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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추신수를 만든 것은 무엇일까

기영노 전문 기자
  • 입력 2020.08.27 11:16
  • 수정 2021.06.26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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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수, 과연 조성옥 감독의 혼(魂)이 도와주는 걸까

영상=MLB 유튜브 채널(바로가기)

스포츠 과학자들은 스포츠에서 가장 어려운 기술이 안타를 때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둥근 배트로 둥근 공을 때려 8명의 수비수가 버티고 있는 사이를 뚫어야 안타가 나오기 때문이다.

하물며 홈런은 실력과 운이 한꺼번에 따라 줘야하는 그야말론 천운(天運)이 있어야 때릴 수 있다.

그런데 메이저리그에서 정상급 타자로 활약하고 있는 추신수는 정말 꼭 필요한 상항에 극적인 홈런 4방을 날렸다.

추신수는 미국에서 마이너리그와 메이저리그 생활을 모두 경험했다.

추신수는 2006년, 시애틀 매리너스 팀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인스 팀으로 이적했는데, 당시 시애틀 매리어스 팀 우익수는 일본의 스즈키 이치로 선수였다. 이치로는 뛰어난 타격센스와 빠른 발로 10년 연속 200안타를 때려내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전설을 써 가는 안타제조기였다. 따라서 새내기 추신수가 밀릴 수밖에 없었다. 당시 추신수는 클리블랜드에서 마이너리그가 아닌 메이저리그로 바로 오라는 이적 제안을 받고 기쁜 마음으로 이적했다.

클리블랜드로 이적 후 추신수 선수는 첫 경기에서 8번 타자로 선발 라인업에 뽑혔다. 그런데 정말 우연히도(메이저리그에는 클리블랜드 팀 외에도 29개 팀이 있기 때문에 확률 상 29분의 1)전 소속팀 시애틀을 첫 번째 경기에서 만났고, 선발투수가 시애틀의 에이스 펠릭스 에르난데스였다. 펠릭스 에르난데스는 2010년 아메리칸리그 사이영 상을 받은 바 있는 메이저리그 정상급 투수다. 추신수 선수는 자신의을 버린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경기, 3~4의 타석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각오로 경기에 임했다. 그 때는 시애틀 매리너스 팀과의 첫 경기에서 안타만 때릴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다는 심정으로 타석에 들어섰다.

그동안 자신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던 전 소속팀 시애틀에 진짜 실력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추신수 선수는 첫 타석과 두 번째 타석 모두 포볼로 나갔다. 그리고 세 번째 타석에서 쓰리 볼 이후 감독의 스윙 사인에 공을 쳤는데 그게 솔로 홈런이었다. 그 경기는 결국 1:0으로 끝났다

추신수 선수는 이적 후 첫 경기에서 전 소속팀을 상대로 결정타를 날리며 화려하게 메이저리그 신고식을 치른 셈이다. 그 경기를 본 시애틀 팀의 마이너리그 동료 선수들은 추신수의 홈런을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가 근처에 있던 시애틀 팀의 단장에게 그 모습이 목격돼 곤혹을 치렀다고 한다.

추신수는 그 경기가 끝난 후 “홈런을 때린 후 부모나 아내 보다 조성옥 감독이 가장 먼저 생각이 났다”고 말했다.

2009년 7월4일 클린블랜드 인디언스 프로그래시브필드 구장에서 경기를 앞두고 막 훈련을 끝낸 추신수는 부인 하은미 씨와 통화를 하다가 다른 전화가 오자 서둘러 통화를 마쳤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평생 아버지처럼 따르던 조성옥 감독의 아들 조찬희였다.

조찬희는 그저 흐느끼기만 했다. 조 감독이 간경화로 조금 전 사망했다는 청천병력(靑天霹靂)같은 소식이었다.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추신수는 곧 있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의 경기를 포기하고 스승의 주검이 있는 부산으로 날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의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자신이 죽어가면서도 제자가 메이저리그에 잘 적응하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던 말을 상기시키며 슬픔을 참고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의 경기에 임했다.

추신수는 매 타석에 들어설 때 마다 조성옥 감독을 떠 올렸다. 그러자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추신수는 그 날 엄청난 활약을 한 것이다. 그 전에도 없었고, 메이저리그 생활을 얼마나 더 할지는 몰라도 앞으로도 그 같은 기록은 세우지 못할 것 같다.

추신수는 연타석 홈런에 5타수4안타7타점(2홈런)을 기록하며 팀의 15대2승리를 이끌면서 5연패에서 벗어나게 했다.

추신수는 부산 고 시절 조성옥 감독과 함께 전국대회 2연패를 했고, 2000년 세계정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결국 메이저리그에 입성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조 감독은 생활이 어려운 선수들의 회비를 대신 내 주는 등, 매 사에 사랑으로 제자들을 대 해준 진정한 스승이었다.

조성옥 감독을 떠올리며 버텨온 추신수 선수(사진=텍사스 레인저스 페이스북 갈무리)

추신수는 또 한번 결정적일 때 홈런을 터트렸다.

추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선수생활을 오래 하려면 절박한 게 군대문제 해결이었다. 만약 정상적으로 군대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2년 동안 한국에 돌아와서 군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이는 소속팀과의 연봉 계약에도 불리한 조건으로 작용하는 것은 물론, 2년 동안의 공백이 메이저리그 선수 생활을 하는데 치명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러나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김재박 감독은 추신수가 검증되지 않았다며 외면했고(한국은 당시 동메달을 땄다), 2008 베이징올림픽의 김경문 감독도 추신수를 부르지 않았다. 아마 불렀다고 하더라도 메이저리그 시즌이었기 때문에 출전이 어려웠을 지도 모른다.

도하 아시안게임은 12월 경에 열려 메이저리그 비시즌이었지만, 베이징 올림픽은 8월에 열렸기 때문에 메이저리그 시즌에 열렸다.

추신수는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대표로 선발되었다. 만약 일본, 중국 그리고 대만 등을 모두 물리치면 금메달을 따 기초훈련만 받고 군 면제를 받게 된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는 프로선수들을 내 보낸 대만 팀이 사회인 야구팀을 선발해서 출전시킨 일본 팀 보다 더 까다로웠다.

따라서 예선 첫 경기에서 대만 팀을 잡고, 준결승전에서 비교적 약체인 중국과 경기를 치른 후 결승전에서 일본(또는 대만)과 경기를 치르는 것이 순리였다.

그러나 만약 첫 경기에서 대만에 패하면 준결승전에서 일본을 만날 가능성이 많아 일본전을 이긴다는 보장도 없거니와 설사 이기더라도 결승전에서 다시 대만을 만나게 되면 그야말로 첩첩산중(疊疊山中) 속을 헤맬지도 모른다.

2010년 11월13일, 광저우 아오티 구장 필드에서 벌어진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만과의 B조 예선 1차전에 추신수는 3번 타자 겸 우익수로 선발 출장, 첫 타석에서부터 매우 값진 홈런을 쳤다.한국 대표 팀의 선발로 나선 류현진이 1회 초 대만 타자들을 삼자범퇴로 깔끔하게 틀어막았고, 1회 말 1사 이후 정근우가 중전 안타로 출루하며 기회를 만들었다.1사 1루 상황에서 추신수는 아시안게임 첫 타석에 나섰다.

추신수는 원 볼 이후 대만 선발 투수 린이하오의 바깥쪽 높은 공을 받아쳐 좌측 담장을 넘기는 선제 투런 홈런을 쳤다.

추신수는 두 번째 타석에서도 투런홈런을 터트려 연 타석 투런홈런으로 한국 팀이 이날 올린 6점 가운데 66퍼센트에 해당하는 4점을 홈런으로 만 뽑아내, 한국 팀이 6대1로 이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한국 야구 대표팀 3번 타자를 맡은 추신수는 5경기 모두 출전해서 14타수8안타 10타점을 올리는 가공할 위력을 선보이며 한국 팀이 금메달을 획득하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추신수는 전 신시네티 레즈의 더스티 베이커 감독의 1600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추신수는 2013년 5월8일 미국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 그레이트아메리칸 볼 파크에서 열린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홈경기에서 1번 타자, 중견수로 출전해 4-4로 맞선 9회 2사 후 애틀랜타의 마무리 크레이그 킴브럴에게서 좌중간 펜스를 넘어가는 굿바이 홈런을 쏘아 올렸다.

더스티 베이커 감독은 “추신수의 굿바이 홈런은 내가 메이저리그에서 1600승을 올리는 동안 가장 인상적인 순간 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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