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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이야기] 김진영 감독 구속은 정말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였을까

기영노 전문 기자
  • 입력 2020.08.19 11:15
  • 수정 2020.09.01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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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5일 미국 플로리다에서 노환으로 별세
현역 감독으로 억울하게 구속 수감된 유일한 감독
전 대통령은 단지 “어~ 저래도 되나”라고 한 마디 한 것을 보고, 비서들이 과잉 충성을 한 것이라는 설

인천야구의 대부이자 전 삼미수퍼스타즈 감독이었던 김진영 씨(현 스포티브 야구 해설위원 김경기씨 아버지)가 지난 8월5일 미국 플로리다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김진영 씨는 현역 감독으로 억울하게 구속 수감된 유일한 감독이기도 했었다.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전두환 정권의 5공 치하에서 벌어진 웃지 못 할 사건이었다.

1980년대 초반 5공 정권이 철권통치를 하고 있었지만, 프로야구 판은 재일동포 장명부의 천하였다.

일본에서 한 수 위의 야구를 했었던 장명부는 1983년 삼미 수퍼스타즈에 입단, 프로야구 원년 최하위였던 삼미 수퍼스타즈 에이스로서 팀을 이끌어 나갔다.

장명부는 개막이후 2개월이 채 되지 않아 14승째를 올렸었고 삼미 수퍼스타즈 팀은 프로야구 원년 형편없는 승률로 최하위를 차지한 팀답지 않게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장명부는 마운드에 올랐다 하면 완투를 했고, 승리를 거둔 다음날도 또 마운드에 오르는 괴력을 발휘했다.

마운드에서도 전성기를 지나서 공은 빠르지 않았지만, 제구력이 좋고 변화구가 능수능란해 한국 타자들을 데리고 놀았다.

1983년 6월1일 삼미 수퍼스타즈는 2위 해태 타이거즈에게 1.5게임 차 박빙의 차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MBC 청룡을 만났다.

삼미 수퍼스타즈는 하루 전인 5월31일 경기에서 MBC 청룡에게 2대3으로 역전패를 당했었기 때문에 오늘만은 반드시 이겨서 2위 해태 타이거즈와의 게임차를 벌리거나 최소한 그대로 유지해야했다.

그런데 오늘따라 삼미 수퍼스타즈 타자들이 지나해처럼 ‘삼미 슬퍼스타즈’ 선수로 돌아가 있었다.

MBC 청룡의 왼쪽 투수 유종겸에게 6회까지 단 한 개의 안타도 빼앗지 못하는 노히트노런으로 밀리고 있었다.

유종겸은 최고 구속이 137~8km일 정도로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는 아니고, 제구력과 변화구로 승부를 거는 투수인데 그날따라 체인지업이 기가 막히게 먹혀들고 있었다.

삼미 수퍼스타즈는 7회 들어서야 양승관이 안타를 처음으로 뽑아냈고, 스코어도 0대1로 뒤진 채 8회를 맞이하고 있었다.

원 아웃 이후 일본에서 장명부와 함께 세트로 건어 온 재일 동포 이영구 선수가 포볼을 골라 찬스를 만들어 나가더니 이선웅이 중전안타를 터트려 1사 1,2루의 찬스를 맞이했다. 4번 타자이자 포수인 고 김진우 선수가 또 포볼을 골라 나가서 1사 만루 찬스가 계속됐는데, 5번 타자 정구선이 인필드 플라이로 물러나 2사만루가 되었다.

그런데 6번 타자 최홍석이 레프트 쪽으로 적시타를 터트린 것이 화근이었다.

3루 주자 이영구가 홈을 밟아 1대1 동점이 되었고, 2루 주자 이선웅 마저 홈을 파고들어 이제 2대1 역전이 되었다.

그 순간 김동앙 구심이 이선웅의 홈인을 무효로 하고 1대1 상황에서 쓰리 아웃을 선언했다.

그러자 삼미 수퍼스타즈의 다혈질 김진영 감독이 쏜살같이 달려 나가 김동앙 구심을 다그치기 시작했다.

김진영 감독은 내야수 출신으로 체구는 작았지만, 성격이 불같아서 한번 화가 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성격이었다.

김동앙 구심은 이선웅이 홈 플레이트를 밟기 전에 1루 주자 김진우가 좌익수 김정수의 3루 송구에 아웃되었기 때문에 이선웅의 득점은 무효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김동앙 구심은 홈과 3루의 연장선상에서 자세히 봤기 때문에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김진영 감독의 눈에는 이선웅의 득점이 먼저이고, 김진우의 아웃은 그 다음으로 보였다.

김진영 감독과 김동앙 구심이 무려 5분여를 다투자 홈 플레이트 뒷 그물 뒤에 있던 이기역 심판위원장이 김동앙 구심에게 빨리 경기를 속행 할 것을 권유하자, 이를 본 김진영 감독이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이기역 심판장을 향해 두발당성으로 날았다.

그러나 김진영 감독의 두발당성은 스파이크 징이 야구장 본부석 뒷 그물에 걸리는 바람에 이기역 심판위원장에게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했고, 김진영 감독만 뒤로 발랑 넘어지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했다.

비록, 미수에 그치기는 했지만 프로야구가 생긴지 1년 여 만에 야구장 안에서 감독이 심판을 폭행하는 볼썽사나운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것도 전 국민이 생방송으로 시청하는 경기에서......

경기는 결국 삼미 수퍼스타즈가 MBC 청룡의 이종도에게 끝내기 적시타를 얻어맞고 1대2로 패했다.

김 진영 감독으로서는 경기에도 패하고, 스타일만 구기게 됐는데, 문제는 이튿날 부산 사직구장에서 롯데 자이언츠와 삼미 수퍼츠타즈의 경기가 끝난 직 후 김진영 감독이 현장에서 경찰에게 전격적으로 체포 된 것이다.

당시 서울지법동부지원 김시수 부장판사가 박종열 검사의 요구로 발부한 영장에는, ‘많은 관중 앞에 욕설과 폭행을 하는 장면이 TV로 중계돼서 청소년과 시청자들에게 악영향을 끼쳤다’는 것이었다.

만약 그 경기가 TV로 생중계 되지만 않았어도 감독이 현장에서 수갑을 차는 불상사는 없었을 것이다.

김 진영 감독은 구속된 지 10일 만에 약식기소가 돼서 벌금 100만원을 물고 석방되었다.

김 감독이 이례적으로 야구장 안에서 있었던 일로 구속이 된 것은, 김진영 감독이 이기역 심판에게 두발당성을 시도하는 장면을 청와대에서 TV로 보고 있던 전두환 대통령이 김 감독의 구속을 직접 지시 했다는 설과, 전 대통령은 단지 “어~ 저래도 되나”라고 한 마디 한 것을 보고, 비서들이 과잉 충성을 한 것이라는 설이 있는데, 어떤 게 사실인지는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당시 전두환 대통령과 모습이 비슷한 탈랜트 고 박용식 씨가 석연찮은 이유로 TV 출연이 금지돼서 기름장사 등으로 연명을 해야 했었는데, 박용식 씨도 전 대통령이 직접 박용식 씨를 출연정지 시키라고 지시를 한 것이 아니라, 전 대통령 주위사람들이 과잉충성의 일환으로 나오지 못하게 한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김진영 감독 구속’ 사건도 전 대통령은 단지 ‘야구장에서 저래도 되나?’정도로 얘기를 한 것을 두고 부하들이 과잉충성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프로야구 개막일 날 시구를 던지는 등 소위 말하는 ‘스리엑스’ 스크린(영화), 스포츠, 섹스 정책으로 5.18 광주민주화 운동 탄압 등 5공화국의 치부를 감추려 했던 전두환 정권이 얼마나 프로야구 성공에 신경을 쓰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 일화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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