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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시대의 극복기', 장애인 아들과 함께 코로나를 이겨내는 엄마의 진솔된 모습

mediapiawrite
  • 입력 2020.08.25 16:20
  • 수정 2021.06.2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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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영님의 아들 정명관님의 유튜브 '장애화가이야기' 채널(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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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온 세계를  공포와 충격으로 몰아갔다. 세계인의 구성원인 개개인들은 상식을 넘어서는 상황에 적절한 행동을 찾지 못하고 방황했다. 동굴에 횃불도 없이 들어가는 듯 출구가 보이지 않고 까마득한 미로가 계속되었다. 순리대로 돌아가던 일정이 강제적인 힘에 의해 헝클어졌다. 예감되어지지 않는 운명이 낳을 결과에 지레 날카로워졌다. 전쟁과 같은 상황을 평소와는 다른 판단을 요구했다. 

모든 자녀를 키우는 엄마들이 모두 어려움을 겪어냈다. 뿌리가 약한 나무처럼 넘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부여잡고 갈등했다. 장애가 있는 자녀들은 새로운 상황을 받아드리는 것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므로 엄마들이 더욱 어려웠다. 어쩔 수 없는 상황들로 모든 행동을 수용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자폐인 아들과 격리되었다.  마스크를 써야 하는  이유를 여러 각도로 설명하느라 씨름했다. 답답하다고 내던지는 아들에게 낭패감이 담기 회유를 시작했다. 같은 말을 수천 번 하다가 보니 설명이 아닌 꾸지람이 되어버렸다, 아이처럼 징징거리는 아들의 보고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눈높이를 맞추었다. 양순한 양의 새로운 느낌으로 몸을 낮추었다. 친구인 강아지 인형에게 마스크를 씌워주며 설명하니 겨우 착용을 했다, 아들은 이제 반복적인 훈련으로 외출 시에는 마스크를 먼저 찾을 만큼 익숙해졌다. 강아지 인형도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우겨서 가족들을 웃기곤 했다.

복지관은 병의 확산이 심각해져서 굳게 문을 닫아걸었다. 언제 다시 열게 될지 불투명해졌다. 아들의 입장에서는 고립이 되는 상황이 하늘이 운행이 수백 번 바뀌는 대변혁이었다. 개관 일을 손꼽아서 기다리며 힘겹게 여러 날을 버텼다. 고립이 육 개월이 넘어가니 기대가 한탄으로 바뀌었다.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친구들의 이름을 유난히 구슬프게 불렸다. 가끔은 싫증이 나서 화가 극치에 다다르면 중얼거림을 발사하기도 했다. 엄마는 복지관 휴관의 이유에 대답하느라 목이 쉬도록 답을 해주었다. 거세게 발목을 조여 오는 아들의 낙담에 대한 해결책을 생각하느라  머리에서 궁리가 떠나지 않았다. 

오랜 격리는 우울을 불러일으켰다. 신경질적인 감정들은 심장을 검게 물들었다. 해결책을 찾아도 누구도 쉽게 지름길을 보여주지 않았다. 닥친 고립의 순간을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떨면서 지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려움은 늘 인내와 너그러움으로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 세상을 사는 위치임을 상기했다. 불현 듯 20년 전에 날 위로하던 친구의 편지가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체온을 느끼며 눈물이 핑 돌 정도로 따듯했던 기억이 또렷이 저편에서 소환되었다. 친구의 편지가 시작된 때는 내가 아들의 장애판정을 받고 눈물로 가슴을 부여잡던 시절이었다,  공포와 회한으로 검은 안개를 몸에 감고 웅크리고 있었다. 슬픔의 정체를 파악할 겨를도 없이 늪 같은 절망에 그냥 추락했었다. 누구의 말도 귀에 들리지 않고 바짝 긴장하며 예민해졌다.  친구는 종이에 진심이 담긴 단어들로 써내려갔다. 가뭄에 메말라진 마음에 늘 단비를 부어주었다, 마음을 단단히 채우라고 손을 잡아 일으켰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위로로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아들을 성인이 되어 화가라는 이름을 달수 있도록 키우면서 어려운 순간이면 친구의 편지가 슬며시 빛처럼 다가왔다. 위로가 동력이 되어 다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런 경험으로 아픔을 서로 공유하면서 극복된다는 것을 배웠다, 고난의 연대는 생각보다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실제로 체험했다.

격리가 된 순간에 내가 의미 있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이맛살에 주름을 잡으며 골똘히 생각했다. 딸이 ‘유튜브’라는 사회관계망 서비스라는 새로운 문물을 가르쳐주었다. 나와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자폐아를 키우는 엄마 뿐 아니라 미국이나 호주나 중동까지 동지들을 만들어냈다, 모두들 코로나로 집안에 유폐되듯이 갇혀 독백육아로 힘들어 하고  있었다. 서로들 애로사항을 다양한 표정으로  실컷 풀어놓곤 했다. 급박한 순간에 장애아를 키우며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던 처절한 경험들을 공유했다.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간 끝에서야 비로소 관조하는 태도가 나왔다. 많은 영상 중에서 ‘자폐엄마생존기’라는 제목으로 올리는 저스틴 엄마가 제일 심정이 이해가 갔다. 생존기라는 제목에서 절벽 끝에 매달린 심정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참담한 운명에 질질 끌려가지 않고 씩씩하게 어려운 담을 넘어가고 있었다. 영상 속에서는 쏟아지는 관심에 수줍음을 담은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꽃같이 아름답게 피어있었다. 지유엄마는 아이가 처음으로 숟가락질을 한 영상을 올렸다. 태윤이 네는 자전거를 타는 아이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전송했다. 우리 아들도 귀를 쫑긋 세우고 화면속의 친구들을 주시했다. 담백한 말에 꿀 같은 마음을 담아 쓰는 댓글은 고통으로 희미해져 가는 자신감을 불러일으켰다. 서로의 온기로 고뇌를 털어내고 상처를 싸 매였다.   도움이 되는 작은 응원에 큰 용기가 보태어졌다. 일상 속에서는 고강도 거리두기로 사람들 사이가 홍해 가르듯 갈라졌지만 다른 의미의 끈끈한 유대가 세계를 묶었다.

코로나가 진정이 되고 갑갑한 격리를 이겨내는 날을 그리는 재미로 하루를 넘긴다. 간절한 기도가 하늘을 감동시켜 모두의 마음에 봄날 같은 답답한 집안에서 그리는 그림은 잠시 접어둘 것이다. 아들과 탁 트인 산천을 달리면서 그림을 그려서 친구들에게 영상을 보내는 꿈이 생겼다. 아들은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용광로 같은 길을 통과한 정금 같은 그림을 그릴 것이다.  꿈을 디딤돌 삼아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다.

유튜브 '장애화가이야기' 채널의 정명관님의 모습(사진=유튜브 장애화가이야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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