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베이지의 노래 [ 67 ] 喪家
  • 후원하기
솔베이지의 노래 [ 67 ] 喪家
  • 김홍성
    김홍성 ktmwind@naver.com
  • 승인 2020.08.27 21:2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몽사는 좀 전에 이웃 마을의 상가(喪家)에서 오는 길이라고 했다. 망자는 근처 산중의 쇠락한 옛 절을 혼자 지키며 살았던 노비구니인데, 노환이 와서 마을의 가족이 속가에서 모시던 중이었다고 했다.

 

저녁은 남자들이 지었다. 쌀을 안칠 때 감자도 몇 개 깎아서 넣었다. 싹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갓 배추와 매운 고추와 스쿠티(말린 쇠고기)를 넣고서 된장 맛이 나는 멀건 국도 끓였다. 어찌 그리 행복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방바닥에 면 보자기를 펼쳐서 밥상을 차리고 둘러앉은 모두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필름 통 말입니다. 그거 아니었으면 우리가 못 만날 뻔 했다는 얘기는 했던가요?”

만나자마자 하셨잖아요. 그 얘기를 또 꺼내시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겠군요.”

, 실은 어제 그 술이 조금 남아 있습니다.”

그럼 이 자리에서 마저 마시기로 합시다.”

스님께서도 괜찮으시겠죠?”

어떻게 말리겠어요.”

 

몽사가 필름 통 4개를 내 앞에 가져다 놓았고 나는 배낭에서 술병을 꺼내어 한 통 한 통 술을 따른 후에 각자의 앞으로 밀어 놓았다.

 

몽사는 좀 전에 이웃 마을의 상가(喪家)에서 오는 길이라고 했다. 망자는 근처 산중의 쇠락한 옛 절을 혼자 지키며 살았던 노비구니인데, 노환이 와서 마을의 가족이 속가에서 모시던 중이었다고 했다. 입관한 관이 정육면체에 가까웠다. 그 스님은 앉아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관 속에도 앉혀 드리기 위해 관을 그렇게 짰다는 얘기를 마을 사람들로부터  들었다고 했다. 
 

몽사의 말을 처음부터 경청하던 스님은 앉은 채 합장을 하고 나서 말했다.

 

좌탈입망(坐脫立亡), 앉아서 돌아가신 거군요. 장례가 언제라고 하던가요?”

바로 내일입니다. 아침 일찍 시작된다고 하더군요. 우리는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할 예정입니다. 괜찮으시면 같이 가시죠.”

감사합니다. 기꺼이 가겠어요.”

저도 빠질 수는 없죠. 방 알아보는 것은 장례 후로 미루겠습니다.”

 

스님은 자러 간다며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거기 남아서 두 사람에게 할 얘기가 있었다. 스님을 배웅하러 나갔던 취생이 돌아와 다시 자리에 앉은 후 내가 말했다.

 

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고백해야겠습니다. 두 분도 아시는 실리콜라의 펨 도마에게 제가 거짓말을 했습니다. 내 딸이 실종되어 찾아 나섰다고요. 내 거짓말이 너무 가증스럽고 창피해서 그 집을 떠났습니다. 술에 취하고, 회한에 젖고, 뭔가 주절거리며 위안을 얻고 싶어서, 그런 짓을 했던 겁니다. 두 분은 제가 펨 도마에게 거짓말을 한 것을 눈치 채셨겠지만 왜 그런 거짓말을 했는지 묻지 않은 데 대해서 미안하고 감사합니다. 무상 스님에게는 이미 다 말씀 드렸습니다.”

 

몽사는 묵묵히 앉아 있었으나 취생은 살며시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나는 술병을 들어 몽사의 잔에 조심스럽게 부었다. 몽사는 그 잔을 입에 댔다가 떼고 말했다.

 

잘 알겠습니다. 저는 그런 거짓말을 한 선생님의 심정을 저는 대충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취생은 이해하기 어려웠나 봅니다. 취생은 거짓말 한 사람은 무조건 멀리 해야 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취생은 그 때 저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즉시 펨 도마에게 찾아 가서 그 말이 거짓말이었음을 밝혀야 한다고요.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는 데는 특별한 배경과 이유가 있지만 그것을 제가 밝히기는 곤란합니다.”

 

몽사의 말을 듣고 보니 취생은 내가 그들의 처소에 찾아온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참했다. 나의 온갖 위장과 기만에 대한 혐오가 다시 몰려왔다. 나는 얼마나 많은 여자와 남자와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다녔는가?

나는 왜 나 자신이지 못하고 언제나 남이어야 했는가? 사생아였고, 고아였으며, 수감자였어야 했는가? 북파공작원이었으며 살인자였어야 했는가? 왜 멀쩡한 딸까지 실종되었다고 말했는가? 왜 술을 마시고 만취하면 갑자기 그렇게 처절하고 비참한 인간이고 싶었는가?

 

내가 한 숨 크게 심호흡을 했을 때 취생이 돌아왔다. 나는 할 말을 마쳤으므로 자리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빈 술병과 배낭을 챙겼다. 그 때 취생이 말했다.

 

잠깐만요. 오늘 밤은 제가 스님 방에서 자겠습니다. 이미 그렇게 말씀 드리고 왔어요. 스님께서도 좋다고 하셨구요.”

몽사가 이어서 말했다.

좋은 생각이군요. 안 그래요?”

내가 대답할 겨를도 없이 취생은 자기 침낭과 매트리스를 둘둘 말아서 안았다. 달이 밝아 훤한 마당에 서서 취생이 담담하게 말했다.

편히 주무세요."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