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의 탁자에서 세 사람이 뜨거운 블랙 티를 한 잔 씩 비울 때까지 몽사는 도착하지 않았다. 취생은 짜파티를 만들겠다며 부엌에 들어갔다. 스님도 취생을 따라 부엌으로 갔다. 잠시 후 부엌에서 석유 버너 타는 냄새와 팬에서 구워지는 짜파티 냄새가 마당으로 흘러나와 시장기를 자극했다. 내가 부엌 쪽에 대고 말했다.
“몽사 선생이 혹시 터미널이나 제 거처로 간 것은 아닐까요?”
“글쎄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아주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짜파티가 준비된 후에도 몽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끼리 먹기 시작했다.
“금방 구운 거라서 맛있네요.”
“더 구울까요?”
“아니요, 이제 충분합니다. 조레탕 온천 얘기나 좀 해 주세요. 무척 궁금하네요.”
“맞아요. 저도 궁금합니다.”
스님과 내가 보채자 취생이 말했다.
“일본 북해도 온천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개울가 바위 사이에 모래주머니로 둑을 만든 탕이 있고요, 원두막 비슷한 판잣집들이 있어요. 짓다가 만 허름한 집도 한 채 있었지 싶고요. 찾아오는 사람도 현지인들 말고는 별로 없었어요. 남녀노소가 함께 속옷을 입은 채 들어가죠. 재작년에 들렀을 때 막차를 놓치는 바람에 개울가에서 노숙하고 첫차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때는 거기에 수행자들이 은거하는 동굴이 있다는 걸 몰랐어요. 몽사는 다르질링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동굴 수행자를 만나보고 싶어 합니다.”
“수행자가 있을까요?”
“가 보면 알겠죠.”
“수행자가 있든 없든 동굴은 확실히 거기 있겠네요? 만일 비어 있고 살만 하다 싶으면 제가 며칠 지내볼 랍니다.”
“아이쿠 스님 참으세요.”
“흐흐흐 ……. 히말라야에서 동굴 수행을 한다는 건 우리 해동 승려들의 꿈이랍니다.”
“하하하. 재미있네요. 꼭 해 보세요. 제가 탁발해서 수발할게요.”
"동굴 스님을 수발하는 해동 보살이라. 말 되네요."
셋이 한참 웃는 중에 몽사가 땀을 흘리며 나타났다. 몽사는 내 거처에 다녀오는 길이라면서 욕실에 들어가 세수를 하고 나왔다. 그 사이에 취생은 몽사가 먹을 짜파티를 새로 구워왔다. 스님은 밀크 티를 한 컵 가득 몽사 앞에 놓았다. 내가 몽사에게 말했다.
“우리는 지금 조레탕 온천 얘기를 듣고 있었어요. 언제 그 쪽으로 가실 건가요?”
몽사는 뭔가 결심이 선 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취생을 바라보며 말했다.
“취생이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온천은 허접합니다. 조금이라도 기대하고 가면 틀림없이 실망할 겁니다. 저는 온천이 아니라 동굴 수행자와의 인터뷰가 목적입니다. 최근 그 동굴에 드나드는 수행자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그 수행자가 떠나기 전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급합니다.”
몽사의 말이 끝나자 취생이 물었다.
“언제 출발하지요?”
“조만간 ……. 아니 내일이라도 떠나는 게 어떨까 생각하는 중인데 ……. 말 나온 김에 지금이라도 의논합시다.”
“저 또한 내일이라도 떠날 수 있어요.”
“그래요?”
“네.”
“매일 오전 8시와 11시. 그렇게 두 번 버스가 출발하는데 ……. 우린 내일 간다 치고, 두 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몽사는 스님과 나를 한 번 씩 바라보았다. 그 눈길에는 착잡한 근심이 서려 있었다. 내가 말했다.
“혹시 취재에 방해가 될지도 모르니 우리는 며칠 있다가 출발하는 게 좋겠네요. 우리는 체류 기한이 아직 1주일 이상 남았잖아요. 하루 이틀 더 있다가 가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말을 마칠 때 스님 얼굴을 바라보았다. 스님도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글쎄요. 저는 자유로우니까 대중의 의견을 따르겠습니다.”
“스님, 내일 다 같이 가기로 해요. 스님과 좀 더 같이 있고 싶어요.”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 취생이 한마디 더 했는데 그것은 스님이
아니라 몽사에게 하는 말로 들렸다.
“지금 저는 마음이 통하는 말동무가 절실합니다. 간신히 찾았는데 바로 이별해야 한다면 너무 가혹한 것 아닐까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취생이 하고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취생을 응원하면서 몽사를 바라보았다.
몽사의 얼굴에 체념이 스쳐갔다. 어차피 헤어지게 될 것이니 며칠 더 함께 지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라는 판단이 몽사의 마음을 누그러뜨렸나 보았다. 편안해진 얼굴로 몽사가 극중에 대사를 읊듯 말했다.
“취생은 다시 소녀로 돌아간 것 같아요. 스님, 이 소녀를 위해 저희와 같이 떠나 주시죠.”
스님이 짐짓 점잖게 대답했다.
“아예 상좌 삼을까 봅니다.”
우리는 다 같이 웃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