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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베이지의 노래 [ 71 ] 푸른 대나무

김홍성
  • 입력 2020.08.31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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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불과 연기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동안 마을의 부인들은 우리의 뚱바 통에 뜨거운 물을 다시 부어 주곤 했다. 뜨거운 물을 새로 부을 때마다 뚱바 통에서는 향긋한 대나무 냄새가 났다. 뚱바 통은 아직 푸른 대나무를 자른 것이었다.

ⓒmongsa

 

관이 바위 위에서 화목을 쌓은 단 위로 옮겨지자 승려들의 염불 소리가 커졌다. 나팔 소리, 북 소리도 커졌다. 마을 남자 네 명이 횃불을 하나 씩 나눠들고 화목 열두 단 네 귀퉁이에 각각 불을 붙였다.

붉은 불꽃과 누런 연기가 솟아오르자 마을 남자들은 검불을 모아 단 사이로 쑤셔 넣었다. 긴 대나무에 매단 그릇으로 양동이에 든 버터를 떠서 나무에 붓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불꽃은 활활 타올랐다.

 

몽사는 침착하게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어쩌면 그가 이번 여행에서 건진 가장 값진 사진이 되겠지만 서두는 기색이 없었다. 그는 눈앞의 영상에 깊이 몰입되어 다른 생각은 못 하는 것 같았다.

 

스님과 취생은 독경하는 승려들 뒤에 다소곳이 앉아서 타오르는 불꽃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멀찍이 떨어져 앉은 상여꾼들과 함께 뚱바를 빨고 있었다.

양은 주전자를 들고 이리저리 다니며 뚱바 통에 뜨거운 물을 부어주는 여인들은 어쩌면 그렇게 옛날 우리나라 여인들 같던지, 나는 그녀들을 통해서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친척들의 얼굴을 차례차례 떠올려 보기도 했다.

 

화장장으로 올라오는 사람들보다 내려가는 사람들이 많아진 후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스님과 취생이 앉아 있는 곳으로 갔다. 출상 전에 마을에서 이미 손을 흔들어 서로를 일별했으나 상여가 절에 멈추었을 때는 그 두 사람이 법당에 들어갔기 때문에 말을 붙여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들에게 가까이 가기는 그것이 처음이었는데 스님과 취생은 타오르는 불길과 솟아나는 연기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옆에 가서 슬그머니 앉은 것도 몰랐던 두 사람은 무슨 생각에 빠져 있었던 것일까? 마을의 부인들이 뚱바와 뜨거운 물주전자를 들고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두 사람은 더 오랫동안 그렇게 앉아서 불길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나란히 앉아서 뚱바를 빨게 된 후에도 우리 셋은 별 말이 없었다. 우리는 화부들이 긴 장대로 연기 속을 쑤석거릴 때마다 새로이 일어나는 불길과 불티를 바라보고 있었다. 화부들의 마지막 작업은 재 말고는 아무 것도 남김없이 태우려는 것이었지만 나는 세상에 대한 망자의 미련을 태우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불과 연기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동안 마을의 부인들은 우리의 뚱바 통에 뜨거운 물을 다시 부어 주곤 했다. 뜨거운 물을 새로 부을 때마다 뚱바 통에서는 향긋한 대나무 냄새가 났다. 뚱바 통은 아직 푸른 대나무를 자른 것이었다. <계속>

 

ⓒmong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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