 고용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코치 비용뿐 만 아니라 안무, 빙판대여, 의상, 고가의 스케이트, 잦은 국제대회 출전비 등 비용이 엄청나게 많이 들기 때문에 비교적 여유가 있는 선수가 자신에게 맞는 유능한 코치를 기용해서 훈련을 하고 경기에 출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피겨 스케이팅 계에서는 선수가 코치를 해고하는 것은 비일비재한 일이고, 아무런 하자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김연아와 브라이언 오셔 코치는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때 까지 별다른 잡음도 들리지 않았고, 오셔 코치는 크고 작은 대회에서 김연아가 연기를 할 때 마다 링크 옆에서 마치 자신이 연기를 하듯 안타까워하거나 기뻐했고, 높은 점수가 발표 될 때 마다 김연아와 오셔 코치는 가볍게 포옹을 하며 함께 기뻐했다. 그리고 한국의 전자제품 광고에도 함께 출연했고, 김연아의 아이스쇼가 있을 때는 오셔가 총 연출을 맡고 직접 출연도 하는 등 좋은 모습만 봐 왔던 국내외 팬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을 안겨준 소식이었다.

브라이언 오셔는 그 후 남자피겨 싱글 국가대표 차준환 선수의 코치로 한국 선수와 인연을 이어오고 있어서 오셔와 김연아의 석연치 않은 결별이 아직도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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