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길을 걷고 있을 때 툭 터진 들 건너편 마을에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장례가 시작됨을 알리는 북소리였다. 마음이 바빴다. 북소리에 이어 나발 소리도 길게 이어졌다. 말린 향나무 가지를 태우는 산뜻한 냄새도 바람에 실려 왔다.
온갖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잠을 깼을 때 몽사는 이미 옆에 없었다. 스님과 취생이 거처하는 방에도 사람 기척이 없었다. 아직 젊은 여주인이 부엌에서 나와 타시델레 인사하면서 그들은 조금 전에 떠났다고 말했다. 그녀는 짤막한 영어로 어제의 그 다리에서 그들이 오던 방향으로 계속 가면 마을이 나온다고 알려 주었다. 그리고 잠시 기다렸다가 차를 마시고 가라면서 나무 탁자를 가리켰다.
내가 부엌 앞의 나무 탁자에 앉자 그녀는 또 말했다. 자기 남편은 며칠 전에 트레킹 일을 떠났다고. 그 말을 들으니 락바 라마가 생각났다. 혹시나 싶어서 다르질링의 유스호스텔에서 겨울을 보내는 락바 라마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반색을 하면서 락바 라마는 자기 남편의 친구라고 했다. 둘은 현재 같이 있으며 트레킹을 마치면 그 집으로 올 거라고 말했다.
“언제 돌아옵니까?”
“열흘 쯤 뒤에 돌아올 겁니다.”
“열흘 후? 그 때까지 내가 여기 머물고 있을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군요.”
“섭섭합니다.”
“자녀들이 안 보이는데요. 모두 어디로 갔습니까?”
“아들 둘이 갱톡에서 중학교에 다닙니다.”
양철 컵으로 한 컵 가득 따른 밀크 티가 탁자에 놓였다. 설탕을 많이 넣어서 아주 달았다. 혹시나 싶어서 뚱바도 있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였지만 남편이 올 때 쯤 되어야 익는다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꼬도 락시는 있습니까?”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 후 부엌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어느새 데웠는지 향기가 솔솔 나는 꼬도 락시가 양철 컵으로 한 컵 가득 눈앞에 놓였다.
“저는 오늘 방을 구해야 됩니다. 이 근처에는 제가 묵을 방이 없을까요?”
“아마 없을 겁니다. 이 동네는 모두 친척이고, 집도 몇 채 되지 않아서 서로 잘 알고 있습니다. 혹시 모르니 알아보기는 할게요. 기대하지는 마세요.”
밀크 티 한 잔에 꼬도 락시 한 잔은 썩 훌륭한 해장이었다. 나는 우선 어제 온 길을 되짚어서 다리를 향해 걸었다. 꽤 너른 들 가녘으로 맑은 계류가 흐르고, 온갖 새들이 지저귀는 울창한 숲이 있는 길은 산책하기 좋았다. 시내에 방을 얻더라도 매일 이 길을 걷게 될 것 같았다.
다리까지 나가서 어제 몽사와 취생이 걸어오던 길로 꺾어들었다. 가까운 데 솟아 있는 야산에 가려서 설산은 보이지 않았다. 어느 언덕으로 올라야 설산이 잘 보일지를 가늠해 보았지만 알 수 없었다. 몽사에게 제대로 된 지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몽사 내외는 설산을 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전망대를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렇게 길을 걷고 있을 때 툭 터진 들 건너편 야트막한 야산 밑 마을에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장례가 시작됨을 알리는 북소리였다. 마음이 바빴다. 북소리에 이어 나발 소리도 길게 이어졌다. 말린 향나무 가지를 태우는 산뜻한 냄새도 바람에 실려 왔다. 아침 이슬이 덜 말라서 개코처럼 축축한 밭두렁으로 들어섰다. 소리와 향에 이끌려서 정신없이 마을을 향해 걸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