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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75 ] 조레탕 온천의 동굴과 수행자

김홍성
  • 입력 2020.09.03 21:53
  • 수정 2020.09.04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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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의 탁자에서 세 사람이 뜨거운 블랙 티를 한 잔 씩 비울 때까지 몽사는 도착하지 않았다. 취생은 짜파티를 만들겠다며 부엌에 들어갔다. 스님도 취생을 따라 부엌으로 갔다. 잠시 후 부엌에서 석유 버너 타는 냄새와 팬에서 구워지는 짜파티 냄새가 마당으로 흘러나와 시장기를 자극했다. 내가 부엌 쪽에 대고 말했다.

 

몽사 선생이 혹시 터미널이나 제 거처로 간 것은 아닐까요?”

글쎄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아주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짜파티가 준비된 후에도 몽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끼리 먹기 시작했다.

 

금방 구운 거라서 맛있네요.”

더 구울까요?”

아니요, 이제 충분합니다. 조레탕 온천 얘기나 좀 해 주세요. 무척 궁금하네요.”

맞아요. 저도 궁금합니다.”

스님과 내가 보채자 취생이 말했다.

 

일본 북해도 온천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개울가 바위 사이에 모래주머니로 둑을 만든 탕이 있고요, 원두막 비슷한 판잣집들이 있어요. 짓다가 만 허름한 집도 한 채 있었지 싶고요. 찾아오는 사람도 현지인들 말고는 별로 없었어요. 남녀노소가 함께 속옷을 입은 채 들어가죠. 재작년에 들렀을 때 막차를 놓치는 바람에 개울가에서 노숙하고 첫차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때는 거기에 수행자들이 은거하는 동굴이 있다는 걸 몰랐어요. 몽사는 다르질링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동굴 수행자를 만나보고 싶어 합니다.”

수행자가 있을까요?”

가 보면 알겠죠.”

수행자가 있든 없든 동굴은 확실히 거기 있겠네요? 만일 비어 있고 살만 하다 싶으면 제가 며칠 지내볼 랍니다.”

아이쿠 스님 참으세요.”

흐흐흐 ……. 히말라야에서 동굴 수행을 한다는 건 우리 해동 승려들의 꿈이랍니다.”

하하하. 재미있네요. 꼭 해 보세요. 제가 탁발해서 수발할게요.”

"동굴 스님을 수발하는 해동 보살이라. 말 되네요."

 

셋이 한참 웃는 중에 몽사가 땀을 흘리며 나타났다. 몽사는 내 거처에 다녀오는 길이라면서 욕실에 들어가 세수를 하고 나왔다. 그 사이에 취생은 몽사가 먹을 짜파티를 새로 구워왔다. 스님은 밀크 티를 한 컵 가득 몽사 앞에 놓았다. 내가 몽사에게 말했다.

 

우리는 지금 조레탕 온천 얘기를 듣고 있었어요. 언제 그 쪽으로 가실 건가요?”

몽사는 뭔가 결심이 선 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취생을 바라보며 말했다.

 

취생이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온천은 허접합니다. 조금이라도 기대하고 가면 틀림없이 실망할 겁니다. 저는 온천이 아니라 동굴 수행자와의 인터뷰가 목적입니다. 최근 그 동굴에 드나드는 수행자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그 수행자가 떠나기 전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급합니다.”

 

몽사의 말이 끝나자 취생이 물었다.

언제 출발하지요?”

조만간 ……. 아니 내일이라도 떠나는 게 어떨까 생각하는 중인데 ……. 말 나온 김에 지금이라도 의논합시다.”

저 또한 내일이라도 떠날 수 있어요.”

그래요?”

.”

 

매일 오전 8시와 11. 그렇게 두 번 버스가 출발하는데 ……. 우린 내일 간다 치고, 두 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몽사는 스님과 나를 한 번 씩 바라보았다. 그 눈길에는 착잡한 근심이 서려 있었다. 내가 말했다.

 

혹시 취재에 방해가 될지도 모르니 우리는 며칠 있다가 출발하는 게 좋겠네요. 우리는 체류 기한이 아직 1주일 이상 남았잖아요. 하루 이틀 더 있다가 가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말을 마칠 때 스님 얼굴을 바라보았다. 스님도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글쎄요. 저는 자유로우니까 대중의 의견을 따르겠습니다.”

스님, 내일 다 같이 가기로 해요. 스님과 좀 더 같이 있고 싶어요.”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 취생이 한마디 더 했는데 그것은 스님이

아니라 몽사에게 하는 말로 들렸다.
 

지금 저는 마음이 통하는 말동무가 절실합니다. 간신히 찾았는데 바로 이별해야 한다면 너무 가혹한 것 아닐까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취생이 하고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취생을 응원하면서 몽사를 바라보았다.

 

몽사의 얼굴에 체념이 스쳐갔다. 어차피 헤어지게 될 것이니 며칠 더 함께 지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라는 판단이 몽사의 마음을 누그러뜨렸나 보았다. 편안해진 얼굴로 몽사가 극중에 대사를 읊듯 말했다.

 

취생은 다시 소녀로 돌아간 것 같아요. 스님, 이 소녀를 위해 저희와 같이 떠나 주시죠.”

스님이 짐짓 점잖게 대답했다.

아예 상좌 삼을까 봅니다.”

우리는 다 같이 웃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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